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토닥이며 쌓인 일들을 처리하였다. 그렇게 바쁜 나날이 지났다. 주변에서는 냉혈안이다. 사람이 아니다. 따위의 말을 지껄였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둘째동생은 부모님의 부재가 힘들었는지 잠시 별장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 보낼 순 없기에 호위와 몇몇 메이드를 붙여 가까운 별장으로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떠나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둘째 동생을 보내고 난 뒤, 막내동생을 유모에게 맡기고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조사하였다. 부모님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영지까지 시찰하다 보니 며칠 정도 저택이 아닌 외지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막내동생이 걱정되었지만, 유모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운 것이었는데... 저택을 비운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내동생이 몽유병 증세를 보인다고. 밤마다 부모님의 방을 헤매다 제 방에서 잠이 든다고.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리 빨리 나을 리 없는데. 재빨리 짐을 챙겨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택에 도착하니 해가 진 늦은 저녁이 되었다. 자신을 마중 나온 집사와 유모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들었다. 동생을 만나기 전, 몸에 달라붙은 먼지들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 구석구석을 닦고 나오니 제 방에 작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새근새근 잠이 든 제 동생을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유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내동생이 사라졌다고 울먹이는 유모에게 여기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니 마음이 놓인 듯, 웃으며 좋은 꿈 꾸라고 방을 나서는 그녀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였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울먹이는 동생을 껴안고 토닥거리자 훌쩍거리다 이내 안정되었는지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동생이 걱정되어 집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처리하며, 조사 업무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제가 저택에 있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정신적인 문제다 보니 밤이면 제 방을 찾는 동생의 모습에 잠은 제 방에서 같이 자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어린애도 아니고 왜 같이 자냐고 툴툴거리던 동생도 몇 번 같이 자더니 괜찮았는지 이제는 제가 알아서 잘 시간이 되면 자신의 방을 찾아왔다. 평소와 같이 서류업무를 마치고 동생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의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집사가 한 무리의 메이드들을 어딘가로 데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오는 곳을 보아하니 동생이 무언갈 시킨 것 같은데... 의문을 잠시 접고 도착한 동생의 방문을 열자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자신을 반기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셔!”
“책을 읽고 있었나?”
제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기대어 앉은 부드러운 은발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부빗 거렸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간지러워 볼을 꼬집자, 베시시 웃는 모습이 또 귀여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건 그렇고 집사가 메이드들을 끌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나?”
“으음~ 별거 아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느라”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동생의 모습에 무언가 미심쩍었지만,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았는지 부비적거렸다.
품에 안겨 뒹굴던 동생은 졸렸는지 꾸벅거리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든 동생을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동생의 책장으로 다가갔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동화가 아닌 꽤 어려운 책들도 많이 꽂혀있었다. 괜찮은 책 두어 권 정도 골라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 읽다 보니 꽤 늦은 시각이 되었다. 슬슬 자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는 데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한구석에 놓인 잘 관리된 낡은 액자. 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조심스레 들어 올린 액자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눈가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낡은 액자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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