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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romessa

2015. 5. 7. 06:22 | Posted by 아뮤엘
어두워진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벌써 장마철이 된 건가...?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결국 소나기가 내린다.
창 밖의 풍경을 내다보며 돌아올 아이를 기다렸다.
아마 갑작스레 비가 내려서 젖어서 돌아오겠지
아이가 돌아오면 바로 씻을 수 있게 목욕물을 따뜻하게 덥히고,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비에 젖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많이 차구나. 물을 덥혀놨으니 씻고 오너라"
마른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대충 닦아주며 말하자 아이는 알겠다며 욕실로 향하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건지..

릭의 능력으로 전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그의 실수로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처음에는 여기가 어디인지 고민했었다.
상황을 파악하고자 주위 풍경은 둘러보니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이곳은...
어린 시절 자신이 수련하던 장소였다.
어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작게 미소 지으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곳에서는.. 처음으로 책에서 읽은 대로 나무 검으로 바위를 쪼개었다.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기억과 바뀐 것이 전혀 없었다.
나무 검으로 내려친 자국이 가득한 바위들과 자신의 훈련 탓에 자국이 난 암벽과 땅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의 기억 속 풍경 그대로라는 것이 이상하였다.
공간을 이동한 게 아니었나?
숲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어린 시절 자주 갔던 계곡이 생각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이 마른 것도 있었지만, 물가라면 사람이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다.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정보를 필요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계곡에 다 왔구나 싶어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점점 가까이 들리는 물소리
나무 사이를 지나자 자신의 눈에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른 목을 축이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곡의 상류라서 그런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자리에서 일어나 하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의 하류에는 마을이 있기도 하였고, 종종 상류 쪽으로 놀러 오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내려가다 보면 사람 한 명쯤 만나지 않을까 싶어 천천히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도착한 계곡 가에는 작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양손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는 과거였던 것인가?
"저기...질문 좀 해도 괜찮겠나?"
화들짝 놀라며 눈물을 훔치고 돌아보는 아이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과거로 왔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에 절망하였다.
아이는 갈 곳이 없다면 자신과 함께 지내는 게 어떠하냐고 수줍게 권유하였다.
아이의 작은 용기를 내칠 만큼 자신은 매정하지도 않았고, 갈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아이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는 혼자서 살고 있었다.
아이 홀로 사는 집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사부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일로 일해 두 달여 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워낙 어른스러워서 주변 어른들은 자신이 어린이라는 사실을 잊곤 했다.
자신의 사부가 그러하였다.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워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을 선택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홀로 울고, 아픔을 참으며 자랐다.
자신도 겪었던 것들이기에 그 설움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이의 겪어왔을 마음의 아픔을 잘 알기에, 아이에게 고맙다고, 수고 많았다고 꼬옥 껴안아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감사의 표시였다.
아이는 잠시 몸을 작게 떨더니 이내 자신의 옷에 따뜻한 웅덩이가 그려졌다.
설움이 섞인 울음은 아이가 홀로 견뎌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느끼게 하였다. 
어리광이라도 부릴 줄 알았더라면, 너무 이른 시기에 어른이 되어야 했던 자신의 처지에, 그저 미안해서 토닥거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작게 반복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날 이후로 아이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장난도 치고, 같이 식사 준비도 하고, 수련도 하다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웃는 시간이 많아졌고, 가끔 장난도 하는 평범한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빨리 돌아가는 것만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아이와 정이 들어 조금이라도 아이의 곁에서 있을 수 있길 마음속으로 바라게 되었다.
아이도 자신과 있는 시간이 좋았는지 어느 날 자신의 품에 안겨 수줍게 물어왔다.
"아저씨.. 아저씨는 언제나 제 곁에 있어주실 거죠?"
아이의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자신은 지키질 못할, 해서는 안 될 약속에 손을 내밀었다.
"네가 원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도록 하마"
활짝 웃으며 품에 부빗거리는 아이를 등을 쓰다듬으며 보이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세계가 자신을 이물질로 인식했는지 몸의 일부가 공기 중에 흐트러지듯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그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아이와 약속을 한 시점에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해졌다.

몸의 일부가 투명화되는 빈도와 시간이 길어져 외출이 힘들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분들이 투명화되어 아이에겐 몸이 좋지 않다는 거짓말로 속일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아이를 직접 마중을 나갈 수 없다는 점이 매우 싫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목욕물을 데워놓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실 신체가 투명해지는 것만이라면 같이 외출은 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신체 내부에서의 공격도 시작되었다.
자신에게 가해져 오는 고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가 되었다.
단순히 아프다는 이유로 속이고 넘어가기에는 새하얗게 질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을 아이가 보았기에 속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것인지 아이가 최근 자신의 곁에 붙어 있는 시간이 늘었다.
수련과 외출을 최소한으로 줄인 채 자신과의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로 하였다.
그래서 자신에게도 요즘은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언제 자신이 아이를 두고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아이가 마무리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에게 간식을 챙겨주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자신을 찍어누르는 강력한 힘과 자신의 내부를 지배해가는 고통에 아이에게 혹시라도 들릴까 이를 악물고 버텼다.
"형 저 코코ㅇ......."
벌컥 열리는 욕실 문에서 나온 아이의 얼굴이 급속히 굳어갔다.
"....혀...엉?"
"ㅌ....엔....미,ㅇ....ㅏ..."
아아, 이젠 진짜 마지막이구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짜내어 아이에게 더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뱉어보지만, 그 뜻을 전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아이를 마지막으로 품에 안아주기 위해 내뻗은 손은 무자비한 세계에 의해 사라져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이가 자신을 향해 달려왔지만, 자신의 몸이 붕괴하는 속도가 더 빨라 닿지 못하였다.
미안....미안 아가...
내 너를 다시 외롭게 만들었구나
하지만 내가 널 사랑했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주렴
정마,ㄹ 미...아....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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