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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rinfiànco (Side.D) - 下

2015. 7. 19. 22:00 | Posted by 아뮤엘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토닥이며 쌓인 일들을 처리하였다. 그렇게 바쁜 나날이 지났다. 주변에서는 냉혈안이다. 사람이 아니다. 따위의 말을 지껄였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둘째동생은 부모님의 부재가 힘들었는지 잠시 별장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 보낼 순 없기에 호위와 몇몇 메이드를 붙여 가까운 별장으로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떠나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둘째 동생을 보내고 난 뒤, 막내동생을 유모에게 맡기고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조사하였다. 부모님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영지까지 시찰하다 보니 며칠 정도 저택이 아닌 외지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막내동생이 걱정되었지만, 유모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운 것이었는데... 저택을 비운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내동생이 몽유병 증세를 보인다고. 밤마다 부모님의 방을 헤매다 제 방에서 잠이 든다고.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리 빨리 나을 리 없는데. 재빨리 짐을 챙겨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택에 도착하니 해가 진 늦은 저녁이 되었다. 자신을 마중 나온 집사와 유모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들었다. 동생을 만나기 전, 몸에 달라붙은 먼지들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 구석구석을 닦고 나오니 제 방에 작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새근새근 잠이 든 제 동생을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유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내동생이 사라졌다고 울먹이는 유모에게 여기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니 마음이 놓인 듯, 웃으며 좋은 꿈 꾸라고 방을 나서는 그녀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였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울먹이는 동생을 껴안고 토닥거리자 훌쩍거리다 이내 안정되었는지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동생이 걱정되어 집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처리하며, 조사 업무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제가 저택에 있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정신적인 문제다 보니 밤이면 제 방을 찾는 동생의 모습에 잠은 제 방에서 같이 자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어린애도 아니고 왜 같이 자냐고 툴툴거리던 동생도 몇 번 같이 자더니 괜찮았는지 이제는 제가 알아서 잘 시간이 되면 자신의 방을 찾아왔다. 평소와 같이 서류업무를 마치고 동생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의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집사가 한 무리의 메이드들을 어딘가로 데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오는 곳을 보아하니 동생이 무언갈 시킨 것 같은데... 의문을 잠시 접고 도착한 동생의 방문을 열자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자신을 반기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셔!”

“책을 읽고 있었나?”

제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기대어 앉은 부드러운 은발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부빗 거렸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간지러워 볼을 꼬집자, 베시시 웃는 모습이 또 귀여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건 그렇고 집사가 메이드들을 끌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나?”

“으음~ 별거 아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느라”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동생의 모습에 무언가 미심쩍었지만,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았는지 부비적거렸다.


품에 안겨 뒹굴던 동생은 졸렸는지 꾸벅거리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든 동생을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동생의 책장으로 다가갔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동화가 아닌 꽤 어려운 책들도 많이 꽂혀있었다. 괜찮은 책 두어 권 정도 골라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 읽다 보니 꽤 늦은 시각이 되었다. 슬슬 자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는 데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한구석에 놓인 잘 관리된 낡은 액자. 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조심스레 들어 올린 액자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눈가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낡은 액자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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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rinfiànco (Side.D) - 上

2015. 7. 18. 21:38 | Posted by 아뮤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일 없을 거라며 저택을 나섰던 부모님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셨다. 울고 싶지만, 꾹 참았다. 부모님이 잠들어 있는 관 앞에서 울고 있는 동생들을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집사에게 부모님을 부탁하고 울음을 멈추지 않는 동생들을 껴안고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식이 퍼졌으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발견자의 증언으로는 부모님의 죽음은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따로 조사해야겠다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동생들을 침대에 눕히고 울음이 멈출 때까지 그 작은 등을 쓰다듬었다. 울다 지쳤는지 잠이 든 동생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벗어났다. 방에서 나오자 집사가 다가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고맙다고 말을 전한 뒤 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제 머리색과 반대되는 칠흑 같은 검은 정장을 꺼내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였다. 방 밖으로 나오니 친척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장례는 내일 아침에 치르기로 했지만, 전날 미리 와 하루 머물고 장례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저를 찾는 친척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집무실에 틀어박혀 서류를 처리하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꽤나 늦은 시간이 되었다. 처리된 서류들을 정리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집사에게 괜찮다고 말하였다. 그것보다 부모님의 부고에 놀랐을 동생들이 걱정돼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방문을 열자 잠이 든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게 물든 눈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렸다. 부모님을 찾는지 허공에 손짓하는 동생들을 끌어안고 작게 토닥거려 주었다.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뜨니 창문으로 막 동이 트기 시작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잠에서 깬 것인지 동생들이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동생들을 달래고 있으니 집사가 유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유모가 제 품에 안겨 우는 동생들을 안아 달랬다. 유모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고 집사가 건네는 옷을 받아들고 옆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정리를 하고 있으니 집사가 오늘의 일정에 대해 말했다. 일정이라고 해봤자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이 다였지만. 하나둘 도착하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다 보니 부모님을 묘에 안치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동생들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방으로 가니 막내동생은 괜찮았지만, 제 둘째동생은 충격이 컸는지 이불에서 나오질 않았다. 둘째 동생을 달래는 유모에게 괜찮다고, 그냥 혼자 있게 해주자고 말하며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방 밖으로 나왔다. 일어나자마자 울어서 그런지 좀 가라앉았던 눈가는 다시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몰려오기 시작하는 조문객들을 하나둘 맞이하였다.

“저기 장남은 역시...”

“...니까요.”

“역시 ...라는 걸까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외면하였다. 자신을 대신해 속으로 화를 내는 동생을 봐서라도 참자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볼을 부풀린 채, 저를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힐끔힐끔 째려보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화가 가라앉았으니까. 시간은 흘러 부모님을 묘에 안치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작은 도련님을 모셔올까요? 라고 묻는 집사의 말에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명을 내리고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과정을 묵묵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제 떨리는 손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조문객들이 돌아갔다. 그들로 인해 떠들썩했던 집안도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제 친척들로 인해 다시 시끄러워졌다.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 묻는 친척들의 말에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지만, 제 말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자신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다며 서로 앞다투어 말하는 모습을 보자니 역겹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렸고,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쉽게 내칠 수도 없었다. 결국, 한명 한명 이야기를 듣고 상대해주다 보니, 끝도 없이 매달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제 명에 알았다며 웃으며 나갔지만 속으로 뭐라 말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린놈이 건방지다 따위의 말들을 지껄이겠지. 애써 괜찮은 척 자세를 유지하며 서류를 읽었다. 사실 서류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집사의 친척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집사에게 수고했다고 쉬라고 내보낸 뒤,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힘들다. 아버지는 홀로 이들을 상대했겠지. 혼자서 이 외로운 자리에 앉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셨을 것을 생각하니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가문을 잘 다스리며 지킬 수 있을까? 제 동생들을 저 악마들의 손에서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은 아직 어렸다. 정치에 대해서도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서투른 것이 많은 배울 것이 더 많은 아이였다. 갑자기 짊어지게 된 것들이 너무 무거웠다. 힘들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한 손으로 가리고 혹여나 누가 들을까 숨죽여 울었다. 오늘만.. 오늘 하루만 울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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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rinfiànco (Side.E)

2015. 7. 17. 22:33 | Posted by 아뮤엘

“저기 장남은 역시...”

“...니까요.”

“역시 ...라는 걸까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것만 잘하는 이들의 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큰형과 같이 조문객을 맞이하였다. 눈 밑이 붉게 물든 자신과 달리 평소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위로의 인사를 전하는 이들을 상대하였다. 시간은 흘러 부모님을 묘에 안치시키기로한 시간이 되었다. 작은 형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은 도련님을 모셔올까요? 라고 묻는 집사의 말에 큰형은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명을 내리고 내 손을 잡고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형은 묵묵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감정이 메마른, 냉혈안으로 보였겠지만 자신은 느낄 수 있었다. 맞잡은 손에 느껴지는 떨림을.


조문객들로 떠들썩했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친척들과 부모님의 부재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형의 모습을 집무실 밖에서 몰래 지켜보았다. 개떼같이 몰려드는 친척들의 모습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형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이용해 제 가문의 힘과 재산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해대는 이들을 상대하는 형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결국, 하나하나 상대해주다 지친 형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라고 일축하였다. 친척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집사의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집무실로 들어갈까 조금 열린 문 사이로 손을 뻗는데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소리를 죽이고 우는 큰 형의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 제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형의 모습에 다들 혀를 둘렀다. 역시 홀든가 장남은 제 부모의 죽음도 슬퍼하지 않는 냉혈한이라고 떠드는 메이드들의 말소리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당 메이드들을 잡아다가 죽일까? 고민하는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울며 달라붙는 모습에 질려 입단속 시키고 내쫓으라고 집사에게 명령했다. 죽이려던 걸 살려준다니까 겁을 상실했는지 이제는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자기는 부양할 가족이 있다며 동정을 호소했다. 살려준다고 할 때 곱게 돌아갈 것이지. 시계를 슬쩍 쳐다보고 집사에게 눈짓하자 집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제가 내린 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메이드들은 감사하다고 절을 하며 나갔다. 뭐, 남은 가족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고 돈이나 쥐여줘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자 큰형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셔!”

“책을 읽고 있었나?”

제 머리를 쓰다듬는 형에게 안겨 책을 읽었다. 업무를 하다 와서 그런지 잉크와 종이 냄새가 밴 손을 만지작거리자 간지럽다는 듯 볼을 꼬집는 형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집사가 메이드들을 끌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나?”

“으음~ 별거 아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느라”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자,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형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 부비적거렸다.


형의 품에 안겨있다 잠이 든 것인지, 눈을 뜨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비척이며 몸을 일으키니 낯익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무엇인가를 끌어안은 채 잘게 떨리는 몸을 보고 형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껴안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기대면 좋을 텐데, 항상 형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기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려서, 형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저 가녀린 어깨를 끌어안아 달래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르는 척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을 테니까. 바보 같은 자신의 형은. 조심스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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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il crìmine (E)

2015. 7. 14. 23:21 | Posted by 아뮤엘

큰 형이... 입원할 정도의 부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떨리는 손을 이불 속으로 숨기고 토마스에게 자신이 준비할 동안 형이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가 방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일어나 욕실로 가 세안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괜찮을 것이다. 제 형은. 강하니까. 제 애검을 붙잡고 토마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십 분쯤 흘렀을까? 토마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형은 어디에 있대?”

“상처가 꽤 심했는지 아직 혼수상태라고 하네요. 치료 후 바로 저택으로 옮겨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빨리 나으시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구만! 형 상태 좀 보고 올게~”

꼬맹이들 부탁한다라고 덧붙이며 괜찮은 척 평소의 자신을 떠올리며 “이글 홀든”을 연기하였다. 하여간 제 형이 다쳤다는데도 긴장감이 없다니까~, 가서 사고나 치지 말고 다녀와라! 등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해주며 연합을 벗어났다. 아직 자신을 보는 눈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찮은 척 평소의 발걸음으로 도시 외곽을 벗어날 때까지 걸어갔다. 외곽으로 나오자마자 감시하는 눈길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바로 저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제 탓이었다. 연락이라도 할걸. 잘 지내고 있다고, 고집부리지 않고 그 한마디만 했어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제 상처를 숨기는 데 급급해서,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 못했다. 형은 강하니까. 자신과 달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형이니까.


미친 사람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풍경이 바뀌고 향긋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어디서 맡아 본 적이 있는... 낯익은 향기는 계속 코끝을 맴돌며 제 존재를 알아달라고 떼쓰는 것 같았다. 무슨 향기였지? 라벤더? 로즈마리? 무슨 향일까? 고민하며 뛰는데 녹빛으로 가득했던 눈앞이 조금씩 푸른빛이 은은하게 맴도는 은백색의 무언가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둘씩 늘어나 나무로 가득하던 숲은 어느새 사라지고 은색 꽃밭이 가득 채웠다.

“아....아아...”

이건 꿈이다.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외면하고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꽃들은 자신에게 소원을 빌라고 유혹하듯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났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악마들은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는가?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이라면 냉큼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른다. 부디 형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 대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자신이기에 제 눈 앞에 펼쳐진 악마들을 검으로 베어내었다. 어느새 도착한 저택 앞에서 꽃가루로 물든 제 검을 손수건으로 대충 닦아낸 뒤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은 변한 것이 없었다. 입이 가벼운 하녀들도, 시끄러운 친척이라는 작자들도. 자신을 알아본 집사에게 인사를 한 뒤 형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등과 복부에 큰 검상을 입었는데, 상처가 큰 것도 있지만, 피를 많이 흘려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형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링거이 꽂힌 잔 흉터가 가득한 팔을 내놓은 채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든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며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상체를 감싼 붕대와 창백한 얼굴.. 내가 형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조심스레 형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형이 행복해지길 바랐는데. 이렇게 다쳐서 돌아오면 어떡해..응? 돌아오지 않는 대답이 야속해 형의 볼을 꼬집기 위해 손을 올렸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여니 집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였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끄러워?"

“게오르그님이 오셨습니다.”

“건강하기도 하시지. 늙은 너구리”

제 친척 중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이였다. 호시탐탐 가주의 자리를 노리는 자였기에 형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달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녀들 입단속 시키고, 친척이라는 인간들은 당장 다 내쫓아. 당분간 저택에 아무도 들이지 말고, 연합에 당분간 못 간다고 말 좀 전해주겠어?”

집사에게 지시를 내리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침대 앞에 놓고 앉았다. 밖에서 돼지가 멱따며 저항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형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일주일이 지났다. 형의 부재로 밀리는 업무는 내가 결제할 수 있는 것들만 일단 미리 처리하였다. 가문에 속한 주치의가 하루에 두세 번 들려 형의 상태를 검사했다. 상처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형은 잠든 채 깨어나지 않았다.

“형.. 이제 일어나주면 안돼?”

감긴 눈과 굳게 다문 입을 손으로 꾸욱 눌러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잠든 형이 들을 리 없다는 사실은 이글 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주변에서는 이제 놓아주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자신은 형을 놓을 수 없었다. 이렇게 형을 보낼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손톱이 여린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아... 형이 보면 잔소리하겠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랍에서 약을 꺼내 바르고 거즈로 덮어, 치료를 마무리하였다. 치료는 했지만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료함에 잠이 든 형의 손을 가지고 장난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형이 긴 잠에서 일어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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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bugia

2015. 7. 13. 22:58 | Posted by 아뮤엘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네가 날 버리고 멀리 떠나버리는 그런 꿈을. 예전이라면 네가 날 버릴 리 없는데, 그렇지? 하며 웃어넘겼을 일인데... 매몰차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난 너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더러워졌다. 잘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를 많이 사랑했던 모양이다. 감은 눈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문질러 닦지만 쉽게 멎지 않았다. 간신히 눈물을 추스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푹 잠이라도 잘까 싶었는데, 침대 옆 서랍을 뒤적거려 두통약을 꺼내 먹고 몸을 일으켰다. 세찬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커튼을 걷으니 회색빛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비가 내려서 그런가? 눅눅한 공기, 온몸이 끈적거리는 느낌에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전날 장을 봤기에 각종 식재료로 가득 차있었다. 아침은 잘 안 챙기는 편이기에 간단하게 맥주와 구운 빵 한 쪽을 들고 창가에 걸터앉았다. 비가 연주하는 노래는 그 어떤 노래보다도 구슬펐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아프게 만들었을까? 아니, 이 노래는 나를 위한 노래인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던가? 스스로의 모습이 우스웠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접시와 맥주 캔을 정리하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 업무에 치여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이렇게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서재는 기분 좋은 책 냄새를 풍기며 자신을 맞이하였다. 저번에 서점에 갔을 때 새로 산 책을 꺼내어 읽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일에 치여 결국 읽지 못했던 책이었다. 책의 중반부쯤 읽었을까 무엇인가가 책 사이에서 떨어졌다. 책에 껴있던 책갈핀가? 조심스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책갈피 뒷면에는 dear. Dario 라고 익숙한 필체로 적혀있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뒤집으니 나와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보였다.

“...이게 뭐야...”

겨우 다잡았는데. 책 사이에 조심스레 책갈피를 꽂고 책장에 다시 꽂았다. 그리고 서재에서 나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들이 야속해서 그냥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자고 깨고 다시 잠이 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눈만 감으면 네가 떠올라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싱크대에 놓으려는데, 컵이 미끄러지듯 손에서 빠져나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늘 온종일 네 생각이 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구슬프게 우는 비. 깨진 유리컵. 이상했다. 뭔가 이상해. 아닐 거라고 믿으며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어 너의 집에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순간 본가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 일도 없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상대가 받기만을 기다렸다.

“알베르토가 입니다.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습니까?”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로라스를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다리오라고 말하면 그가 알 겁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사용인이 말하기를 꺼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부당했나..? 이런 것에 끝맺음이 확실한 그이기에 예상했던 바이지만.. 다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것에만 답해주세요. 그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울음이었다. 그제야 무엇인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상대를 다그쳤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고. 괜찮냐고. 그녀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리며 어느 장소를 말했다. 전화를 끊고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그녀가 말한 주소로 다급하게 향하였다. 그녀가 말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국립 병원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에게 그의 병실을 물어보았다. 7층에 있는 1인실. 병실 앞에 도착해 조심스레 문을 여니 잠든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강하던 너의 피부는 창백하게 물들고, 많이 아팠는지 살도 많이 빠져있었다. 날 버리고 떠났으면 잘 살아야지... 왜... 병실로 올라오는 길 간호사에게 들었다. 불치병이라고. 치료법도 없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던 거냐?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이 든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에게 기도했다. 그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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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렉로라] attaccamento -完-

2015. 7. 10. 23:14 | Posted by 아뮤엘

“ㅁ..뭐냐 일어나 있었냐?”

“...대답...”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인상을 쓰며 손에 힘을 주어 잡힌 손목이 아려왔다. 이 새끼가 잠에서 덜 깨더니 미쳤나 싶어 억지로 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빼려고 할수록 잡힌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만 늘어날 뿐이었다.

“ㅅ...수련장에 간다..좀 놔라!”

“아아...”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제 침대에 도로 눕는 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게 잠꼬대인가? 조심스레 방에서 빠져나오니 정적만이 가득한 복도가 자신을 반겼다.

“윽...”

아릿한 통증에 잡혔던 손목을 보니 붉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오늘 훈련은 글렀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바로 치료를 해야 빨리 낫고 증상이 악화되지 않을 텐데, 약을 꺼내기 위해선 방에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냥...아프고 말지”

훈련을 하려던 것도 못하게 되었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도중 창가에 비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어둑한 새벽하늘에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별들의 모습에 오랜만에 별이나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옥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옥상의 문은 잠가두지 않는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상쾌한 새벽 공기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털썩-바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어두웠던 하늘 한구석에 작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 붉은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져,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ㄹ...스”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비척거리며 일어나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베르토?”

“일어났는가, 드렉슬러?”

“지금이 몇 시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평소와 같이 손을 딛고 일어서려는데 찌릿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지만, 알베르토가 재빨리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놓아라”

“괜찮나?”

“됐고 몇 시인지만 말해”

“11시 반 정도 되었군. 그건 그렇고 손목은 누가 그랬나?”

꽤나 창피한 모습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을 여성을 하듯 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나 쏘듯 그에게 시간을 물었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걱정하였다. 잠에 취한 녀석에게 손목을 붙잡혀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해봤자 기억을 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아하니 이미 훈련은 끝난 것 같고, 애초에 훈련에는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욱신거리는 손목을 들어 확인하니 그냥 응급처치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뭐 하겠는가? 드렉슬러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얼음 팩을 만들어 찜질하였다. 언제 들어온 건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네놈이 그런 거다 짜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녀석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자신의 팔목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어찌 되었던 그와 앞으로 최소 1년 이상은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서로 불편해야 하는 점은 없어야 하니까라는 생각이었다. 같이 지내면서 지켜야 할 점이라던가, 피했으면 좋겠는 점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그것뿐.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은 불편한 저이기에 먼저 선을 그어놓은 것이었는데...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일 년쯤 지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그와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내 생활을 최대한 배려하며, 내가 연구하는 것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와 충고를 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새벽에 따로 훈련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같이 수련을 하며 서로의 훈련을 돕기도 하였다. 새벽 훈련으로 오전 훈련을 대신하고 그 시간에 연구하는 자신과 달리 오전 훈련까지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그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련을 하면 힘들지 않냐고. 그는 답하였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자신이 강해지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이가 더 늘어나지 않겠냐며 웃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보 같은 놈.. 그 날 이후로 그가 훈련을 끝마치고 오면 음료를 건네주는 것으로 더는 묻지 않았다. 사서 고생하는 놈에게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게 뻔하니까..


그날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연구에 대한 진전이 없어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지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 뒹굴거리다 깜박 잠이 들었는지,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알베르토를 둘러싸고 조잘거리고 있었다. 알베르토 놈은 다른 기사들에게 모범이 되었기에 때문에 자신과 달리 다른 놈들에게 인기가 많아 붙잡혀 수련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보아하니 오늘은 숙소 앞에서 붙잡혀 예찬론을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가져와 그 모습을 구경하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정도를 넘어 섰달까. 한 놈은 알베르토 놈에게 달라붙질 않나, 다른 한 놈은 알베르토의 사생활까지 캐내려 하지 않나, 그 외 다른 놈들도 엇비슷했기에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없이 음료나 홀짝이며 지켜보고 있는데, 한 놈이 알베르토 놈의 팔을 꼬옥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기분이 나빠져 창가를 벗어나려는 순간 알베르토 놈과 눈이 마주쳤다. 도와주게나. 새내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 모양으로만 뻐끔이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싫은데? 제 입 모양을 읽은 것인지 작게 한숨을 쉬며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네. 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아라고 대답을 한 뒤, 들고 있던 음료를 내려놓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그를 불렀다.

“야, 알베르토! 너희 가문에서 편지가 왔는데 급해 보이더라?”

 제 목소리가 들렸는지, 놈에게 붙었던 놈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였다. 알베르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째려보는 새내기들에게 비웃어주며 창가를 벗어났다. 알베르토는 지친 기색으로 방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포옹를 하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는 내꺼야 애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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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벨져] curiosità

2015. 7. 9. 23:52 | Posted by 아뮤엘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미쳤다고 말했다. 미치다: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라고 사전에 정의되어있다. 나는 내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툴렀을 뿐이다.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었다. 평일에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꿀 같은지.. 주말에도 쉬긴 쉬지만, 보통 불려 나가 일을 할 때가 더 많아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이 날이 좋았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다 일어나 식재료를 사기 위해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마트에 들려 식재료를 산 다음, 마지막으로 베이커리에 들리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 자주 가던 베이커리로 향하는 길, 내 사랑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가방을 메고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결 좋은 은빛 머리카락이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리고, 맑은 바다를 빼닮은 눈동자가 제 쪽을 향하였다.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벗어나 원래 목적이었던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 먹을 토스트용 식빵을 사고, 도넛과 다른 빵도 몇 개 더 담은 뒤 계산을 하였다. 빵을 사서 그런지 늘어난 짐을 나누어 담아 두 손에 들고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기라면 아무도 보지 않겠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집으로 이동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골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내 능력이 들키기 전에. 제 몸이 흐릿해지더니 곧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다행히 들키진 않은 것 같군”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만은 피하고 있었기에 목격자가 누구인지 신경이 쓰였다. 들켰으려나? 자신이 능력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진 않겠지... 애초에 제가 누군지 모를 텐데 어찌 신고하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사온 식재료를 정리하였다.


지긋지긋한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미 배운 것들은 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다시 들어야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라 법에 따라 일정 연령대의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오늘따라 잔소리가 많았던 담임이라는 작자를 속으로 욕하며 집을 향하여 걷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짙은 갈색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외출하거나 하교를 할 때 먼 곳에서 저를 관찰하듯 바라보던 남자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몰랐을 테지만, 자신은 달랐다. 누군가가 자신을 뜨겁게 쳐다보는 시선쯤은 느낄 수 있었다. 제 평범한 회사원 같아 보이던데..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는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호오?”

여태까지 모르는 척 넘어갔지만 궁금했다. 그가 자신을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남자는 어떤 목적을 가진 것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몰래 남자의 뒤를 쫓았다. 식재료를 사러 나온 모양이었는지 두 손 가득 식재료를 들고 그대로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자신이 미행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빵을 고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그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들킬 위험이 있기에 좀 떨어진 장소로 가 그가 베이커리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나왔다. 양손 가득 짐을 든 남자는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나? 것보다 저 골목은... 막다른 골목 일 텐데.. 실수로 들어갔겠지 하는 마음에 남자가 골목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골목 근처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골목에 들어가니 바닥에는 이상한 진이 그려져 있고, 남자는 그 위에 서서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조금씩 투명해지는 남자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껴 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남자는 사라지고 바닥에 생겼던 진도 동시에 사라졌다.

“흐음.. 이거 놀랍군.”

공간 능력자..인가? 언젠가 들었던 현재 밝혀진 능력들을 생각했을 때, 그의 능력은 공간이동능력 같았다. 공간이동능력을 가진 이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이거 흥미롭군.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한동안은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벨져는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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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틴] amare

2015. 7. 8. 22:03 | Posted by 아뮤엘

그는 그 스스로를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칭하였다. 임무수행을 위해 만난 인연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의 말처럼 그를 평범하게 생각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고급 초콜릿같이 달콤해 보이는 짙은 갈색 머리와 숲이 생각나는 녹안. 그리고 다른 이들이라면 참가하고 싶어서 안달일 임무에 귀찮다고, 하기 싫다고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래,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의 소리는 어린아이같이 투덜거림과 징징거리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가식적이지도 자신을 괴물 취급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나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게 되었다. 회사는 어찌하고 여기에 와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는 어찌 보면 실례일 수도 있는 질문들을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혹시 속으로는 싫어하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 몰래 능력을 써서 그의 생각을 읽었다. 그리고 내 행동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에 그에게 임무가 끝나면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하였다. 그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돌아가면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 그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브루스와 작전회의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클론들과의 전쟁이 끝나고 재단으로 돌아와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에 누우니 그동안 피곤했는지 몰려오는 수마에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 억지로 뜨니 흐릿한 시야 속으로 시계가 보였다.

PM12:28.

피곤하긴 했었나보다.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어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냉장고를 열었다. 자신의 부제가 길긴 길었는지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은 유통기간이 다 지나있었다. 어쩔 수 없지. 냉장고 문을 닫고 지갑을 챙겨 들었다. 나간 김에 레스토랑 예약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방문을 잠그고 나왔다. 재단을 나서는데 누군가 제 팔을 잡았다. 누구지? 하고 뒤돌아보니 그가 서 있었다.

“어디 가는 길이오?”“너무 오래 방을 비웠는지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오랜만에 장이라도 볼까 싶어서 나왔어요. 피곤한 건 좀 괜찮으신가요?”

게이트를 사용해 사람들을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작전 내내 푹 쉬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아 괜찮소. 것보다 나도 따라가도 괜찮겠소?”

“환영입니다”

생긋 웃으며 말하자 그도 같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 옆에 나란히 섰다. 누군가와 이렇게 같이 걷는다는 것이 설레는 일인 줄 미처 몰랐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조마조마하면서도,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목들을 따라 도착한 시장은 오늘도 활기가 넘쳤다. 필요한 식재료들을 구입하는데, 자신이 들 짐을 그가 자연스레 빼앗아 들었다. 괜찮다고 제가 들겠다고 말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며 고집부리는 그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다소 가벼운 짐들만 들게 되었다. 필요했던 식재료들을 사고 재단으로 돌아오는 길 결국, 레스토랑의 예약은 못 하였다. 그가 모르게 준비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중에 예약하기로 마음먹는데 따뜻한 손길이 제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소중하다는 듯이 조심스레 잡아오는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 멈춰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마주 잡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머리를 가리켰다. 좋아하오. 당신이 사랑스러워. 나를 향한 그의 감정들이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감싸 안았다. 아 그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내 능력도 그를 바라보던 내 시선도. 그와 마주 잡은 손을 놓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에게 들킬까 봐 고개를 숙인 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그가 짐을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제 볼을 감싸는 손길에 당황해 어버버거리는 사이 이마에 말캉한 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대답은?”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레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처음 그를 봤을 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빛나는 금발 머리와 푸른 하늘을 머금은 듯한 벽안. 반쯤 강제로 참여한 임무에 대한 의논을 위해 찾아간 재단에서 그가 작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 브루스에게 물었었다. 그가 참가하는 이유를. 그의 능력이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브루스에게 물었다. 그의 정확한 능력에 대해서. 내가 그에게 빠져들 듯 그가 나에게 빠져든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가 몰랐을 뿐이지.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달랐으니까. 그에게 내 마음이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임무지에서의 생활을 보냈다. 완벽하게 클론들을 제거하고 재단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욕실에 들어가 꼬질꼬질한 몸을 닦아내고 그가 방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점심을 대강 때우고 책을 읽고 있는데 창밖으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가 그를 잡아 세우고 어디에 가는지 물었다. 장을 보러 간다는 그의 말에 조심스레 동행해도 되는가 물어봤더니 그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붉게 홍조 띤 얼굴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신중하게 식재료를 고르는 그의 모습이라던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고 말았다. 자신의 태도에 놀랐는지 멈추어선 그에게 마주 잡은 손을 들고 머리를 가리켰다. 그는 제 뜻을 알아들었는지 잠시 자신을 빤히 바라보더니 붉어진 얼굴로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짐을 내려놓고 마주앉아 그의 볼을 손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놀라 흔들리는 동공마저 예뻐 보여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긋하게 물었다. 제 마음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 솔직히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이어질 그의 행동을 받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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