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다. 네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만난 것이었는데. 금방 떠날 거라던 너는 하루, 이틀 조금씩 돌아가는 날짜를 미루었다. 처음에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지상의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구나.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너와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잊고 말았다. 네가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오랜만에 같이 산책을 제 손을 이끄는 너의 손을 귀찮다며 쳐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녀올게. 라고 약간은 씁쓸한 말투를 하며 집을 나서는 너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평소에도 같은 일이 몇 번 있었기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들고 있던 설계도를 마저 작성하였다. 열매가 달게 잘 익었다며 바구니 한가득 열매를 따온 녀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거의 마무리된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미 완벽한 설계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더 확인해보고 나서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이나 앉아서 작업했기 때문일까?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부엌으로 가니, 요리를 하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짙은 고동색의 머리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에서 꼭 껴안았다. 놀랐는지 흠칫 떨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녀석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하던 일 하라고 하자 긴장으로 경직된 손놀림으로 야채를 씻었다. 녀석의 반응이 우스워 그대로 안겨있는데 이내 익숙해졌는지 노련한 손놀림으로 야채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안아주고 싶었다. 그날따라 그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알은 육류를 먹지 않았다. 야채와 과일도 적은 양만 먹었다. 저도 고기는 그리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해주는 채식요리가 좋았다. 그가 요리한 음식들을 식탁 위에 옮기고 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그가 앉았다. 평소보다 화려한 식탁. 특별한 날에나 할 법한 요리들이 식탁 가득 올라와 있었다.
“야 오늘 무슨 일 있냐?”
“......아... 그냥 오늘은 이렇게 차려 먹고 싶어서 그랬다네”
뜸 들이다 말하는 그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많은 놈이라 평소에도 이렇게 뜸 들이는 일이 잦았으니까.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그는 자신과 외출하기를 원했다. 이 녀석이 왜 이러지.. 거절할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서는 그의 모습을 그냥 넘기지 말걸. 계속 거절하기에 미안해 딱 한 번 그와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와 자신이 처음 만난 호숫가로 도시락을 싸들고. 평소 외출을 한다고 하면 들떠야 정상 일 텐데, 오늘따라 어두운, 억지로 웃는 듯한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힘들면 그냥 집에 가서 쉴까? 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숫가에 도착해 같이 과일도 따고 물놀이를 실컷 즐겼다. 그러다 지쳐 풀밭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느덧 해는 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렉스.. 오늘 즐거웠나?”
“아? 넌 아닌 것처럼 말한다?”
“나도 즐거웠다네”
제 눈을 덮는 따뜻한 손길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즐겼다.
“렉스... 자네는 내가.. 없어도 괜찮겠나?”
“엉? 그게 무슨...”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가볍게 제압하였다. 그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 눈을 덮은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하였다.
“..무슨..일인데?”
말없이 저의 몸을 반쯤 일으켜 껴안는 그의 행동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감겨있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날개였다. 주변에 새라도 있나 싶었지만, 이렇게 큰 날개를 가질만한 생명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야.. 알.. 이상해. 너 날개가 달려 있어...”
“......”
“야.... 보라니까? 너 날개가...???”
새하얀 빛을 자랑하던 날개는 조금씩 검게 물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저를 안은 알베르토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그의 날개에 손을 뻗었다. 검게 물든 날개는 제 손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그의 팔에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 없이 저의 품에 기대어있는 그를 살짝 밀어내 제 어깨에 기대어 있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창백해진 얼굴. 다문 입가 사이로 피를 흘리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야.. 알 왜 그래.. 장난이지?”
“ㅁ...안...하,네”
그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날개가 자신의 손길에 흩날려졌던 것처럼, 그의 몸도 조금씩... 지금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평소와 같이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는데.
“야... 새꺄..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
“....우..ㄹ...지....마,ㄹ..게”
“차라리..꿈이라고... 해달라고”
“사,ㄹ....ㅎ...네”
고통스러울 텐데, 웃음을 지으며 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 시야 때문에 자꾸 보이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이제는 상체만 남은 그의 얼굴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의 제안을 거부하지 말걸. 너와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걸.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이렇게 말없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두고 떠나는 그도 미웠지만, 지난 날들이 떠오르며 제 행동들이 다 후회가 되었다. 푸르게 빛나던 눈은 감기고, 어깨에 닿던 고동색 머리도 조금씩 흩어져갔다. 그가 들을 수 있도록,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울음에 잠긴 목소리를 애써 다듬고 그가 자주 불러주던 자장가를 떠올리며 노래하였다. 제 노랫소리가 그에게 닿기만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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