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뭐냐 일어나 있었냐?”
“...대답...”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인상을 쓰며 손에 힘을 주어 잡힌 손목이 아려왔다. 이 새끼가 잠에서 덜 깨더니 미쳤나 싶어 억지로 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빼려고 할수록 잡힌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만 늘어날 뿐이었다.
“ㅅ...수련장에 간다..좀 놔라!”
“아아...”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제 침대에 도로 눕는 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게 잠꼬대인가? 조심스레 방에서 빠져나오니 정적만이 가득한 복도가 자신을 반겼다.
“윽...”
아릿한 통증에 잡혔던 손목을 보니 붉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오늘 훈련은 글렀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바로 치료를 해야 빨리 낫고 증상이 악화되지 않을 텐데, 약을 꺼내기 위해선 방에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냥...아프고 말지”
훈련을 하려던 것도 못하게 되었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도중 창가에 비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어둑한 새벽하늘에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별들의 모습에 오랜만에 별이나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옥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옥상의 문은 잠가두지 않는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상쾌한 새벽 공기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털썩-바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어두웠던 하늘 한구석에 작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 붉은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져,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ㄹ...스”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비척거리며 일어나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베르토?”
“일어났는가, 드렉슬러?”
“지금이 몇 시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평소와 같이 손을 딛고 일어서려는데 찌릿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지만, 알베르토가 재빨리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놓아라”
“괜찮나?”
“됐고 몇 시인지만 말해”
“11시 반 정도 되었군. 그건 그렇고 손목은 누가 그랬나?”
꽤나 창피한 모습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을 여성을 하듯 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나 쏘듯 그에게 시간을 물었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걱정하였다. 잠에 취한 녀석에게 손목을 붙잡혀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해봤자 기억을 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아하니 이미 훈련은 끝난 것 같고, 애초에 훈련에는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욱신거리는 손목을 들어 확인하니 그냥 응급처치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뭐 하겠는가? 드렉슬러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얼음 팩을 만들어 찜질하였다. 언제 들어온 건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네놈이 그런 거다 짜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녀석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자신의 팔목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어찌 되었던 그와 앞으로 최소 1년 이상은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서로 불편해야 하는 점은 없어야 하니까라는 생각이었다. 같이 지내면서 지켜야 할 점이라던가, 피했으면 좋겠는 점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그것뿐.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은 불편한 저이기에 먼저 선을 그어놓은 것이었는데...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일 년쯤 지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그와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내 생활을 최대한 배려하며, 내가 연구하는 것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와 충고를 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새벽에 따로 훈련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같이 수련을 하며 서로의 훈련을 돕기도 하였다. 새벽 훈련으로 오전 훈련을 대신하고 그 시간에 연구하는 자신과 달리 오전 훈련까지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그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련을 하면 힘들지 않냐고. 그는 답하였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자신이 강해지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이가 더 늘어나지 않겠냐며 웃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보 같은 놈.. 그 날 이후로 그가 훈련을 끝마치고 오면 음료를 건네주는 것으로 더는 묻지 않았다. 사서 고생하는 놈에게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게 뻔하니까..
그날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연구에 대한 진전이 없어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지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 뒹굴거리다 깜박 잠이 들었는지,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알베르토를 둘러싸고 조잘거리고 있었다. 알베르토 놈은 다른 기사들에게 모범이 되었기에 때문에 자신과 달리 다른 놈들에게 인기가 많아 붙잡혀 수련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보아하니 오늘은 숙소 앞에서 붙잡혀 예찬론을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가져와 그 모습을 구경하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정도를 넘어 섰달까. 한 놈은 알베르토 놈에게 달라붙질 않나, 다른 한 놈은 알베르토의 사생활까지 캐내려 하지 않나, 그 외 다른 놈들도 엇비슷했기에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없이 음료나 홀짝이며 지켜보고 있는데, 한 놈이 알베르토 놈의 팔을 꼬옥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기분이 나빠져 창가를 벗어나려는 순간 알베르토 놈과 눈이 마주쳤다. 도와주게나. 새내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 모양으로만 뻐끔이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싫은데? 제 입 모양을 읽은 것인지 작게 한숨을 쉬며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네. 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아라고 대답을 한 뒤, 들고 있던 음료를 내려놓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그를 불렀다.
“야, 알베르토! 너희 가문에서 편지가 왔는데 급해 보이더라?”
제 목소리가 들렸는지, 놈에게 붙었던 놈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였다. 알베르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째려보는 새내기들에게 비웃어주며 창가를 벗어났다. 알베르토는 지친 기색으로 방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포옹를 하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는 내꺼야 애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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