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들리는 세상은 언제나 소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겉으로는 상냥한 척, 다정한 척 다가오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 절망, 질투,
시기에 가득 찬 사람들. 특별하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면 제 그냥 평범했겠지만, 자신은 다른 이의 정신도 조작할 수 있다는 것 같았다. 특별한 능력이기 때문에 제 능력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고,
능력을 다루는 방법 또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소음에 조금씩 미쳐갔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졌다. 집을 나서는 순간 들려오는 소음들을 맨정신으로 버티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걱정한 부모님은 도시에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골로 한동안 내려가서 지내볼래? 라고 제안해 오셨다.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좋았다. 부모님은 이곳에서의 삶을 되도록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 뒤로는 숲이 있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 말 그대로 외딴곳에 네 가족이 살게 되었다.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내려오니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소음이 없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았다. 부모님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동생과 단둘이 지낼 때가 많았는데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는 것밖에 없었다. 하루는 소꿉놀이하기도 했고, 하루는 장난감을, 또 어떤 날은 산에서 내려온 토끼 같은 작은 짐승과 놀며 이곳에서의 삶을 보냈다. 아주 가끔 동생의 요청에 동화를 읽어 주기도 했지만, 집에
있는 책은 이미 수십 번도 더 넘게 읽었기에 질려 있었다. 그래도 둘이서 함께 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이 심각한 얼굴로 돌아오셨다. 동생과 저를 소파에 앉혀 놓고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사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평화로웠던 시골에서의 생활은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다시 돌아온 도시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도시로 올라오자 집에서 나가지 않는 제
모습에 답답하였는지 잠시 심부름 좀 다녀와 달라고 어머니가 부탁하셨다. 싫다고 고개를 저어봤지만, 단호한 어머니의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사야 할 목록이 적힌 종이와 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그나마 조용한 주택가를 지나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지쳐 귀를 막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힘겹게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안아 들었다. 자신을 품에 안고 토닥거리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뿌리칠 만큼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조용히 눈을 뜨고 자신을 안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달콤한 딸기가 생각나는 붉은 눈. 자신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자신을 향해 생긋 웃어주더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작게 속삭였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 방에 누워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잠을 자다니.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말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지? 눈을 굴리며 제가 있는 곳이 어딘지 파악하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나 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가는데 갑자기 열리는 문에 놀라 주저앉았다. 열린 문으로는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자가 보였다.
"벌써 일어난 건가?"
"ㄴ...누구시죠?"
"흐음. 나는 헤이라고 한다. 너는 누구지, 꼬마?"
"저는 마틴이라고 해요. 여긴 어디죠?"
"여기는 내가 임시로 머무는 곳이지."
앉으라는 듯 소파를 눈짓으로 가리키는 남자의 행동에 이곳에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소파에 앉았다. 남자는 테이블 위에 음료와 간식들을 제 앞에 놓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남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남자의 속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전혀 읽히지 않았다. 처음으로 읽히지 않는 상대를 만났다는 것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엣... 읽히지 않아.. 어째서?"
"더 노력해서 읽어 보던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차를 홀짝이는 남자의 태도에 열이 받아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포기한 모양이지?""...어째서 읽히지 않는 거지..원하지 않아도 들리던 것들인데..."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는데 남자는 쿡쿡 웃음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능력을 다루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군"
"그럼 내가 널 구해주지. 영광으로 알아라, 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