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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다무] Pomodoro

2015. 7. 31. 05:14 | Posted by 아뮤엘

“편식은 좋지 않다고 했거늘. 먹어라”
“아 싫다고~ 사부나 드셔”
요즘 제철이라 그런지 맛좋게 익은 토마토를 먹기 좋게 잘라 내놓으니 제 제자는 싫다며 떼를 쓰고 있었다. 영양 성분이 많아 성장기인 제 제자에게는 좋은 것이 틀림없는데 제 마음은 알기나 하는 건지 한숨이 나왔다. 일단 아이가 토마토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다. 영양소가 파괴되긴 하지만 맛은 좋아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방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먹기 좋게 자른 토마토를 그릇에 넣고 설탕에 재워 냉장고 안에 넣었다. 수련이 끝나고 돌아와 단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한 번 먹어보라고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아이를 이끌고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회사에 출근했더니, 문제가 생겨 업무에 지장이 있어 오늘 하루는 일을 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을 하다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골목을 지나 저택으로 들어갔다. 수련을 갔는지 굳게 닫힌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거실로 발걸음을 옮겨 제 겉옷과 가방을 소파 위에 놓고 그대로 욕실을 향했다. 찐득한 더위에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끈적거렸다. 옷을 벗어 젖지 않게 선반 안에 넣고 물을 틀어 샤워를 하였다. 평소 자신이 쓰던 세면도구 대신 그가 쓰는 것들로 쓰니 제 몸에 그의 향이 배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둘러 중요 부위만 가려 나왔다. 입고 온 옷을 입으려니 찜찜해져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고 익숙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옷장 문을 열어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들이지만,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와 공유하는 것도 많아졌다. 이렇게 그의 집에서 그의 물건을 쓰는 것도 제집에서 제 물건을 사용하듯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샤워로 뽀송뽀송해진 피부를 다시 끈적거리게 하고 싶지 않아 에어컨을 켰다. 슬슬 그가 돌아올 시간이기도 했고. 아침을 허술하게 먹은 탓인지 출출해졌다. 뭔가 먹을 것이 없나 싶어 냉장고를 여니 각종 먹거리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티엔은 바로바로 요리를 해먹는 스타일이다 보니 음식보다 음식재료가 더 많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도중 그릇 안에 담긴 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오면 같이 점심을 먹을 것이 분명한데 간단하게 배만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꺼내 식탁 위에 놓고 앉아 하나 집어 먹었다.

“.....!” 

달다. 설탕에 절여 놓은 것인지 달달함이 입안에 맴돌았다. 너무 달다. 하지만 싫지는 않아 느릿하게 하나씩 집어 먹었다.

“사부는 진짜 사람이 아닌가 봐"

"사람이다만”
“사부가 사람일리 없어. 안 그럼 이런 날씨에 하나밖에 없는 제자를 이렇게 굴리냐고!!”
아.. 그러고 보니 매우 덥군”
“진짜 사람새낀가
혀를 차는 제자를 뒤로하고 문을 열기위해 열쇠를 꽂아 돌렸다. 잠겨 있어야 할 문이 열려있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낯익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일텐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왔나?”
부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토마토를 집어 먹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토마토?
“어, 형씨 놀러왔....”
“......”
“무슨
문제라도 있나?”
제 제자도 그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는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단 건 싫다고 한 거 같은데. 맛있다는 듯 오물거리며 먹는 그의 모습이 새로워 제자와 둘이서 멍하니 서서 그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정작 본인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토마토를 집어먹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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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quietud -下-

2015. 7. 31. 04:18 | Posted by 아뮤엘

어느새 도착한 철문 앞에 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충격에 떨렸던 손을 꽉 쥐고 문을 열었다. 감옥 안에 들어가자 침대 위에서 손발이 묶인 채 명상을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에 문신만 없지, 헤이와 같은 얼굴이었다.
“....싱
?
감겨 있던 눈이 뜨며 싱이라는 클론을 찾는 그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갔다.
흐응~ 너구나? 그가 신경 쓰고 있다는 아이가”
“......”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실례잖아.”
“컥”
화가 났다. 그의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했다. 나는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그는 한낱 클론 따위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닮은 얼굴을 제 발로 차버렸다. 대답을 피하는 클론에게 화가 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에 대한 원망일까. 힘없이 쓰러지는 그를 바라보다 근처에 있는 의자를 들고 그의 얼굴이 보이는 곳에 놓고 앉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 닮았네, 그와”
“......”
정말이지
똑 닮은 얼굴. 그의 유전자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기에 고통에 눈을 찌푸리는 얼굴마저 사랑스러웠다. 조심스레 얼굴을 쓰다듬으며 제 속내를 내뱉었다.
“그거 알아? 너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게.. 무슨?”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알 리가 없지. 그의 몸 위에 이불을 덮고 이불을 치우지 못하게 그 위에 누웠다. 헤이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설마 그에게 반한 건가? 그럼 나는 이제 버려지는 건가. 꿈틀거리는 남자의 행동이 제 생각을 방해하였다.
“그 상태로 있어. 네 얼굴을 보면 좀 힘들 것 같거든
“내 존재만으로도 위협된다는 것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남자를 뒤로하고 생각을 정리하였다. 실험이 끝나고 잊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클론을 주시하고 있던 헤이. 그리고 우연인 듯 자신에게 보고된 클론에 대한 보고서. 마틴이 그 재단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나? 그를 재단에서 빼 오는 과정도 너무 수월했다. 아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실험.. 그래 클론 실험 때도 너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마치 이미 짜여 있었다는 듯이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그럼 자신에게 보고된 클론에 대한 조사도 제가 헤이에게 말하길 원해 일부러 올린 것인가? 누구지? 누구..?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확인하고 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이 틀리길 만을 바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쉿. 목소리 낮춰주세요. 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그가 알면 안 되니까요”
아...”
“그리고
충격에 동요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정신 차려줄래요? 다 들려요”
아.. 잠시 눈을 감고 애써 마음을 추슬러 그에게 제 속내가 들키지 않도록 하였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그를 쳐다보니 웃으며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을 마저 닫았다.
“그래서 네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아아, 헤이씨를 만나러 왔어요. 겸사겸사 그가 잘 지내나 확인하러 왔는데 당신이 있었던 거죠”
“...읽었나
?”
“다 좋은데, 묻지 않는 편이 좋을걸요?”“어째서지?”
“당신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아마 그걸 묻는 순간 당신과 그의 관계가 비틀리지 않겠어요?”뭐 저는 그편이 더 좋지만. 작게 말을 덧붙이는 그의 모습이 얄미워 주먹을 쥐었다.
“폭력은 좋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헤이씨에게 비밀입니다?”
“하나만 묻지. 네가 그랑플람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아. 그건 비밀이에요. 그럼 전 이만”
생긋 웃으며 지하를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이제 난 어떡하면 좋지. 응? 헤이,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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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quietud -中-

2015. 7. 31. 03:34 | Posted by 아뮤엘

그의 집무실에 들어가니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다가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는 쿡쿡 웃음소리를 내며 몸을 반쯤 돌렸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자 그가 제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끌어당겨 그의 무릎에 앉게 하였다.

“왔나?”

“응. 잘 지냈어?”“그렇게 말하니 새삼 미안해지는군. 너야말로 잘 지냈나, 바이?”“으응~ 어떨까?”

토라졌다는 듯 볼을 부풀리며 얼굴을 돌리자 잘못했다며 제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태도에 서운했던 마음이 풀렸다. 요 며칠 못 봤을 뿐인데 수척해진 듯한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준비했던 것을 말했다.

“헤이.. 혹시 우리가 예전에 실험했던 거 기억나?”

“아아.. 클론이었나?”

“응. 그 클론 중 하나가 헤이처럼 기운을 나누어 분신을 만들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어때 흥미롭지 않아? 그의 품에 부빗거리며 말을 이으니 그는 고민하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이내 대답하였다.

“그 클론의 이름은?”“티엔 정이라고 중국에 보냈던 클론이었나 봐”

“아아...”

생각났다는 듯 웃으며 그래, 그럼 그 클론들을 다시 데려와서 연구해볼까? 라고 대답했다. 나는 작게 끄덕이고 오랜만에 안긴 품을 즐겼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마침 티엔이라는 자가 있는 곳에 마틴이 있었기 때문에 마틴을 이용해 수월하게 그를 빼 올 수 있었다. 지하 감옥에 가두어 놓고 그에 대해 한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를 데려오기 위한 작전을 짜기 위해 헤이와 한동안 계속 붙어있었고, 데려온 이후 그에 처우에 관한 문제로 계속 붙어있었으니까. 그저 그가 같이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 그러던 어느 날, 임무로 인해 자리를 비운 헤이의 방에서 서류 봉투를 발견하였다. 꽤 묵직한 서류 봉투를 보아하니 한 두 장도 아닌 여러 장의 서류뭉치가 들어있는 듯하였다. 절대 방에서 일을 하지 않는 그였기에 궁금해졌다. 어떤 문제이길래 방에서까지 일하는 거지? 조심스레 서류 봉투를 들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후회하였다. 읽지 말걸. 서류는 꽤 오래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시간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최근의 서류를 들어 읽었다. 낯익은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클론? 설마.. 다른 서류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다. 제 눈을 의심하며 모든 서류를 읽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텼다. 쌓여있던 서류는 다 티엔이라는 클론에 대한 서류였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접촉하였는지 상세히 적혀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정리해 서류봉투에 넣고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꿈이길 바랐지만. 하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그 잘난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제가 사랑하는 이의 관심을 온몸에 받고 있는 주인공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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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quietud -上-

2015. 7. 29. 05:01 | Posted by 아뮤엘

처음으로 본 세상은 새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눈을 깜박이니 어떤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존재가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는 말했다. 자신이 그의 기운을 나눈 분신이라고.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면 되냐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 대신 죽는 일이라면 조금은 사양하고 싶었다. 태어난 이상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으니까. 담담하게 묻는 제 말에 그는 미소를 띠며 자신을 헤이라고 소개했다. 뜬금없이 이름을 소개하는 그의 태도에 아, 나는 그의 대타로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정리했다. 그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저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그는 제 머리를 쓰다듬더니 대타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자신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말을 이었다.

“너는 바이. 내 소중한 분신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는 나를 소중하다는 듯이 다루어주었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몸을 섞기도 하면서 그의 연인이 되었다. 그는 나를 소중히 대해주었지만, 나는 늘 마음 한구석에서 그에게 버림받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기 위해, 그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자신이 그의 손 위에 놀아나는 장기 말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며 속삭여줬지만, 그 말이 진짜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들이지만 그가 클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과 그 사이에 조금씩 보이지 않는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 호기심에 시작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이 클론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모두 그가 자신이 관심을 가지도록 의도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클론에 대한 실험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이상했다. 자신이 떼를 쓰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작한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치 실험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실험에 대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리 비에르노라도 긴 준비 기간 없이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인데 그때의 자신은 비에르노니까 가능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넘겨짚었다. 순조롭게 진행된 실험. 그리고 이내 잊어버린 클론 실험. 솔직히 그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한 행동들이었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조직 내 업무로 바쁜 그와 함께 있고 싶었으니까. 그런 실험이라도 하면 자신과 같이 있을 시간이 길어지니까. 노인이 죽고 나서 조직의 수장이 된 헤이는 바빠졌다. 저도 조직 내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게 되었고 맡은 업무를 하다 보니 클론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노인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업무도 줄고 그와 함께 있을 시간이 늘어났다. 그냥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계속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집무실에 앉아 제 몫의 서류를 처리하던 도중 잊고 있었던 클론에 대한 이야기가 서류로 올라왔다. 요즘 릭이랑 비에르노랑 셋이서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바빠 그를 보지 못했다. 클론이라면 그가 관심 있어 하던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서류의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클론의 이름은 티엔 정. 마틴이 속해있는 그랑플람 재단의 스카우터라고 적혀있었다. 그와 똑같이 생긴 얼굴. 다만 다른 것이라면 한쪽 팔에 있는 검은 문신과 눈 색, 그리고 티엔이라는 클론의 얼굴에는 뱀 문신이 없었다. 다음 장으로 넘기니 싱이라는 이름을 가진 저와 똑같이 생긴 이의 사진이 있었다. 티엔이라는 클론의 반대 팔에 흰 문신과 눈 색이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체중과 키는 뭐.... 다음 장을 넘기자 이 둘에 대한 상세 설명이 적혀있었다. 티엔이라는 클론이 폭주하는 제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기운을 나눴는데 거기서 나온 것이 싱이라는 존재였다. 저와 같으면서 다른 존재. 자신은 죽어도 헤이에게는 별 영향이 없지만, 이 싱이라는 존재는 죽음은 본체인 티엔이라는 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점이 미칠 듯이 부러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괜찮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듯이 그도 자신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흐르는 피를 닦아내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피가 멎은 것을 확인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전할 내용을 간추려 집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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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9. 03:42 | Posted by 아뮤엘

눈을 뜨니 어두운 방 안이 눈에 들어왔다. 아... 또 여긴가? 손목과 발목은 묶여있는 상태로 침대에 방치된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건지, 싱은 괜찮은 것인지. 여러 상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독한 악몽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니...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감시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온전히 스스로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다 조작된 것은 아닐까?

“....부질없군”

오랜 기간 감금 생활은 자신의 정신을 좀먹어갔다. 대화할 상대도 없고, 같이 납치된 싱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자주 보였다. 감금한 이들의 목적은 자신을 미치게 하는 것인가? 나름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다고 자부했던 자신도 이 모양인데 싱은 괜찮은 것인지


자신을 데려왔으면 이유가 있을 터인데, 이렇게 방치를 해놓고 찾아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짜 자신이 미쳐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기는 것인지?

“..후우...그만..”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억지로 끊어 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마음을 다스릴 겸 침대에 앉아 명상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끼익- 자신이 감금되고 열린 적 없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눈을 떠 문에 시선을 두자 한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싱?”

싱을 똑 닮은 얼굴을 한 남성이었지만, 체격과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피처럼 붉고 투명한 적안이 그가 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흐응~ 너구나? 그가 신경 쓰고 있다는 아이가”

“......”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실례잖아.”

“컥”

불길한 느낌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싱과 닮은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 얼굴을 발로 찼다. 평소라면 버텼을 자신이지만, 오랜 감금생활로 인해 쇠약해진 몸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행히 맨바닥이 아닌 침대 위였기에 크게 다치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싶어 남자를 쳐다보니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의자를 가져와 제 앞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정말 닮았네, 그와”

“......”

자신의 얼굴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새하얀 손으로 제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는 남자의 행동에 째려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 너의 존재만으로도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게.. 무슨?”

자신의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 위협이 된다니.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제 혼란을 읽은 것인지 남자는 알 리가 없지라고 작게 내뱉으며 제 몸 위에 이불을 덮었다. 몸 전체를 덮은 이불이 답답해 이불을 치우려고 했지만, 위에서 누르는 남자의 행동에 이불을 치울 수도 없었다.

“그 상태로 있어. 네 얼굴을 보면 좀 힘들 것 같거든”

“내 존재만으로도 위협된다는 것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야.”

“......하....”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그냥 상대하지 않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방 안에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남자도 더 이상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싱과 닮은 남자가 신경 쓰였지만, 묻는다고 해도 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아 그저 남자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닫혔던 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드디어 돌아가나 싶어 이불을 살짝 걷어내니 방 밖으로 나서는 새하얀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그와 이야기를 하는 듯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잊어달라는 듯 입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동시에 닫히는 문이 닫혔다.

“....마틴 챌피?”

그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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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Karma -2-

2015. 7. 29. 02:36 | Posted by 아뮤엘

눈을 뜨니, 눈앞에 꿈속의 사내가 보였다. 연약한 사람. 겨울을 닮아 새하얀 머리와 탐스럽게 익은 사과가 떠오르는 붉은 눈을 가진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 이렇게 아름다운데, 다르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버림받았다.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조심스레 쓰다듬자 이젠 내가 있어 괜찮다고 웃는 그의 모습에 남을 원망하지 않는 그가 바보 같아서 꼭 안았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자니, 밖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문으로 향하는데 그가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미안하다고 다가와 살짝 입을 맞추었다 떨어졌다. 나는 괜찮다고 그를 껴안아주고 집을 나섰다. 산으로 가 열매와 나물을 캐고 제 몫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하게 지내던 여인이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한 마리 건네줘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왔다. 꽤 풍족한 먹거리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문을 여니 잠이 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햇빛에 약한 피부 때문에 낮보다는 밤에 활동하는 그이기에 자신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무렵에는 항상 잠든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깊게 잠이 든 그가 깨지 않게 조용히 저녁 준비를 하는데 언제 깼는지 뒤에서 끌어안고 다녀왔어? 라고 속삭이는 그의 행동에 나는 또다시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춘다. 오늘은 밥상이 풍족할 거 같아.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고 그도 마주 웃는다.


누군가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해지며 큰형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형 왔어?”

“아아.. 내가 깨운 건가?”“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어깨에 기대었다.

“또 꿈을 꿨나?”

“...아아..”

조심스레 걱정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묻는 형의 모습에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빌어먹을 꿈. 형들에게 걱정 끼치는 것은 싫었지만, 자신이 꿈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바로 지금만 해도, 정말 거지같이 자신이 그 여인네가 되어 그 남자에게 설렜던 감정이 아직도 제 안에 남아있었다. 한낱 꿈에 휘둘리고 있는 제 모습이 정말 싫었다.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형을 보니 고민이 되었다. 숨기기만 해서는 해결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도 그 꿈의 내용을 말하기에는 꺼려졌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이글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동안 꾸었던 꿈의 내용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형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괜히 말했나 싶어 다 말하고 나서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싶어 입을 떼려는데,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힘들었겠군.”

“어.....아니.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 것 같나?”

“그게 모르겠다구~ 솔직히 둘이 부족하지만, 화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못 느끼겠어”

도저히 그 여자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만을 말하기가 꺼려져 말하지 않았다. 형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고민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아아, 아직 업무가 덜 끝났으니까”

괜히 걱정만 끼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형을 보니 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 이마에 입을 맞췄다.

“괜찮으니 걱정마라. 무리하지 말고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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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viaje

2015. 7. 27. 03:31 | Posted by 아뮤엘

변덕이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간다는. 회사에서는 우리 사이를 친한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둘이 같이 취미생활이나 즐기면서 쉬려고? 라고 웃으며 질문해왔다.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될 것을 이 고지식한 새끼는 바닷가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설명을 하였다. 오오~ 가을 바단가? 좋네~ 근데 사내자식 둘이서 놀러 가기에는 좀 그렇지 않냐? 에이 저 녀석들도 남잔데 거기서 여자를 꼬시겠지. 그런가? 이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놈들을 뒤로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섰다. 회사에서 돌아와 간단하게 몸을 씻고 갑갑한 정장에서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로 떠나기로 했기에 서둘러서 짐을 챙겼다. 별장에 웬만한 건 준비되어있으니 간단하게 챙기라는 그의 말을 떠올리고 간단히 옷과 지갑 따위를 여행 가방에 챙겼다.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저녁에는 쌀쌀했기에 즐겨 입는 가디건을 꺼내 입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언제 온 건지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는 알베르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은 다 쌌냐?”

“뭐, 별장에 대충 준비되어 있으니 간단한 것만 챙겼네”

“그래? 그럼 뭐.”

트렁크를 열어 여행용 가방을 넣고 뒷좌석에 앉았다.

“왜 거기에 앉나?”“이 자리가 편하니까.”

“내 옆에 앉게”

“싫다.”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이거 싫거든? 말도 아니고 탈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고”

“멀미인가. 약이라도 챙겨올걸. 괜찮겠나?”

“그냥 자면 되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넓은 뒷좌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저를 배려하는 것인지 잔잔한 노래를 틀고 운전을 하였다. 전날 늦게까지 연구를 해서 그런지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몇 시간쯤 잤을까? 잘 달리던 차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뜨니 앞좌석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알?”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불을 켜 차 안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도로인가? 으스스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나무만 가득할 뿐 알베르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야, 알!”

“불렀나, 렉스?”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에 놀라 뒤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새꺄 놀랐잖아”

“아아, 깊이 잠들었길래. 깼을 거라곤 생각 못 했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냐? 길이라도 잃은 거냐?”

제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반항하듯 살짝 쳐내자 키득거리며 웃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들릴 곳이 있어 잠시 멈춘 거라네. 흐음.. 그건 그렇고”

“뭐, 뭔데. 저리 가 새꺄”

저를 훑어보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밀쳐내고 차에 올라타 차 문을 잠갔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열어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뒷좌석에 길게 누워 창가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늘 가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생각해보니 춥던데 괜스레 미안해져 문을 열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잠겼던 문이 열리며 알베르토가 안으로 들어왔다.

“..ㄴ....어떻게?”“아무리 놀랐어도 그렇지. 밖에다 사람을 버리다니 내가 차 열쇠를 두고 갔으면 어쩌려고 했나?”

“아니.. 지금 열ㄹ...”

“늦었네, 렉스.”

제 몸 위로 올라타는 알베르토를 손으로 밀어냈지만, 위에서 누르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끈으로 제 손목을 묶는 그의 행동에 저항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만, 해. 새꺄. 도로 한가운데서 뭐하는 짓이야.”

“아무도 오지 않으니 걱정 말게, 렉스”

“새꺄. 그 말이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불을 끄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는 미소를 띄우며 켜놓았던 불을 끄고 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맞추었던 입술을 떼고 제 상의에 손을 넣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나쁜 어린이는 벌을 받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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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lluvia

2015. 7. 26. 00:10 | Posted by 아뮤엘

창가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처럼 아름다운 음을 연주하였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들고 있던 노트를 내려놓았다. 어쩐지 춥더라니. 작게 투덜거리며 낡은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춥다고 느끼기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연구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한기가 몰려왔다. 일어난 김에 따뜻한 차라도 끓여 마실까 싶어 연구실에서 나와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을 동안 찬장에서 찻잔을 꺼냈다. 최근 즐겨 마시는 찻잎을 꺼내 세팅을 마치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던 드렉슬러는 티푸드가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티푸드를 같이 즐기는 것보다 차 자체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이었지만, 오늘따라 티푸드를 같이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가자니 창가로 보이는 세찬 비가 내리는 바깥 풍경에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티푸드를 안 먹기에는... 이럴 때마다 저택에서 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적어도 저택에 있을 때는 편했으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 어떡하지”

물은 끓기 시작했는지 작은 소음을 내며 수증기를 내뿜었다. 불을 끄고 의자에 앉아 이대로 차를 마실까, 아니면 저 밖으로 내리는 세찬 비를 뚫고 티푸드를 사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궂은 날씨에 저를 찾아올 이는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잘못 들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팔팔 끓는 물로 찻잔을 데웠다. 다시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현관으로 가 살짝 문을 여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베르토?”

“아아.. 잘 지냈나?”들고 온 우산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듯 반쯤 꺾여있었다. 손님을 밖에 세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욕실에서 수건을 꺼내 왔다. 수건을 건네주자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리며 꺼내보라며 가방을 건네주었다. 뭐지? 라는 생각을 하며 연 가방 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게의 쿠키와 컵케이크가 잘 포장되어 있었다. 세찬 비에 젖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물기 하나 없는 모습에 놀라 알베르토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온몸으로 지켰냐?”

“젖으면 저 비를 뚫고 가지고 온 의미가 없으니까”

“미련한 놈”

툴툴거리며 그가 입을 만한 옷을 건네주자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젖은 그의 옷을 빨래바구니에 넣고 물로 흥건한 바닥을 치우자 샤워를 마쳤는지, 그가 거실로 나왔다. 도와주겠다는 그의 말에 다 끝났으니 가서 앉아있으라고 말하고 청소를 마무리하였다.

“그건 그렇고 티푸드라니. 너 이거 싫어하지 않냐?”

평소 단것을 즐기지 않는 알베르토를 떠올리며 말하자 그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늘 이 시기가 되면 자네가 찾지 않나”

“엉?”

“매해 장마철이 되면 비는 내리는데 차와 같이 먹을 티푸드가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

“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을 그가 기억할 거라고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뒤따라 온 건지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놔라. 새꺄”

“말하다 말고 어딜 가나. 렉스”

“너 추울까 봐 차 끓여 주려고 한다. 왜 싫어?”

품에서 저를 놓지 않는 그를 팔꿈치로 치니 제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웃으며 떨어졌다.

“맛있는 차 기대하겠네.”

“걷다가 넘어졌으면 좋겠네. 진짜”

키득키득 웃으며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말게라고 말하며 소파에 앉는 그의 뒤통수를 향해 빈 가방을 던지고 다시 불을 켜 물을 끓였다. 허전했던 빈자리에 채워줄 티푸드를 세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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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incubo (Side.A)

2015. 7. 21. 02:44 | Posted by 아뮤엘

눈을 뜨니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뒤로하고 욕실로 나섰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구운 식빵과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각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아침을 먹으며 어제 회사에서 들고 온 잔업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각까지 한 시간가량 남아있었다. 평소 잠에서 잘 깨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식기와 서류를 정리하였다. 평소 입는 정장 대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갑과 열쇠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한 십분 쯤 걸었을까? 저 멀리 그의 집이 보였다.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도착한 그의 집은 정적만이 흘렀다. 자신의 예상대로 푹 잠을 자는 모양이라, 굳게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을 반기는 것은 어질러진 집안의 풍경이었다.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에 서툰 그였기에 가끔 자신이 놀러 와 정리해주었다. 널브러진 물건들을 집어 정리하며 집의 주인이 있을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불 속에 파묻힌 그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걷어냈다. 푹 잠이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악몽이라고 꾸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낮은 신음을 내는 그의 모습에 놀라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게, 렉스”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인지 감겼던 눈이 떠졌다. 잠에서 막 깨서 초점이 맞지 않는지 흐릿하던 눈이 곧 초점을 찾았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안겨오는 그의 모습에 조심스레 껴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 평소라면 장난치며 먼저 다가올 그인데, 선을 긋고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 다가가 묻기도 하고, 그의 집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심장에 상처를 내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심장만이 제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그가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매달리는 것도 지쳐갔다.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먼저 지쳐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나를 대하듯 나도 그에게 냉담하게 대하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같이 웃고 떠들며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행동하였다.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가오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내가 먼저 지쳐갔다.

“날 미치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대 성공이야, 렉스.”

정신을 차리니 물건이 깨지고 부서진 어질러진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자신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이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 봐 렉스. 내가 미쳐가고 있어. 너 때문에.”


어두워진 하늘에 비가 내렸다. 평소와 같이 야근을 마치고 서류를 정리하는데 크루그먼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작게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괜히 짜증이 났다. 그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정리하고 인사를 한 뒤, 회사에서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크루그먼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서랍 깊숙이 숨겨 놓았던 그의 집 열쇠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섰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불이 꺼진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질러진 물건들이 자신을 반겼다. 물건들을 피해 그의 집을 대충 둘러보았다. 밥은 제대로 먹는 건지 냉장고 안에는 식재료대신 음료들이 가득했다. 부엌에서 나와 그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체향이 가득 배어 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언제쯤 돌아오는 것인지. 크루그먼이 그에게 가진 감정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가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길래 이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 숨을 죽이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이내 거실에서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문에 귀를 대고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음료를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별일 아닌가 싶어 나가려고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에라도 나가 우는 그를 끌어안아 주고 싶었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그 마음을 잠시 접었다.

“....보고 싶어. 알베르토”


울음소리가 멎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문 앞에 서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울음소리 대신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고리를 돌려 나가니 무릎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들린 맥주 캔을 치우고 그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렇게 혼자 아파할 거면 날 피하지나 말던가. 이래서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잠이 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제 쪽으로 몸을 돌려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입가에 작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원망할 때는 언제고 결국 그의 작은 행동에도 풀어지는 제 모습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정작 그는 항상 그 작은 어깨에 모든 걸 짊어졌다. 항상 제 속내는 숨기는 그의 행동이, 혼자 끌어안고 상처받는 그의 모습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인가,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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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incubo (Side.D)

2015. 7. 20. 23:36 | Posted by 아뮤엘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네가 죽는 꿈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계속해서 죽는 너를 구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을. 깨어나고 싶어도 깨지지 않는 꿈에 정신이 조금씩 무너졌다. 죽지 마. 제발 살아줘. 또다시 너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나는 차가워진 너의 몸을 끌어안고 울었다. 제발 이 지독한 악몽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ㄹ...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자신이 좋아하는 저음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감긴 눈을 뜨자 흐릿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더 눈을 깜박이자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해지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너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손을 뻗어 너를 껴안았다. 아아, 따뜻하다. 품 안에 퍼지는 온기에 악몽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네가 죽다니, 그럴 리 없잖아. 그렇지?


악몽의 영향일까? 네가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평소라면 개꿈이라며 웃어넘겼겠지만, 너와 관련된 꿈이었으니까. 악몽 속 네가 죽는 원인은 늘 한결같았기에. 나는 자연스레 너와 멀어졌다.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서 느낀 것일까? 저로서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하듯 똑같은 태도로 널 대한 것이었으니까. 제가 잘못한 것이 있냐며 안절부절못해 하는 너의 모습을 외면하였다. 이편이 서로를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이었으니까. 그와 자신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이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멀어진 자신과 그의 관계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일상이었다. 밀린 업무에 짜증을 내는 타라라던가, 연이은 야근에 눈 밑이 거뭇해진 다이무스. 평소와 같은 일상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은 흘러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루 듯, 냉담하게 저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자신이 원한 것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이었는데. 다른 이들에게는 웃는 모습으로 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웃음없이 사무적으로 대하는 너의 태도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심장에 크고 작은 스크래치가 생겨났지만, 다 널 위한 거라며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끌어안았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윌라드가 오랜만에 술 한잔 어떠냐고 제안해왔다. 어차피 다음 날은 휴일이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주 가는 펍에 들려 한잔 두잔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술병이 쌓여있었다. 그만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윌라드에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펍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집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깜박거리는 가로등을 지나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나간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뒤로하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니 술기운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마시는 김에 한 잔 더 마시고 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맥주 한 캔을 꺼내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에 놓인 소파에 기대어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집 안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제 모습이 우스웠다. 이런 모습을 네가 본다면 잔소리를 하겠지. 술에 취해서일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너와의 추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왔다.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프다.

“....보고 싶어.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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