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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벨져] guilt - 上

2015. 8. 31. 02:00 | Posted by 아뮤엘

해변 립스틱 바레벨져

내게 주어진 환경들은 나를 지치게 하였다.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곳에서 살기 위해,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자신이 강해질수록 제 손에 묻는 피의 양도 늘어났다. 제 몸을 떠나지 않는 이 역겨운 냄새가 싫었다. 살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타인을 죽이는 제 모습도 역겨웠다.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보스에게 가 처음으로 휴가를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이 놀라웠는지 보스는 제 예상보다 넉넉한 기간의 휴가와 휴가비를 챙겨주었다.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보스는 계속 거절하는 것도 실례라며 제 손에 돈 봉투를 쥐여주고 집무실에서 쫓아 내었다. 어딜 갈까? 휴가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막살 갈 곳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휴가 요청이 거절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딱히 생각하지 않은 탓이 컸다. 일단 집으로 가볼까. 여행을 떠나려면 짐도 챙겨야 했으니, 집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오는 길,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집 근처 마켓에 들렸다. 당장 내일 떠난다고 해도 오늘 저녁과 아침은 먹어야 했기에 빵과 햄, 약간의 과일을 샀다.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최소한의 가구만 놓인 방이 눈에 들어왔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집에 있는 일이 드물어 집에 오더라도 잠만 자고 나가는 일이 많았다. 새삼 집 안의 풍경이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꾸밀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리 불편하지도 않았기에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가만히 서서 흐르는 물을 맞고 서 있었다. 한참을 그리 서 있다 눈을 떴다. 투명한 물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제 몸을 적시고 있었다. 구역질이 나는 것을 억지로 삼키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투명한 물이 제 몸을 적시고 있었다. 어질 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욕실에서 나왔다. 뚝뚝 떨어지는 물을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일까? 눈을 뜨니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벌써 아침인가? 어기적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어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서 그런지 출출했다. 햄과 과일을 썰어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샤워까지 하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 되었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어딜 갈까 고민하였다.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집에서 휴가 내내 쉴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딱 여기다 싶은 곳이 없었다. 아, 머리 아프다. 뭐라도 보면 괜찮은 생각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TV를 켰다. 새하얗게 분을 칠하고 립스틱으로 붉게 입술을 칠한 여인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다. 아름답다고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에 도대체 어디가 아름답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채널을 돌려도 나오는 것은 엇비슷했다. 싸구려 코미디, 여인들의 로망을 담은 드라마. 몇 번을 돌렸을까? 지친다. TV를 끌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돌려보고 꺼야 한다는 마음으로 돌린 채널에는 한적한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변이라 사람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해변이 있던가? 계절이 계절인 만큼 사람이 많을 텐데. 고민하다 내가 선택한 곳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 곳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사람들은 가지 않게 되니까. 근처에 작은 마을이 있는 해변으로 여행지를 정하고 짐을 챙겼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기에 적은 수의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을 챙겨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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