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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pentimento

2015. 8. 30. 00:44 | Posted by 아뮤엘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코 위를 가리는 검은색 반가면을 쓰고 집을 나섰다. 싸울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고, 무거운 갑옷 대신에 정장을 입는 일이 많아졌다. 제 얼굴을 가려주던 투구를 정장 위에 쓰기에는 너무 언밸런스하다며, 드렉슬러가 늦었지만, 생일 선물 겸 주는 거라며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투구와 달리 가벼운 감촉에 혹시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직접 벗지 않는 이상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 투구가 아닌 가면을 쓰고 회사에 나간 날, 모두가 자신의 가면을 극찬하였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마치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에 어디서 샀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어찌 답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살짝 그가 있는 장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짝 가렸다 다시 서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기에 어디서 구해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양심에 찔리진 않았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그와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던 것 같다. 서로 바쁜 것도 있고, 기념일을 챙기는 성격도 아니다 보니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먹는 정도로 끝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답례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바쁜 업무에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최근 자신과의 만남을 꺼리듯 자신을 피해 다니는 드렉슬러의 행동도 한몫을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당장 오늘이라도 회사에 양해를 구해 일찍 업무를 끝내고, 그에게 줄 선물을 찾으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로 가는 길,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이내 굵어졌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잠시 근처 상점에 들렸다. 금방 그칠 거라 생각한 비는 제 예상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고 내렸다. 검은색 우산을 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내리는 빗소리가 구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겨우 도착한 회사는 입구에서부터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속 울음이 섞인 목소리도 드문드문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니 울고 있는 아이들과 조노비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홀든이 제 손을 잡고 따라와 달라며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끌려 자신이 향한 곳은 이사실이었다.여기는 왜? 그에게 의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조용히 문을 열어주며 눈짓으로 안을 가리켰다. 그가 자신을 속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작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실로 들어가니 수척해 보이는 크루그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자 그제서야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자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왔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회사 분위기가 이러냐고 묻자 그는 말없이 작은 상자를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조심스레 상자를 여니 상자 안에는 팔이 들어있었다. 그래 자신이 잘 아는 팔이 상자 안에 붉게 물든 채 들어있었다. 새파랗던 제복은 피에 젖어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있었고, 그가 자랑하던 창은 무엇인가에 절단된 듯 일부만이 남겨져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만을 빌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크루그먼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금고로 다가가 열더니 쪽지와 작은 열쇠를 꺼내 자신에게 전해주었다. 멍하니 제 손에 놓인 것들을 보고 있자니, 다리오가 죽었을 때 자신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한 것이라며 자신은 분명 전해줬다고 말하며 등을 돌렸다. 유품...인가? 그에게 더 묻고 싶었지만, 잘게 떨리는 그의 뒷모습에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쪽지에 적힌 곳을 향해 달렸다.


쪽지에 적힌 곳은 자신도 잘 아는 곳이었다. 자신도 자주 가는 곳이었으니까. 세찬 비를 뚫고 도착한 곳은 제가 사랑하는 이의 보금자리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피 냄새가 제 후각을 자극하였다. 피비린내를 따라 자신이 도착한 곳은 안방이었다. 새하얗던 시트는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곳곳에 튀긴 피와 부서진 물건들만으로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쪽지에 적힌 곳은 이 안방 침대 바닥이었다. 침대를 옆으로 미니 작은 문이 보였다. 핏자국으로 범벅된 문고리를 보아하니 그가 이곳으로 도망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급한 마음 때문일까 자꾸 엇나가는 열쇠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사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사다리에 다리를 걸치고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다 내려가니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어두웠던 시야가 갑작스레 밝아졌다. 급격한 변화에 눈을 감고 적응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조심스레 눈을 뜨니 제 눈에 들어온 것은 평온한 듯 눈을 감고 잠이 든 제 연인의 모습과 각종 가면과 창이 나열되어있는 방이었다. 정갈하게 입고 다니던 제복은 칼에 베인 듯 다 헤져 있었다.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생채기가 생긴 얼굴을 만졌다. 차갑게 식은 그의 얼굴은 그가 더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입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고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덮어주었다. 그를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안아 드는데 무엇인가가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몸을 낮춰 떨어진 것을 주웠다. 유일하게 붉게 물들지 않은 종이를 펼치니 종이에는 참으로 그다운 글이 적혀있었다.


[되도록 직접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잘 지내라.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네가 살아 있는 것이 더 큰 선물이었을 텐데 그에게 받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하는 현실에 참고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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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Karma -3-

2015. 8. 28. 02:13 | Posted by 아뮤엘

방을 나서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너무 방에만 있었나? 추욱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뭐라도 걸쳐야겠다는 생각에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붉은색 가디건을 꺼내 걸치고 방을 나섰다. 저택을 나서는 길에 집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되도록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난감한 미소를 짓자 비밀로 할 테니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어딜 가는지 말해달라는 집사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집사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리는 없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잠시 마을에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작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나온 저택 밖의 풍경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제 기억 속 마지막으로 나왔을 때, 얇은 옷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긴소매의 약간 두툼한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푸르던 나무들도 화려한 옷으로 하나둘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마을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대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표정을 보아하니 웃으며 무언가를 호응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사람들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자 광대가 보였다. 아아, 그런 거였나?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다시 사람들을 헤집고 나와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강가에 도착하게 되었다. 따뜻하게 입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강가라 그런가. 약간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적한 강가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강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택을 나설 때만 해도 저 높게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저물어 어느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 이들이 떠올라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저택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사가 자신을 맞이해주었다. 집사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괜찮다며 저녁은 어찌하겠냐고 물었다. 보아하니 형들은 아직 제가 나갔다 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요즘 큰형과 작은형이 바빠 아침 식사만 같이하는 것이 컸겠지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집사에게 돌아오는 길, 외출할 때 자주 들리는 베이커리에서 사온 빵을 보여주었다. 많이도 사 왔다며 혼자 먹을 수 있겠냐고 넉살 웃음을 짓는 집사에게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고 집사가 좋아하는 빵을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히 집사는 괜찮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뒤에서 허허하고 웃는 소리만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아 사온 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맛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더 맛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제 몸은 벌써 지쳤는지 피로했다. 방에서 제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저택에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외출해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악몽을 핑계로 몸까지 나태해지는 것은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연무장에 나가야지.”

점심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빵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물며 훈련할 것들을 생각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에 외출을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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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bifurcación

2015. 8. 23. 01:24 | Posted by 아뮤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나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오늘은 무엇을 할지.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 선택한다. 무엇이 나를 이리 만들었나 생각해보니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네가 있었다. 그래 너와 만나고 나서부터 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드렉슬러 아저씨!” 
아앙? 무슨 일이냐” 
고된 서류 업무로 혹사당한 허리를 스트레칭으로 풀며 저에게 말을 건 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소녀가 제 앞에 서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요즘 피곤하신 것 같아서 마를렌 언니와 함께 만들어봤어요” 
“엥?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다. 고로 내 마음에 쏙 드니 걱정 마라, 샬럿” 
기특한 마음이 들어 제 앞에 서 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언제 왔는지 샬럿은 이제 저랑 놀러 갈 거라고요! 라고 외치며 샬럿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서는 흑발의 양 갈래 소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제 모습이 신기했는지 어느새 다가온 알베르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뭐라 답하면 좋을까 순간 고민하다 이내 떠올린 답을 말하였다. 
“아아, 우리 작은 아가씨에게 선물을 받았거든” 
“....아가씨라... 아아
, 샬럿 양인가?” 
별일 아니니 네 자리로 가서 일이나 해라. 저어기 어떤 분께서 노려보고 계신다” 
“...그게
 좋겠군.” 
저 멀리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타라의 모습에 알베르토를 돌려보내고 놓았던 서류를 다시 들었다. 최근 밀려오는 업무에 연이어 야근한 상태였기에, 오늘만은 야근을 피하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서류를 처리하고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 십여 분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야근은 피한 건가? 샬럿에게 받은 선물을 조심스레 가방에 챙기고 정리된 서류들을 들고 보고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다며 가서 쉬라는 윌라드의 말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해서 그런지, 회사 밖의 풍경이 어색했다. 일찍 끝난 김에 장이라도 볼까 하는 마음에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이은 야근에 장을 볼 시간이 없어,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채소와 과일, 육류 등식재료를 사고 나니 양손 가득 짐이 들려 있었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짐을 내리고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 
“아아
, 왔나?” 
“네가 왜 여깄냐?” 
“일이 끝났으니까. 당연한 게 아니겠나? 
“아니. 그러니까 왜 네 집에 안 가고 내 집에 있냐고 묻고 있잖냐. 짜샤 
양손에 들린 제 짐의 존재를 알았는지 자연스레 받아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멍하니 서 있다 따라가며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오는 알베르토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뭐..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지자 다리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와 간단히 채소를 곁들여 먹으려고 했지만, 그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았다. 고기를즐겨 먹는 자신과 달리 알베르토 녀석은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사온 재료들을 천천히 떠올리며 알베르토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생각하고 있자니 뒤에서 알베르토가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뭐냐
?” 
“뭘 그리 생각하고 있나, 렉스” 
“네 녀석을 내쫓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왜” 
으음.. 오늘은 가스파초와 빠에야가 좋겠어.” 
“시발, 진짜 귀찮은 것만 시키지?” 
“날 내쫓을 생각을 한다며, 거짓말이었군?” 
아......” 
피식
 웃음소리를 내며 제 볼에 입을 맞추고 거실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괜스레 짜증이 났다. 토마토 하나를 꺼내 던지니 알베르토 녀석은 에피타이전가? 맛있게 먹겠네라며 던진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며 제 방향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오!! 진짜!“ 
“맛있는 저녁 기대하고 있겠네,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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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canción de cuna

2015. 8. 16. 00:24 | Posted by 아뮤엘

알고 있었다. 네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만난 것이었는데. 금방 떠날 거라던 너는 하루, 이틀 조금씩 돌아가는 날짜를 미루었다. 처음에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지상의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구나.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너와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잊고 말았다. 네가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오랜만에 같이 산책을 제 손을 이끄는 너의 손을 귀찮다며 쳐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녀올게. 라고 약간은 씁쓸한 말투를 하며 집을 나서는 너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평소에도 같은 일이 몇 번 있었기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들고 있던 설계도를 마저 작성하였다. 열매가 달게 잘 익었다며 바구니 한가득 열매를 따온 녀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거의 마무리된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미 완벽한 설계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더 확인해보고 나서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이나 앉아서 작업했기 때문일까?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부엌으로 가니, 요리를 하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짙은 고동색의 머리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에서 꼭 껴안았다. 놀랐는지 흠칫 떨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녀석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하던 일 하라고 하자 긴장으로 경직된 손놀림으로 야채를 씻었다. 녀석의 반응이 우스워 그대로 안겨있는데 이내 익숙해졌는지 노련한 손놀림으로 야채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안아주고 싶었다. 그날따라 그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알은 육류를 먹지 않았다. 야채와 과일도 적은 양만 먹었다. 저도 고기는 그리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해주는 채식요리가 좋았다. 그가 요리한 음식들을 식탁 위에 옮기고 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그가 앉았다. 평소보다 화려한 식탁. 특별한 날에나 할 법한 요리들이 식탁 가득 올라와 있었다.

“야 오늘 무슨 일 있냐?”

“......아... 그냥 오늘은 이렇게 차려 먹고 싶어서 그랬다네”

뜸 들이다 말하는 그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많은 놈이라 평소에도 이렇게 뜸 들이는 일이 잦았으니까.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그는 자신과 외출하기를 원했다. 이 녀석이 왜 이러지.. 거절할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서는 그의 모습을 그냥 넘기지 말걸. 계속 거절하기에 미안해 딱 한 번 그와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와 자신이 처음 만난 호숫가로 도시락을 싸들고. 평소 외출을 한다고 하면 들떠야 정상 일 텐데, 오늘따라 어두운, 억지로 웃는 듯한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힘들면 그냥 집에 가서 쉴까? 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숫가에 도착해 같이 과일도 따고 물놀이를 실컷 즐겼다. 그러다 지쳐 풀밭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느덧 해는 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렉스.. 오늘 즐거웠나?”

“아? 넌 아닌 것처럼 말한다?”

“나도 즐거웠다네”

제 눈을 덮는 따뜻한 손길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즐겼다.

“렉스... 자네는 내가.. 없어도 괜찮겠나?”

“엉? 그게 무슨...”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가볍게 제압하였다. 그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 눈을 덮은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하였다.

“..무슨..일인데?”

말없이 저의 몸을 반쯤 일으켜 껴안는 그의 행동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감겨있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날개였다. 주변에 새라도 있나 싶었지만, 이렇게 큰 날개를 가질만한 생명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야.. 알.. 이상해. 너 날개가 달려 있어...”

“......”

“야.... 보라니까? 너 날개가...???”

새하얀 빛을 자랑하던 날개는 조금씩 검게 물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저를 안은 알베르토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그의 날개에 손을 뻗었다. 검게 물든 날개는 제 손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그의 팔에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 없이 저의 품에 기대어있는 그를 살짝 밀어내 제 어깨에 기대어 있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창백해진 얼굴. 다문 입가 사이로 피를 흘리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야.. 알 왜 그래.. 장난이지?”

“ㅁ...안...하,네”

그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날개가 자신의 손길에 흩날려졌던 것처럼, 그의 몸도 조금씩... 지금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평소와 같이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는데.

“야... 새꺄..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

“....우..ㄹ...지....마,ㄹ..게”

“차라리..꿈이라고... 해달라고”

“사,ㄹ....ㅎ...네”

고통스러울 텐데, 웃음을 지으며 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 시야 때문에 자꾸 보이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이제는 상체만 남은 그의 얼굴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의 제안을 거부하지 말걸. 너와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걸.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이렇게 말없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두고 떠나는 그도 미웠지만, 지난 날들이 떠오르며 제 행동들이 다 후회가 되었다. 푸르게 빛나던 눈은 감기고, 어깨에 닿던 고동색 머리도 조금씩 흩어져갔다. 그가 들을 수 있도록,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울음에 잠긴 목소리를 애써 다듬고 그가 자주 불러주던 자장가를 떠올리며 노래하였다. 제 노랫소리가 그에게 닿기만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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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ccolata

2015. 8. 9. 20:23 | Posted by 아뮤엘

힘들다. 제 앞에 높게 쌓인 서류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언제쯤이면 줄어들까? 요 며칠간, 야근하면서까지 서류를 처리한 것 같은데 처음 그대로의 높이를,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은 높이에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서류가 늘어나기만 하는지 일을 내려주는 상부에 묻고 싶었다. 최근 회사가 바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도 적당히 줘야지 하루하루 지쳐만 갔다. 차라리 뭐라도 먹으면서 하면 좋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갑작스럽게 다이어트를 시작한 어떤 분 때문에 사무실에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일을 해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은 몸을 풀고자 스트레칭을 하니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었던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굳은 몸을 풀고 이대로 좀 더 쉬다 들어갈까 고민하는데 유리창 건너로 보이는 뜨거운 시선에 조용히 휴게실의 문을 열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쌓여있는 서류를 조금씩 처리해나갔다. 빨리하면 처리하는 만큼 늘어났으므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서류를 처리하였다. 너무 느리게 했다간 꾀부린다고 뒤에서 불덩이가 날아올 것이 뻔했다. 몸을 살짝 젖혀 옆을 보니 매우 수척해진 얼굴을 한 알베르토의 모습이 보였다. 작게 괜찮냐고 물으니 견딜 만 하다고 작게 대답해왔다. 멍하니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빌며 서류를 처리했다.
"어.. 이건?"
"무슨 일이라도 있나?"
서류가 잘못 분배된 것인지 윌라드의 서류가 저한테 와있었다. 알베르토에게는 별일 아니라고 대답해주고 혹시 잘못 섞인 서류가 있나 확인하였다. 다행히 잘못 온 것은 방금 자신이 발견한 것뿐이었는지 다른 서류는 다 제 몫이었다.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기회다! 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서류를 들고 일어서니, 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까와 같은 뜨거운 눈초리는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윌라드가 있는 이사실에 도착하였다. 노크를 하니 안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의 말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보다 더 많은 양의 서류에 둘러싸인 윌라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있냐고 물어보니 허허..하고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짠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서류가 섞였더라고"
"아아.. 그건 제가 일부러 그런 것입니다."
"앙?"
그는 제가 건넨 서류를 받아들며, 제 손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이게 뭐냐?"
"장시간 업무를 하느라 피곤하실 것 아닙니까? 피곤할 때 당을 섭취하면 피곤이 좀 풀린다고 하니까요"
꽤 고급스러운 포장지로 감싼 초콜릿 세 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늦으면 그녀가 화내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방을 나왔다. 일단 하나를 까서 입에 넣으니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 많이 달지 않아 제 입맛에도 딱 맞았다. 남은 두 개를 어찌할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제 자리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였다. 아아, 역시 습관이란.. 서류를 처리하면서 남은 두 개 중 하나를 꺼내 옆자리에 앉은 알베르토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물음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다. 종이에 윌라드가 줬다고 타라 몰래 먹으라고 적어 그의 책상 위에 서류에 대해 물어보는 척 보여주었다. 그는 그녀를 속이고, 그녀 몰래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이 걸리는 듯 고민을 하다가 명왕의 부름으로 타라가 자리를 비우자 그때서야 먹었다. 작게 고맙다고 말하는 그에게 작게 으쓱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무실의 마녀가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였다. 반쯤 시체가 되어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다이무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하나는 쟤한테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게 종이에 윌라드가 준 것이니 타라가 없는 지금 몰래 먹어라 라고 적어 서류를 들고 그의 자리로 가 물어보는 척 초콜릿과 종이를 건네주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다이무스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니 그제서야 감사의 인사를 하듯 작게 고개를 숙이며 초콜릿을 먹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엽긴 짜식. 작긴 해도 당이 들어가서 그런지 조금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맑아진 정신으로 서류를 처리하고 있자니 마녀가 사무실로 들어와 초콜릿 먹은 놈 누구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건너편 앉아 살짝 몸을 움찔거리며 무표정으로 서류를 처리하는 다이무스의 모습이 너무 잘 보였다. 거기다 살짝 고개를 돌리니 몰래 초콜릿 껍질을 책 안에 넣고, 그 책을 또 지 가방 속에 넣어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로라스의 모습까지 보였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타라는 거기 쓰러지지 말고 일해! 그리고 초콜릿 먹은 놈 진짜 누구야!!! 라고 고함을 쳤다. 솔직히 그녀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가끔 이러는 것도 꽤 재밌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류를 하는 로라스 라던가, 작게 움찔거리며 타라의 눈치를 보는 다이무스 라던가. 결국, 범인을 찾는 걸 포기했는지 이를 갈며 업무를 하는 타라의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져, 나중에 그녀의 다이어트가 끝나면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놓았던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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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regàlo

2015. 8. 2. 00:07 | Posted by 아뮤엘

출장으로 인해 회사에서 벗어나 일본에 와있었다. 동양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해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되었다. 키가 작은 사람들, 길가에 보이는 사람들 밤하늘처럼 검은 눈과 머리카락을 가졌다. 자신을 안내하는 회사에서 붙여준 사람을 따라 자신이 묵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숙소는 분홍빛 꽃잎을 흩날리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니 놀라웠다. 
“저기 저 분홍색 꽃잎을 가진 나무는 뭐라 부르나?” 
“아아, 저건 이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라고 합니다” 
흐응..” 
멍하니
 서서 나무를 구경하는데 옆에 서 있던 가이드가 슬슬 가봐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갑갑한 정장을 벗고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유카타..? 라고 하던가. 뭔가 헐렁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입고 있다 보니 편했다. 가져온 서류를 처리하다 보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가이드가 약속 시각이 되었다고 슬슬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가져온 정장으로 갈아입고 방 밖으로 나왔다. 남자가 안내하는 곳을 말없이 따라가니 어떤 방 앞에 멈추어 방문을 열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한 장본인이 앉아 있었다. 마주 앉아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일에 대한 말을 나누었다. 긴 식사 시간을 보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챙기기 위해 식사 시간 내내 팽팽한 신경전을 펼쳐졌다. 자신도 회사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왔기 때문에 최대한 회사에 이득이 되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더더욱 자신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누워 있는데 자신의 지친 모습을 본 가이드가 온천이라도 즐기지 않겠냐며 말을 건네 왔다. 온천이라..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크으~ 시원하네” 
온천수에 몸이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된 회사 업무로 쌓인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충분히 온천을 즐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온천으로 피로가 풀려서인지 감겨오는 눈에 준비된 이불에 몸을 맡겼다. 

눈을 뜨니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가이드가 룸서비스를 시킨 것인지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기다란 막대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뒤늦게 포크를 건네주는 숙소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도 먹었겠다 떠나기 전 마을이나 둘러볼까 싶어 가이드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숙소를 나섰다. 활발한 시장과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가이드가 어딘가를 들려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떤 가게였다. 향기로운 향이 가득 나는 가게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차를 파는 가게라고 했다. 무슨 차가 있나 싶어 구경하는데 가이드가 자신에게 어떤 병을 건네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벚꽃 차라고 말했다. 병 안을 보니 연 분홍색을 지닌 꽃들이 제 색을 잃지 않고 담겨있었다. 아름다웠다. 놀러 온 기념으로 사 갈까 싶어 계산하기 위해 한 병을 올려놓는데, 차를 파는 상인이 뭐라 말을 하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 차가 기침이나 숙취, 식중독에 좋다고 말하고 있다고 통역해주었다. 숙취라... 매번 자신과 술을 마시면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고동빛 머리칼을 가진 이가 떠올랐다. 녀석도 차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 단 차도 아니라고 하니... 벚꽃 차를 하나 더 사 들고 숙소로 향하였다. 조금은 기뻐해 주려나 선물을 받고 좋아할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작은 선물이 그의 마음에 들기만을 바라며 작게 미소를 지으며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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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 -下-

2015. 7. 31. 23:36 | Posted by 아뮤엘

그는 나에게 능력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제 손을 잡고 외출의 목적이었던 시장으로가 심부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는 내일부터 매일 11시쯤 공원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하며 저를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멍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오자 미안하다고 꼬옥 안으며, 조금 늦긴 했어도 장을 봐온 자신에게 고맙다며 이마에 키스를 해주셨다. 그날 이후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10시 반쯤 집을 나섰다. 스스로 집을 나서는 자신의 모습에 부모님은 놀라셨다. 차마 묻지는 못하시고 잘 다녀오라고 볼에 키스를 해주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와 만나기로 한 공원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고 앉아 그를 기다렸다. 속으로 빨리 11시가 되길 빌면서. 누군가 저를 안아 들었다. 감고 있던 눈을 뜨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소음 없이 고요한 그의 품에 안겨 볼을 부빗거리자 그는 쿡쿡 웃으며 그렇게 좋냐고 물어왔다. 나는 대답 없이 조용히 끄덕였다. 그의 품에 안겨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도착했다며 자신을 내려 손을 내미는 그의 모습에 웃으며 내민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는 과자와 음료를 놓으며 노트와 펜을 가지고 제 옆에 앉았다. 그는 일단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 능력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무슨 능력인지, 능력을 이용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등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설명해주었다. 제 능력에 대해 이렇게 정확하게 알려준 사람은 없었기에, 그것보다 자신이 말한 적도 없는데 제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의 모습에 조금 놀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없이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시계를 보더니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며 몸을 일으켰다. 사실은 그의 곁에 더 있고 싶었지만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렇게 매일 두 시간씩 그의 집에서 능력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그런 생활이 한 달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내 능력을 완벽하게 제어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완벽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 가도 소음 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없게 되었다. 평범한 사람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내가 원할 때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읽을 수 없는 이가 있었다. 그래, 헤이 그의 속마음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제 모습을 보며 그는 말했다.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신의 속마음만은 읽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건 자신의 능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특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웃고 넘겼겠지만, 그와 함께 지내면서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그는 뭐든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치 신처럼. 


그와 만난 지 5년째 되던 날이었다. 그는 이제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와 헤어진다는 것을 얼핏 알고 있었기에 애써 담담한 척 그래요? 라고 대답하였다. 어디로 가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의 발목을 붙잡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언제 떠나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일주일 정도 더 머물다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너무 빠르잖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과자를 집어 먹는데 그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는 최근 어떤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고, 그 조직에서 자신이 펼쳐가고 싶은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조직의 수장이라니.. 스케일이 큰 이야기라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그가 앞으로 계획하는 미래에 꼭 필요한 사람이자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그 말 한마디에 들고 있던 쿠키를 떨어뜨리고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싫으면 거절해도 된다고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며 이마를 손가락으로 팅겼다. 울고 있는 어린아이였던 나를 구원한 것은 당신이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자신을 아무 대가 없이 바쁜 그의 시간을 쪼개 어엿한 한 명의 능력자로서 키운 것은 바로 그였다. 자신은 그의 인생에서 지나가는 작은 인연.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어렴풋이 그를 찾아오는 이들을 보고 그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언제 떠날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떠나기 전에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었다. 자신을 기억해줬으면 해서. 하지만 그는 자신을 소중한, 그가 만들 미래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가렸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며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나는 나를 절망 속에서 구해준 그를, 아니 나의 신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저 제 곁에서 자신의 사람으로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지금의 나는 어리기에 그는 좀 더 크면 그때 중요한 일을 부탁하겠다고 지금은 곁에서 어리광이나 부리라며 다정하게 제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날 나는 속으로 다짐하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의 신을 배반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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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 -上-  (0) 2015.07.31

Dream

2015. 7. 31. 22:52 | Posted by 아뮤엘

나는 항상 꿈을 꾼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사는 것을. 어린아이들에게 업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괜찮은 척 지친 몸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선다.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적의 몸에서 흩날리는 피를 덮어쓰고 전쟁터에서 돌아오면 제 몸 깊숙이 밴 피 냄새가 아이들에게 밸까 싶어 아이들을 피해 방으로 가 피 냄새가 가실 때까지 씻고 또 씻었다. 새하얀 피부가 붉어질 때까지 씻고 나오면 제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린아이들이 안겨왔다. 해맑은 얼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힘들었던 것도 잊을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면, 이 아이들이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건 자신만의 생각일 뿐, 연합의 높으신 분들은 아이들의 능력을 전쟁에 이용하길 원했다. 아이들의 능력은 강력해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분명 승기는 자신들 쪽으로 기울 것이 분명했다. 적들도 그것을 알고 있으므로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전쟁을 피하고 싶었다. 이 전쟁의 뒤에서 가장 이득을 볼 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자신의 말을 믿는 이는 없었다. 유일한 사건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제 형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형의 부상과 명왕의 양녀인 앨리셔 습격 사건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깊었던 골이 폭발해 두 조직 간의 전쟁을 알렸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정해진 인원이 싸운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렇게 일정 시간이 지날 때까지 싸우고 나면 그날의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부상자를 이끌고 가 치료를 하고 괜찮은 자는 다음 날도 나가고 심한 자는 부상을 치료하며 다음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솔직히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싸우고 싸웠는데도 불구하고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다. 조직원들 사이에서는 이 전쟁이 의미 없는 전쟁이라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조직원 중에서도 지친 이들이 많아 이 의미 없는 전쟁을 끝내자는 건의도 많이 했지만, 그 의견은 무시되기수였다. 상부에서는 이 전쟁을 서로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자존심 싸움으로 생각해 불씨를 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직원들은 그런 상부에 반박하다 지쳐 떨어져 나가거나 조금이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좀 더 개발하는 등 여러 부류로 나누어졌다. 다른 조직원들이 물었다. 힘들지 않냐고. 첫 전투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매 전쟁에 참여한 자신을 주변에서는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때마다 뭐~ 이 정도는 이 이글 홀든 님에게는 별거 아니지! 라고 말했지만 사실 연이은 전투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을 생각하며 견뎠다. 제가 아이들 대신 전쟁터에서 싸우기로 약속했기에 자신이 쓰러지면 아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낼 것이 뻔했기에 힘들지만 견딜 수 있었다. 


실컷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리다 지쳤는지 제 방 침대에서 잠이 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도 눈을 감았다. 내일도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서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비축해야 했으니까. 눈을 감고 속으로 빌었다. 내일은 전쟁이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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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la pioggia

2015. 7. 31. 22:04 | Posted by 아뮤엘

비가 내리는 날은 싫었다. 쓸모없는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니까. 창밖으로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 이내 커튼을 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연구에 대한 것들을 적어 내리던 노트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계속 앉아있던 탓인지 우드득 소리를 내는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었다. 연구실의 불을 끄고 부엌으로 가 찻물을 끓였다. 평소 즐겨 마시진 않지만, 우유와 꿀을 꺼내 밀크티를 탈 준비를 하였다. 완성된 밀크티를 테이블에 놓고, 같이 곁들일 티푸드를 찾아 찬장을 뒤적거렸다. 뭐 괜찮은 것이 없나 찾는데, 얼마 전 회사 여직원이 선물이라며 준 쿠키가 눈에 들어와 꺼내 들고 소파에 앉았다. 고급스러운 포장지를 뜯으니 아기자기하게 들어있는 쿠키가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수제 쿠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수제 쿠키를 선물한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뭐 맛만 좋다면야 라는 생각으로 쿠키 하나를 집어 먹었다. 제가 단것을 싫어하는 걸 아는지 몰라도 그리 달지 않아 달게 탄 밀크티와 어울렸다. 쿠키 자체도 맛있었기에 평소 쿠키를 즐기지 않던 자신도 계속 집어 먹게 되었다. 밥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꽤 많은 양의 쿠키를 먹었다. 더 이상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상자를 덮고 끈적한 손을 닦기 위해 싱크대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밖에서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라는 생각에 손을 씻고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십니까?"

"날세, 렉스"
"무슨 일이라도 있냐?"
비 오는 날, 사람을 밖에 세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문을 열어 그가 들어오게 하였다. 비에 젖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뽀송뽀송한 녀석을 보니 왠지 문밖으로 내보내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고 그가 들어올 수 있게 비켜섰다.
"무슨 일이냐"
"자네가 오늘 찾아와 달라고 하지 않았나?"
"아...그랬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얼마 전, 이번 연구에 대한 의견을 묻고자 그에게 오라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 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니 그는 괜찮다며 소파에 앉았다.
"차라도 마실래?"
"아아, 그럼 고맙지. 그건 그렇고 이건 뭔가?"

"어, 그거? 저번에 회사 여직원이 선물이라고 준 건데 달지 않아서 꽤 괜찮더라"
"흐응.."
그가
좋아하는 차를 타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하고 연구실로 가 그에게 의견을 묻고자 한 부분들을 적은 노트를 가져왔다.

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자고 싶었지만, 저 빗속을 뚫고 왔을 그에게 미안했기 때문에 그에게 물으려던 것을 빨리 묻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노트를 받아들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더니 그의 옆자리를 탁탁 쳤다.
"뭐냐."
"이리오게."
"....??"
그의
옆자리에 앉자 큰 손이 제 눈을 가리고 그대로 눕게 하였다.
"어...???"

"한숨 자고 있게. 어차피 묻고자 하는 내용은 이 노트에 있으니 여기에 답을 적도록 하지"
제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그가 얄미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수마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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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 -上-

2015. 7. 31. 21:22 | Posted by 아뮤엘

내게 들리는 세상은 언제나 소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겉으로는 상냥한 척, 다정한 척 다가오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 절망, 질투, 시기에 가득 찬 사람들. 특별하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면 제 그냥 평범했겠지만, 자신은 다른 이의 정신도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같았다. 특별한 능력이기 때문에 제 능력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고, 능력을 다루는 방법 또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소음에 조금씩 미쳐갔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집을 나서는 순간 들려오는 소음들을 맨정신으로 버티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걱정한 부모님은 도시에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골로 한동안 내려가서 지내볼래? 라고 제안해 오셨다.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좋았다. 부모님은 이곳에서의 삶을 되도록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 뒤로는 숲이 있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 말 그대로 외딴곳에 네 가족이 살게 되었다.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내려오니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소음이 없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동생과 단둘이 지낼 때가 많았는데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는 것밖에 없었다. 하루는 소꿉놀이하기도 했고, 하루는 장난감을, 또 어떤 날은 산에서 내려온 토끼 같은 작은 짐승과 놀며 이곳에서의 삶을 보냈다. 아주 가끔 동생의 요청에 동화를 읽어 주기도 했지만, 집에 있는 책은 이미 수십 번도 더 넘게 읽었기에 질려 있었다. 그래도 둘이서 함께 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이 심각한 얼굴로 돌아오셨다. 동생과 저를 소파에 앉혀 놓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사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평화로웠던 시골에서의 생활은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다시 돌아온 도시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도시로 올라오자 집에서 나가지 않는 제 모습에 답답하였는지 잠시 심부름 좀 다녀와 달라고 어머니가 부탁하셨다. 싫다고 고개를 저어봤지만, 단호한 어머니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사야 할 목록이 적힌 종이와 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그나마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지쳐 귀를 막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힘겹게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안아 들었다. 자신을 품에 안고 토닥거리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뿌리칠 만큼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조용히 눈을 뜨고 자신을 안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달콤한 딸기가 생각나는 붉은 눈. 자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자신을 향해 생긋 웃어주더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작게 속삭였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 방에 누워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잠을 자다니.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말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지? 눈을 굴리며 제가 있는 곳이 어딘지 파악하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나 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가는데 갑자기 열리는 문에 놀라 주저앉았다. 열린 문으로는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가 보였다.
"벌써 일어난 건가?"
"ㄴ...누구시죠?"
"흐음. 나는 헤이라고 한다. 너는 누구지, 꼬마?"
"저는 마틴이라고 해요. 여긴 어디죠?"
"여기는 내가 임시로 머무는 곳이지."
앉으라는 듯 소파를 눈짓으로 가리키는 남자의 행동에 이곳에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소파에 앉았다. 남자는 테이블 위에 음료와 간식들을 제 앞에 놓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남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남자의 속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읽히지 않았다. 처음으로 읽히지 않는 상대를 만났다는 것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엣... 읽히지 않아.. 어째서?"
"더 노력해서 읽어 보던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차를 홀짝이는 남자의 태도에 열이 받아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포기한 모양이지?""...어째서 읽히지 않는 거지..원하지 않아도 들리던 것들인데..."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남자는 쿡쿡 웃음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능력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군"
"아무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거에요!"
"그럼 내가 널 구해주지. 영광으로 알아라,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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