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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로라드렉 2/14일 합작

2016. 1. 19. 19:41 | Posted by 아뮤엘

 너와 나의 관계는 언제나 그랬다. 그래,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처럼 타인이 보기에는 흔히 말하는 연인의 모습을 우리는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물어봤다. 너희 둘 이러다 결혼하는 거 아니냐? 그럴 리가 있냐며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 그의 미래엔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뭐 같은 일이었기에 떠올리자마자 기분이 더러워졌다. 왜 우리는 선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서로 같은 성별을 가진 이들의 사랑이라서? 주변 사람들의 눈이 신경 쓰여서?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저 둘만의 시간을 즐기며 사는 것이 행복했으니까. 불쾌하다.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머리 아프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지그시 누르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더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두통을 잊으려고 노력하며 눈을 감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몰려오는 수마에 기대 생각의 늪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곧 깊은 어둠 속에 잠식되었다.


 눈을 뜨니 벽에 걸린 시계가 흐릿하게 보였다.

“11시...20분?”

아...망했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빌어먹을 회사라던가, 일 따윈 개나 줘버리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회사에 단 한 번도 지각을 해본 적도, 일을 게을리 한 적도 없는 저였기에 지금 이 상황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지각도 지각이지만 늦잠이라니? 눈을 비비고 다시 시계를 쳐다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지금 준비해서 씻고 회사를 간다 한들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오늘 별다른 일정도 없었으니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불마녀의 잔소리도 잔소리지만, 그저 밖을 거닐고 싶었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하였다. 간단하게 씻을까 순간 고민을 했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도 그렇고 그냥 씻고 싶었다. 머리 위로 흐르는 찬물을 하염없이 맞고 있었다. 이러면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들이 다 흘러 사라지지 않을까?

“...실없는 소리...”

차가워진 몸을 수건으로 닦고 욕실을 나서니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난 뒤라 그런지 고파오는 배를 안고 부엌으로 향하였다. 간단하게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냉장고를 열어봤지만, 텅 비어있었다. 요 며칠 야근 때문에 밥 먹을 시간이 없었긴 했지만, 아무것도 없다니... 생각해보니 욕실에 샴푸나, 휴지 같은 것들도 떨어져 있던 것이 떠올랐다. 집안일에 무심했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지만, 항상 도맡아 하던 이가 있었기에 딱히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아... 미치겠네.”

간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필요한 물품들을 종이에 적었다. 혹시 빼먹는 것이 있나 몇 번씩 확인하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사야 할 물품이 많았기에 다 들고 올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게 늘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마켓에 도착했다. 바구니를 들고 마켓 안으로 들어가자 신선함을 뽐내는 채소와 과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신선함에 이끌려 살까? 순간 고민했지만, 집에 있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유통기간이 긴 통조림 따위를 주로 사고 신선한 과일 조금과 야채를 구매하였다. 이미 먹을거리로 가득 찬 바구니를 점원에게 부탁해 계산대에 맡겨놓고, 새 바구니를 들고 생활용품이 있는 곳으로 가 필요한 것들을 담았다. 필요한 것만 산다고 샀음에도 묵직해진 바구니를 보며 연구용품은 나중에 사기로 하고 돌아가는 길 베이커리에 들려 샌드위치와 바게트를 추가로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온 짐을 정리하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있자니 괜스레 그가 떠올랐다. 이번 출장지는 동양이라던데, 입맛이 까다로운 녀석이라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걱정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알아서 하고 돌아오겠지 라며 별생각 들지 않았는데 몸이 약해진 탓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짜증났다. 샌드위치를 입에 털어 넣고 소파에 기대듯 누웠다.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을 하든 그가 떠올랐으니까, 외면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혼자가 익숙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불편했다. 아니 무서웠던 걸지도 모른다. 마음을 주면 언제나 사람들은 자신을 배신했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자신을 바꾸어 놓았다. 그와 함께하면 즐겁고 행복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항상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어느새 빠져버렸다. 감추었던 감정들을 하나둘 일깨웠다. 조금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자신은 너라는 존재에게 침식당해 물들고 말았다. 이제 나라는 존재에게는 네가 전부인데,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어떡하면 좋지? 나는 네가 직접 표현해줬으면, 다른 사람 앞에서 날 너의 연인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데 너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뜨니 창문 사이로 새어 나온 어슴푸레한 빛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불을 켜니 5시 조금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보였다.

“으음... 어림잡아 10시간 정도 잔 건가?”

평소라면 운동을 하러 갔을 시간이지만, 어제 회사를 무단으로 결석한 것 때문에 쌓여있을 업무가 떠올라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기로 하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였다. 어제저녁을 먹지 않고 자서 그런지 평소보다 허기진 상태였기에 든든하게 먹을 생각이었다. 과일을 잘 씻은 다음 먹기 좋게 자르고, 딱딱해진 바게트에 마늘과 버터, 설탕을 섞은 소스를 발라 오븐에 살짝 구웠다. 소시지와 달걀까지 요리해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평소와 달리 풍성해 보였다. 요리하는 동안 내려진 커피를 곁들여 아침 식사를 하니 6시가 되었다. 그릇들을 깨끗이 설거지한 뒤,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젖은 머리를 말린 뒤, 평소대로 머리를 세팅하고 제복을 꺼내 입었다. 옷에 주름이 있는지 확인한 뒤, 서류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잘 정돈된 거리를 따라 걸으며 올려다본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다만 문제는...

“무단결근에 대한 처벌인가..?”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마녀도 마녀지만, 크루그먼의 반응이 걱정되었다.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무거워지는 발을 겨우 이끌고 회사에 도착하였다. 빠르게 사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출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막과 어둠이 감도는 사무실에 불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깨끗한 자신의 책상이었다. 무단결근을 했으니 어제 분의 서류가 쌓여있어야 정상인데, 왜? 자신에게 누군가가 설명해줬으면 좋겠지만, 사무실에는 그 궁금증을 풀어줄 이가 없었다. 일단 계속 서 있는 것보다 자리에 앉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개인 물품을 꺼내기 위해 서랍을 여니 곱게 접힌 종이가 놓여있었다. 종이를 꺼내 펼치자 안에는 낯익은 필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아파서 쉰다고 설명했으니 걱정 마시길.’ 크루그먼인가. 어제 못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일찍 왔더니, 크루그먼의 배려로 할 것이 없다니. 나중에 고맙다고 술 한 잔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출근 시간이 되었는지 하나둘 늘어가는 목소리에 기지개를 켜니 주변에서 자신을 봤는지 괜찮냐는 질문이 날라왔다. 이제 괜찮으니 신경 끄라는 대답을 해주고 하나둘 올라오는 서류를 처리하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흘렀다. 쌓여가는 서류에 욕을 날리다가 불마녀에게 잔소리 듣고, 돌아가는 길 크루그먼과 홀든을 끌고 가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네가 없는 옆자리를 그리워하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발렌타인데이라고 사무실 안을 가득 채운 초콜릿 향에 머리가 아파졌을 무렵이었다. 꼬마 아가씨가 선물이라며 주는 상자를 가방에 넣는데, 홀든이 어떤 여성이 자신을 밖에서 찾고 있다며 나가보라고 말했다. 자신을 찾아올 여성이 있던가? 가문과 관련된 사람이겠거니 하고 나갔더니 모르는 여성이 서 있었다. 누구냐고 묻자 그녀는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말하며 자신의 팔을 이끌었다. 여성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였고, 더군다나 장소가 회사였기에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그녀를 따라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 들어서자 점원은 창가 쪽으로 안내하였다. 맞은편에 앉은 여성이 자신에게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답하였다. 알겠다며 커피 두 잔을 내달라고 점원에게 부탁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오늘은 야근확정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무슨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데 여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알베르토 씨와 친하시다고 들었어요.”

“...엉?”

“같이 동거를 하신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사실인데, 그게 아가씨랑 무슨 관련이 있지?

“저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의 여자가 될 사람이거든요.”

당당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한 여인의 모습에 허탈해졌다. 그 녀석도 한 가문의 장자이니 약혼녀가 있을 거라 생각은 했는데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뜩이나 그 녀석과의 관계에 대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고민이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연애소설 속 상황이 재현될 줄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결국 그 녀석이 입이 아닌 타인의 입으로 이별을 통보받는 것인가? 기분 참 더럽네. 살짝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의 모습에 확신을 얻은 것인지 여자는 말을 이었다.

“그에게 전해 듣지 못했나요? 다가오는 봄에 그와 결혼을 할 예정이거든요.”

“......”

“이제 전쟁놀이는 그만두고 그도 가업에 집중해야 하니까 회사를 그만두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제 생각엔 당신이 걸림돌인 것 같아서 말이죠. 우리 그이에게서 떨어져 주시겠어요?”

“하아, 그래. 내가 떨어진다고 하면 얼마를 줄 예정이지?”“이 정도면 당신 복 받은 줄 아세요. 서민한테 이렇게까지 돈을 주는 거 흔치 않거든요.”

“서민? 내가 아무리 가문에서 제명당했다고 그렇지, 서민이라.”

“네?”

여인이 전해준 봉투에는 꽤 큰 금액이 적힌 수표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 금액 말인데, 내가 가진 재산의 1/10도 안 되는데 어쩌지? 저기 아가씨 소설을 많이 읽었나 본데 상대를 봐가면서 써야지. 예쁜 얼굴도 아닌데 머리도 나빠서 어쩜 좋아, 응?”

“ㅁ..무슨! 제가 누군지는 알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평소보다 낮게 깔린 저음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인물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알베르토 씨! 저기 저 남자가!”

“레이디는 누구십니까?”

“...네? 얼마 전에 파티에서 뵈었는데...”

“아, 그것보다 레이디가 왜 여기에 이 사람과 같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남편이 될 사람의 주변 잡초는 정리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누가 레이디의 남편입니까? 적어도 저와 그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하아? 무슨 소ㄹ”

“저는 이미 평생을 함께했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레이디는 아닌 것 같군요.”

지나칠 정도로 냉정한 그의 말에 여성은 일어서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다리가 풀렸는지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입을 꾹 다물고 울먹이는 여성을 보고 있자니 알이 제 팔을 이끌었다.

“야, 알? 잠시만 야!!”

“뭔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출장은 어쩌고?”

그를 본 것은 좋았지만 분명 다음 주쯤 도착한다던 그가 벌써 돌아오다니. 오고 가는 시간이 길어 지금쯤이면 이곳으로 오는 배에 있는 것이 정상인데.

“아, 어느 여행자에게 도움을 받아 빨리 돌아올 수 있었네.”

“일은?”

“어제 보고도 다 했다네. 가장 먼저 자네를 보고 싶었지만, 자네가 회사에 없더군.”

“...집에 오면 되잖아.”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네.”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도착한 곳은 집이었다. 회사에 갔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과 쏟아질 잔소리에 대해 걱정을 하며 소파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전보다 살짝 길어진 머리에 자신의 걱정대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는지 살이 빠져있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출장 많이 힘들었냐?”

“가서 고민했네. 자네가 우리의 관계에 지루해 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

“나는 두려웠네. 앞을 나가는 순간 변할 것들이.”

그는 자신의 손을 꼭 잡고 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가 그러더군.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다만, 그것을 이겨내느냐 아니면 계속 두려워하느냐의 차이라고.”

이어 자신의 왼손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 뒤로 몇 날 며칠을 생각해보았지만, 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자네를 잃는 것이었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상자 속의 물건을 꺼내 조심스러운 손길로 약지에 끼웠다.

“나와 평생을 함께해주겠나?”

"~~♬"

 온 거리, 온 마을에 신나는 캐럴이 이른 아침부터 울려 퍼졌다. 연말에 가까워지자 밀려오는 서류들로 인해 바로 어제까지 이 주 동안 야근을 했던지라 자신의 수면을 방해하는 소음이 반가울 리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잠을 취하기 위해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봤으나 이미 잠이 다 깬 뒤였다. 잠이 깬 김에 나가 간단한 아침을 먹을까? 고민했으나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오는 이불의 촉감에 벗어나기가 싫어졌다. 배는 고픈데 이불 밖으로는 나가기 싫고 어찌하면 좋을까 뒹굴 거리며 고민하길 십 여분이 지났을 무렵 끼익-거리며 닫혀있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죄지은 사람처럼 꼼지락거리던 몸이 굳어 뻣뻣해진 상태로 잠든 척 해보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통하지 않았다.

"Merry Christmas! 렉스. 푹 잤는가?"

"아아. 너도 잘 잤냐?"

 깨어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이불을 걷어내고 제 이마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건네는 녀석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손을 내밀자 알베르토가 따뜻한 커피와 토스트가 담긴 쟁반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무안해진 손을 뒤로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알베르토를 쳐다보니 싱긋 웃으며 토스트를 집어 들었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어디까지 하나 가만히 보고 있자니 버터가 아닌 딸기 잼을 토스트 위에 듬뿍 얹어 바르기 시작했다. 알베르토가 단것을 즐겨 먹었던가? 자신도 약간이라면 모를까 저렇게 듬뿍 얹어 달게 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더욱 이상해 보였다.

'사실은 꿈속이었다던가 그런 건가.'

 딸기잼을 바른 반대 부분에는 버터를 바르고 있는 알베르토의 모습을 보며 현재 자신이 있는 공간이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고 말았다. 잠이 덜 깨서 그런가 보다 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머그잔에 손을 뻗는데 토스트 괴롭히기가 끝났는지 이제는 제 커피마저 빼앗은 알베르토의 행동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야... 알. 이게 뭐하는 짓이냐?"

"자네의 아침을 챙기고 있지."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럴 리가."

 씨익 웃어 보인 알베르토가 잼과 버터로 범벅된 토스트를 반으로 접어 제 입에 넣었다. 순간이지만 제 입안을 유린하는 지나치게 단맛과 느끼함에 재빨리 접시에 뱉어버리고 말았다. 버터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평소에 즐겨 먹던 잼이 아닌 시판용 잼인지 혀가 마비될 정도의 단맛을 가진 딸기잼이 문제였다. 입안 가득 채운 단맛을 빨리 없애버리고 싶었기에 알베르토에게 커피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제 말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제 커피를 홀짝이는 그의 모습이 얄미워 보였다.

"..야, 알... 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자네의 아침을 챙기고 있다네."

"괴롭힘이 아니고?"

"괴롭힘이 아니라 내 애정이니 걱정 말게."

 그에게 잘못 한 것이 있었던 걸까? 최근 서류를 처리하느라 서로 바빠, 그에게 잘못했던 것은 없었을 텐데...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요 며칠간 있었던 일들을 되짚는데 제 귓가에 들려오는 캐럴에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아... 성탄절 약속... 오늘..이었...지?"

"흐음"

 빙고. 자신의 예상이 맞았던 모양인지 괜한 토스트를 커피에 넣어 죽을 만들며 제 시선을 피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을 왜 까먹고 만 것일까? 분명 오전에 성당에 들렀다가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지... 굳어지는 몸을 가까스로 돌려 시계를 보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둘이서 외출한다고 들떠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무릎 위에 놓여있던 쟁반을 옆으로 치우고 침대에서 벗어나 옷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여기에..."

 바쁘다고 그냥 집어 던져 놓았더니 물건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것저것 얽혀있는 물건들 사이에서 고급스럽게 포장되어있는 상자를 꺼내 뚱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알베르토 방향으로 던졌다.

"야!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받아라."

"어...??"

 얼떨떨한 얼굴로 선물을 받아 포장을 푸는 알베르토의 모습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아쉬웠다. 약속을 잊었던 자신의 잘못이긴 했지만 공들였던 만큼 제대로 주고 싶었는데... 뭐 이래나 저래나 전해줬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고 알베르토의 반응을 기다렸다. 야근하는 도중 틈틈이 만드는 바람에 좀 더 세밀하게 세공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으나 그래도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게 만들어져 마음에 들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밖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답답해 만들게 된 것인데, 마음에 들까 걱정이 되었다. 약간은 초조한 마음으로 벽에 기대 그의 반응만을 기다렸다. 이리저리 만져보고 얼굴에 검은색 반가면을 쓰고 거울을 보더니 자신에게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뭔가 잘못된 것일까?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는데 언제 다가온 건지 자신을 꼬옥 안아 품 안에 가두었다.

"야...알? ㄱ...괜찮냐?"

"날 위해 직접 만들어 준 건가?"

"어...엉... 딱히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내가 만드는 게 나으니까?"

"고맙네, 렉스."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인지 언제 삐졌냐는 듯, 자신을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야근을 하면서 널 위해 틈틈이 만든 거니까, 영광으로 알라고! 크으, 역시 난 천재야."

"야근이라면 피곤했을 텐데..."

"멋진 얼굴 나만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답답하니까, 밖에서 투구 대신 쓰고 다녀라."

"아... 곤란하네, 렉스"

"ㅇ... 엉?"

 갑자기 안아들어 침대 쪽으로 향하는 그의 행동에 놀라 그를 밀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ㅇ...야...알?? 이건 아니지. 낮인데?"

"예쁜 말로 날 유혹한 건 자네 아닌가?"

"우리 나가기로 했잖아? 레스토랑 예약도 해놨는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오랜만에 운동이나 하는 게 어떨까,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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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바레] tulipani viola (데바 꽃말합작)

2015. 11. 1. 02:56 | Posted by 아뮤엘

내 곁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능력자가 배척되는 사회에서 그 많고 많은 능력 중 벌레를 다루는 능력을 갖춘 나와 너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려졌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물건을 훔쳐야 했고, 타인의 눈을 피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가혹한 현실에 절망했을 무렵 아이를 만났다. 상처를 담은 보랏빛 눈동자를 통해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거부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제 보금자리로 데려가 아이를 보살폈다. 빛을 잃은 눈빛은 점점 생기를 찾아갔고 아이는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가 자신에게 기대듯 자신은 아이에게 기댔으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결심했다는 듯 자신에게 말할 것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갔다. 보금자리로도 괜찮았을 텐데, 아이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숲 속이었다. 아이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손에서 나비와 잠자리를 불러내었다. 아이의 손에서 피어나는 곤충들을 보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이는 불안한지 곤충을 부르는 것을 그만두고 제 옷을 조심스레 잡았다.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이의 용기에 보답하듯 자신도 반딧불을 불렀다. 제 손짓을 따라 움직이는 반딧불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와 자신은 이런 부분까지 닮아있었다. 벌레를 다루는 능력. 자신은 반딧불만을 다루고 아이 벌레라는 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졌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도 닮아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더더욱 아이가 소중해졌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반신과도 같았다.


서로의 능력을 알게 된 날 이후, 우리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인 반딧불을 다루는 힘은 다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다는 것만이 장점인 이 능력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체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머리가 좋다는 것만이 장점인 자신과 달리 아이는 능력을 쓰지 않아도 체력과 싸우는 것이 뛰어났다. 아이를 지켜주던 자신은 어느새 아이에게 지켜지고 있었다. 아이는 싸우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 언제나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나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아이는 주로 나비를 불러 자신에게 보여주었다. 자신과 닮아 새하얗게 빛나서 좋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아이와 같이 지낸 지 2년이 지나갈 무렵, 한 남자가 자신들을 찾아왔다. 남자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에서의 삶에 지쳐있던 자신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손길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니었는지 남자를 경계하였다. 남자는 아이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는지 아이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남자의 손길을 쳐내고 자신을 뒤로 숨겼다. 남자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자신이 키워주겠다고, 소중한 사람을 지킬 힘을 주겠다고. 아이는 고민하더니 이내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아이와 자신은 카모라라는 조직에 거두어지게 되었다. 조직에 거두어지고 나서의 생활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사람을 붙여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과 반대로 아이는 남자와의 약속대로 무술을 배우게 되었다. 주로 체술을 배웠지만, 몇몇 무기를 다루기도 하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을 익혀나갔다.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아이의 몸에 상처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의사라는 직업으로 정했다. 다친 아이를 치료해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의료 쪽으로 진로를 잡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조직에서는 훌륭한 인재가 생겼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과 달리 아이는 현장에 나가 전투 요원으로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게 아이가 원한 것이었기에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하루라도 빨리 의사가 되어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런 자신의 마음이 하늘에 전해진 것일까? 어느 가을밤이었다. 자신의 부탁으로 마을에 나갔던 아이가 크게 다쳐 돌아왔다. 배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눈앞이 새하얘졌다. 아이가 부상을 입은 게 한두 번이던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쉽게 냉정해질 수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지혈을 했지만, 자신이 치료할만한 수준의 부상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죽을 네가 아니잖아? 제발..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차가워져 가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 순간 주변이 순간 밝아졌다. 반딧불...? 반딧불들은 아이의 몸에 몰려들었다.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반딧불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반딧불들은 자신의 손길을 무시하고 아이의 몸에 더 밀착하였다. 자신이 좀 더 유능했더라면, 의료에 대한 지식이 더 풍부했더라면... 눈앞이 뿌옇게 변하였다. 제 볼을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더 이상 아이에게 용건이 없는지 하나둘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흩어져가는 반딧불이 원망스러웠다. 아이의 상처를 헤집어 놓았겠지, 애초에 반딧불이 사람의 상처에 달라붙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남은 반딧불을 아이의 몸에서 치워내고 상처 부위의 지혈을 위해 거즈를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상처 부위에 식염수를 부어 굳은 피를 닦아내었다. 새하얗던 거즈가 붉게 물들고 붉게 물들었던 몸이 깨끗해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부상이 심각해 수술해야 했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다쳤던 적은 없었다는 듯이 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꿈인가 싶어서 제 볼을 꼬집자 통증이 느껴졌다. 꿈은 아니구나... 그 순간 누군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여긴.... 분명 상처가”

“리키, 분명 물건만 받는 즉시 돌아오기로 약속한 것 같은데?”

제가 부탁한 물건을 제 몸보다 중요하다는 듯 품 안에 안고 들어온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는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제 마음을 아는 건지 아이는 상처가 있던 부분을 쓰윽 보더니 자신에게 다시 기대었다. 상처는 없어졌지만, 피를 많이 흘렸다. 그건 자신도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미안.. 놈들이 매복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물건은 괜찮은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걱정하지그래?”

“그건 그렇고 상처는...”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이 뭔지 알겠지만, 자신도 확답을 주긴 힘들었다. 자신의 능력은 반딧불을 조종하는 것 외에도 치유하는 능력도 있었나? 제 품에서 잠든 아이를 토닥거리며 주변 능력자 동료들을 떠올렸다. 치유계 능력자들은 많았지만, 자신과 같이 다른 매개체를 이용하는 능력자는 없었다. 더더욱 살아있는 생명체를 매개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최초일 것이다. 능력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아이를 안아 침대 위에 눕혀놓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자리를 비우려 했으나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깼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아이는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잡은 건가? 아이가 옷을 놓아줄 것 같지는 않고 어쩔 수 없이 실험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잠이 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서로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라 단둘이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제 옷을 잡은 아이의 손길이 자신에게 하는 투정 같았다. 곁에 있어달라는. 제 옷을 잡은 아이의 손이 불편하지 않게 가디건을 벗었다. 아이의 팔을 뻗은 상태로 만들고 그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웠다. 마주 보이는 아이의 얼굴은 살짝 찡그려졌다가 이내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평소 주변 또래 친구들에게 애 취급 받는 건 싫다며 항상 미간에 힘을 주고 다녔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아니 자신밖에 없어야 했지만.


아이의 숨소리에 마음이 놓였는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는지 창밖으로 새벽하늘이 보였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키스하고 거실로 나왔다. 피로 범벅된 바닥과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피향으로 가득한 실내를 창을 열어 환기시켰다. 깔끔해진 집안을 뒤로하고 장식장에서 브랜디를 꺼내었다. 잔에 따라 한잔 마시고 나서야 아이가 받아온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포장지가 붉게 물들었지만, 물건은 괜찮은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포장지에서 꺼낸 물건은 보라색 튤립 조화 한 다발과 고급스러운 은시계였다. 아이에게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서 준비한 물건이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오려고 했지만, 급작스레 잡힌 일정에 아이에게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는데... 아이를 다치게 만들고 자신의 능력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해준 이 물건들을 보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시계는 따로 준비한 상자에 넣어 다시 포장하고 튤립은 화병에 담았다. 보라색 튤립. 너와 닮은 이 꽃을 내가 매일 집 안에 장식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을까? 사랑의 고백, 영원한 애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튤립, 그리고 네 눈동자를 닮은 보라색. 보라색 튤립 자체는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꽃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네가 하루라도 빨리 너를 닮은 이 보라색 튤립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릴 뿐. 사랑하는 리키, 오늘도 난 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로라드렉] Happy Halloween!! 합작

2015. 10. 31. 23:25 | Posted by 아뮤엘

“Trick or Treat!”

마녀로 분장한 두 소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아, 벌써 할로윈인가?”

“그러니까 빨리 간식을 주는 건 어때요?”

“에엣.. 저는 딱히 안 주셔도....”

“으음.. 기다려봐라”

분명 업무 중 당이 떨어져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다 놓은 것이 있을 터인데... 각종 물건으로 무질서하게 채워져 있는 서랍을 뒤적거리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는데 가져가는 게 좋을 것이라며 챙겨준 물건이 생각났다.

“분명 여기에... 아, 찾았다”

책상 위 서류들을 한쪽으로 치우자 작은 봉투가 보였다. 봉투 안에는 아이들을 겨냥한 듯 귀엽게 포장된 쿠키가 들어있었다. 두 봉지를 꺼내 아이들의 손에 들린 바구니에 넣자 그제야 만족했는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마저 업무를 하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아이들이 제 옷깃을 잡아당겼다. 무슨 용건이 더 남은 것일까? 몸을 숙여 시선에 맞추자 아이들은 고맙다고 제 볼에 입을 맞추며 다음 타켓을 향해 달려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에게 비밀로 해야지, 그가 알면 분명 질투할 게 뻔하였다. 할로윈이라..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볼까?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고 윌라드에게 오늘은 일찍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하니 알았다며 들어가 쉬라는 인사를 받고 회사에서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할로윈인데 간단하게라도 파티 음식을 준비할까 싶어 마트에 들렸다. 마트는 할로윈 관련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관련 물품들이 할인하고 있었다. 딱히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식재료를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데 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라... 녀석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뭐, 할로윈이니까 분위기로 하나쯤은 괜찮겠지”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평소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부러 일찍 퇴근했건만,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현관문의 잠금을 풀고 들어가자 어두운 집안이 자신을 맞이하였다. 신을 벗고 곧장 부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 안에 넣었다. 요리하기 전 오늘 옷이 정장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집에 있었냐?”

“아아, 뭘 그리 사왔는지 물어봐도 될까?”

“흐음...”

“지금 이 행동에 대해서 나는 뭐라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 렉스”

질척하게 붙어 애정행각을 하는 녀석을 팔꿈치로 살짝 밀어내고 주머니에 넣어둔 은 십자가를 꺼내 들었다. 살짝 몸을 틀어 십자가로 녀석의 입을 꾸욱 눌렀다. 사자(死者)는 은에 약하다고 하던데 역시 미신이었나? 십자가를 쥔 제 손을 마주 잡아오는 알베르토의 얼굴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알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가끔 잊고 지내는 것 같았다.

“네가 죽은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넌...”

창백한 피부와 차가워진 너의 품 안에서 매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까?

“후회하고 있나, 렉스?”

차가운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내가 후회할 리 없잖아. 죽은 그를, 그의 품을 잊지 못해 불렀다. 바로 2년 전 오늘, 네가 죽은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할로윈은 죽은 영혼이 돌아오는 날, 그래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너를 돌려달라고, 다시 한 번 네 품에 안길 수 있게 해달라고 텅 빈 네 방, 네 체취가 남아있는 옷들을 끌어안으며 울며 빌었다. 그러다 지쳐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으로 누군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는 물었다.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길 원하냐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 그에게 답하였다. 그를 돌려달라고.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갑지만 익숙한 손길.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겨우 뜨자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너의 얼굴이 살짝 미소 지으며 인사해왔다.

“보고 싶었네, 렉스. 매일 울고 제 몸을 돌보지 않으니, 걱정되어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잖나.”

“먼저 간 네놈이 잘못이지”

참으려고 했지만, 뿌옇게 흐려지는 눈앞에 이불을 끌어올려 제 모습을 숨겼다. 이불 위로 토닥이는 한없이 다정한 손길에 눈물이 멎지 않았다. 죽었던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 날. 오늘은 너와 다시 이어진 소중한 날이다.

[릭마틴] amare

2015. 7. 8. 22:03 | Posted by 아뮤엘

그는 그 스스로를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칭하였다. 임무수행을 위해 만난 인연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의 말처럼 그를 평범하게 생각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고급 초콜릿같이 달콤해 보이는 짙은 갈색 머리와 숲이 생각나는 녹안. 그리고 다른 이들이라면 참가하고 싶어서 안달일 임무에 귀찮다고, 하기 싫다고 속으로 작게 투덜거리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래, 나는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의 소리는 어린아이같이 투덜거림과 징징거리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가식적이지도 자신을 괴물 취급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나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게 되었다. 회사는 어찌하고 여기에 와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는 어찌 보면 실례일 수도 있는 질문들을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혹시 속으로는 싫어하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 몰래 능력을 써서 그의 생각을 읽었다. 그리고 내 행동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에 그에게 임무가 끝나면 같이 밥을 먹자고 제안하였다. 그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돌아가면 자주 가는 레스토랑에 그를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브루스와 작전회의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클론들과의 전쟁이 끝나고 재단으로 돌아와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에 누우니 그동안 피곤했는지 몰려오는 수마에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 억지로 뜨니 흐릿한 시야 속으로 시계가 보였다.

PM12:28.

피곤하긴 했었나보다.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어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머리를 말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냉장고를 열었다. 자신의 부제가 길긴 길었는지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은 유통기간이 다 지나있었다. 어쩔 수 없지. 냉장고 문을 닫고 지갑을 챙겨 들었다. 나간 김에 레스토랑 예약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방문을 잠그고 나왔다. 재단을 나서는데 누군가 제 팔을 잡았다. 누구지? 하고 뒤돌아보니 그가 서 있었다.

“어디 가는 길이오?”“너무 오래 방을 비웠는지 먹을 게 하나도 없어서 오랜만에 장이라도 볼까 싶어서 나왔어요. 피곤한 건 좀 괜찮으신가요?”

게이트를 사용해 사람들을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작전 내내 푹 쉬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아 괜찮소. 것보다 나도 따라가도 괜찮겠소?”

“환영입니다”

생긋 웃으며 말하자 그도 같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 옆에 나란히 섰다. 누군가와 이렇게 같이 걷는다는 것이 설레는 일인 줄 미처 몰랐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조마조마하면서도,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목들을 따라 도착한 시장은 오늘도 활기가 넘쳤다. 필요한 식재료들을 구입하는데, 자신이 들 짐을 그가 자연스레 빼앗아 들었다. 괜찮다고 제가 들겠다고 말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며 고집부리는 그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다소 가벼운 짐들만 들게 되었다. 필요했던 식재료들을 사고 재단으로 돌아오는 길 결국, 레스토랑의 예약은 못 하였다. 그가 모르게 준비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중에 예약하기로 마음먹는데 따뜻한 손길이 제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소중하다는 듯이 조심스레 잡아오는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놀라 멈춰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마주 잡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머리를 가리켰다. 좋아하오. 당신이 사랑스러워. 나를 향한 그의 감정들이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감싸 안았다. 아 그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내 능력도 그를 바라보던 내 시선도. 그와 마주 잡은 손을 놓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에게 들킬까 봐 고개를 숙인 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그가 짐을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제 볼을 감싸는 손길에 당황해 어버버거리는 사이 이마에 말캉한 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대답은?”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조심스레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처음 그를 봤을 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빛나는 금발 머리와 푸른 하늘을 머금은 듯한 벽안. 반쯤 강제로 참여한 임무에 대한 의논을 위해 찾아간 재단에서 그가 작전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 브루스에게 물었었다. 그가 참가하는 이유를. 그의 능력이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래서 브루스에게 물었다. 그의 정확한 능력에 대해서. 내가 그에게 빠져들 듯 그가 나에게 빠져든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가 몰랐을 뿐이지.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이들과는 확연히 달랐으니까. 그에게 내 마음이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임무지에서의 생활을 보냈다. 완벽하게 클론들을 제거하고 재단으로 돌아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욕실에 들어가 꼬질꼬질한 몸을 닦아내고 그가 방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점심을 대강 때우고 책을 읽고 있는데 창밖으로 그의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가 그를 잡아 세우고 어디에 가는지 물었다. 장을 보러 간다는 그의 말에 조심스레 동행해도 되는가 물어봤더니 그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붉게 홍조 띤 얼굴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신중하게 식재료를 고르는 그의 모습이라던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고 말았다. 자신의 태도에 놀랐는지 멈추어선 그에게 마주 잡은 손을 들고 머리를 가리켰다. 그는 제 뜻을 알아들었는지 잠시 자신을 빤히 바라보더니 붉어진 얼굴로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짐을 내려놓고 마주앉아 그의 볼을 손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놀라 흔들리는 동공마저 예뻐 보여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긋하게 물었다. 제 마음에 대한 대답에 대해서. 솔직히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이어질 그의 행동을 받아드렸다. 




[티엔다무] commiato

2015. 7. 6. 22:08 | Posted by 아뮤엘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붉은 비를 받았다. 모은 손안에 고이는 액체를 조심스레 볼에 가져다 대었다. 따뜻하다. 비는 이내 멎어 들었고, 바닥에는 붉은 웅덩이만이 그 흔적을 나타내었다. 물줄기를 따라 걷다 보니 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았던 눈을 뜨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 성당 앞에 기대어 앉아있는 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네가 앉아있었다. 새하얀 눈꽃을 닮아 빛나던 너의 머리는 붉게 물들고, 푸르게 빛나던 너의 눈은 굳게 감긴 채 떠지지 않았다. 깊이 잠이 든 네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항상 따뜻하던 너의 품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너에게 둘러주고 그대로 안아 들었다.


한참을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려 최대한 그 장소에서 멀리 벗어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


다. 크고 작은 건물이 가득한 회색의 숲에서 벗어나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숲이었다. 차오르는 숨을 천천히 내쉬고 근처 나무에 기대었다. 아직 쉴 수는 없었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제 다리는 고통을 호소하며 자꾸 힘이 풀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풀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절벽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미친 사람처럼 수풀 사이를 헤쳐나갔다. 쏴아아-하는 폭포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며 약간 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다. 드디어.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심스레 품에 끌어안은 그를 내려놓고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와 시간이 날 때, 자주 오던 이 절벽은 옆에는 폭포가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자주 찾아왔었다. 떠오르는 추억을 뒤로하고 외투를 살짝 벗겨내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네가 좋아하던 곳이다. 다이무스”

피에 젖었던 머리는 어느새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물에 제 색을 되찾아갔다. 빗물이 다 씻겨내지 못해 약간의 붉은 기가 남아있는 은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억눌린 감정이 비집고 나오는 것을 애써 삼키며 구슬프게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타리우스가 부활했다. 라는 정보를 가져온 그의 둘째 동생 덕분에 ‘인형실 끊기 작전’ 이후 세 조직이 손을 잡게 되었다. 동맹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 측 능력자들이 공격을 받는 사건이 터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안타리우스쪽에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전장은 서로의 눈치를 보듯 천천히 흘러갔다. 눈치싸움도 길어지면서 하나둘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동맹 측의 상태를 안 안타리우스는 바로 공격을 가해왔고, 동맹 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하였다. 다행히 더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처리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피로를 느끼는 자신들과 달리 개조인간들은 계속해서 치고 들어왔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부상자는 늘어만 갔고, 동맹의 사기도 꺾일 대로 꺾인 상태에다가 서로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챙기려는 수뇌부들의 머리싸움에 제대로 된 작전이 내려오지도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능력자들끼리 모여 수뇌부들의 결정을 기다리느니, 일단 들어오는 적부터 잘라내 어느 정도 버티자는 의견이 수렴되어 4~5명이서 한 팀으로 나누어 각 구역을 맡는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팀에서의 역할이 겹치는 자신과 그는 다른 팀으로 배정되었다. 그와 떨어졌다는 아쉬움보다 마음 한구석에 감도는 불안감에 그를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해 이미 정해진 팀을 쪼개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제 머릿속을 맴도는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였다. 제 생각을 꿰뚫었는지 어느새 다가온 그가 눈짓으로 옥상을 가리키고 저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자신에게 내일 있을 작전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표정이 굳었더군”

옥상에 도착하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올라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걸어왔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뒤에서 그를 껴안자, 그가 자연스레 기대어 왔다.

한참을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그의 살 내음이 불안했던 제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는 이렇게 제 곁에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제 곁에서... 따뜻한 손길이 제 손위에 놓였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 갔었나 보다. 그런 자신을 달래듯 제 품에서 벗어나 손을 잡아주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입을 맞추었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부드럽게 제 리드에 따라 혀를 섞었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그를 마주 안고 서로 작은 약속을 하였다. 살아 돌아오자고, 다쳐도 괜찮으니까, 살아서 돌아오자고. 그는 작게 미소를 띠며 알겠다고 자신의 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살아 돌아오겠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약속을 그는 지키지 못한 채 제 곁을 떠났다.

지키겠다고 약속했잖아. 제 품에 안겨 잠이 든 그가 괜스레 원망스러워 볼을 꾸욱 눌러봤지만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은 제가 더 잘 알았다. 임무 내내 저한테 경고하듯 울리는 불안감을 외면하며 제 감이 들어맞지 않길 바랐다. 제가 맡은 구역의 임무를 끝내고 지원 요청이 온 지역으로 지원을 가려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 혼자 그가 배치받은 곳을 향해 뛰어갔다. 십여 분쯤 달려 도착한 곳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그는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의 팀원들의 시체와 강화 인간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맡은 구역이었던 성당 앞에서 피로 얼룩진 비를 맞으며 그의 죽음을 깨달았지만 모르는 척 외면하였다.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이끌고 성당으로 올라가자 붉게 물든 채 차갑게 식어버린 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내려놓았던 그를 다시 안아 들고 절벽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폭포가 만들어낸 안개에 밑은 보이지 않지만, 이 정도 높이라면... 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안녕, 내 사랑. 다음 생에는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너를 만나 사랑을 하고 싶다. 평범하게 보통의 연인들처럼. 我爱你, De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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