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뒤로하고 욕실로 나섰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구운 식빵과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각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아침을 먹으며 어제 회사에서 들고 온 잔업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각까지 한 시간가량 남아있었다. 평소 잠에서 잘 깨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식기와 서류를 정리하였다. 평소 입는 정장 대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갑과 열쇠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한 십분 쯤 걸었을까? 저 멀리 그의 집이 보였다.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도착한 그의 집은 정적만이 흘렀다. 자신의 예상대로 푹 잠을 자는 모양이라, 굳게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을 반기는 것은 어질러진 집안의 풍경이었다.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에 서툰 그였기에 가끔 자신이 놀러 와 정리해주었다. 널브러진 물건들을 집어 정리하며 집의 주인이 있을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불 속에 파묻힌 그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걷어냈다. 푹 잠이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악몽이라고 꾸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낮은 신음을 내는 그의 모습에 놀라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게, 렉스”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인지 감겼던 눈이 떠졌다. 잠에서 막 깨서 초점이 맞지 않는지 흐릿하던 눈이 곧 초점을 찾았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안겨오는 그의 모습에 조심스레 껴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 평소라면 장난치며 먼저 다가올 그인데, 선을 긋고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 다가가 묻기도 하고, 그의 집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심장에 상처를 내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심장만이 제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그가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매달리는 것도 지쳐갔다.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먼저 지쳐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나를 대하듯 나도 그에게 냉담하게 대하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같이 웃고 떠들며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행동하였다.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가오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내가 먼저 지쳐갔다.
“날 미치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대 성공이야, 렉스.”
정신을 차리니 물건이 깨지고 부서진 어질러진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자신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이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 봐 렉스. 내가 미쳐가고 있어. 너 때문에.”
어두워진 하늘에 비가 내렸다. 평소와 같이 야근을 마치고 서류를 정리하는데 크루그먼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작게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괜히 짜증이 났다. 그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정리하고 인사를 한 뒤, 회사에서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크루그먼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서랍 깊숙이 숨겨 놓았던 그의 집 열쇠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섰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불이 꺼진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질러진 물건들이 자신을 반겼다. 물건들을 피해 그의 집을 대충 둘러보았다. 밥은 제대로 먹는 건지 냉장고 안에는 식재료대신 음료들이 가득했다. 부엌에서 나와 그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체향이 가득 배어 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언제쯤 돌아오는 것인지. 크루그먼이 그에게 가진 감정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가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길래 이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 숨을 죽이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이내 거실에서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문에 귀를 대고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음료를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별일 아닌가 싶어 나가려고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에라도 나가 우는 그를 끌어안아 주고 싶었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그 마음을 잠시 접었다.
“....보고 싶어. 알베르토”
울음소리가 멎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문 앞에 서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울음소리 대신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고리를 돌려 나가니 무릎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들린 맥주 캔을 치우고 그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렇게 혼자 아파할 거면 날 피하지나 말던가. 이래서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잠이 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제 쪽으로 몸을 돌려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입가에 작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원망할 때는 언제고 결국 그의 작은 행동에도 풀어지는 제 모습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정작 그는 항상 그 작은 어깨에 모든 걸 짊어졌다. 항상 제 속내는 숨기는 그의 행동이, 혼자 끌어안고 상처받는 그의 모습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인가,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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