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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quietud -上-

2015. 7. 29. 05:01 | Posted by 아뮤엘

처음으로 본 세상은 새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눈을 깜박이니 어떤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존재가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는 말했다. 자신이 그의 기운을 나눈 분신이라고.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면 되냐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 대신 죽는 일이라면 조금은 사양하고 싶었다. 태어난 이상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으니까. 담담하게 묻는 제 말에 그는 미소를 띠며 자신을 헤이라고 소개했다. 뜬금없이 이름을 소개하는 그의 태도에 아, 나는 그의 대타로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정보들을 정리했다. 그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저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그는 제 머리를 쓰다듬더니 대타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자신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말을 이었다.

“너는 바이. 내 소중한 분신이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는 나를 소중하다는 듯이 다루어주었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 몸을 섞기도 하면서 그의 연인이 되었다. 그는 나를 소중히 대해주었지만, 나는 늘 마음 한구석에서 그에게 버림받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와 조금이라도 같이 있기 위해, 그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자신이 그의 손 위에 놀아나는 장기 말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며 속삭여줬지만, 그 말이 진짜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들이지만 그가 클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과 그 사이에 조금씩 보이지 않는 균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 호기심에 시작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이 클론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모두 그가 자신이 관심을 가지도록 의도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클론에 대한 실험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이상했다. 자신이 떼를 쓰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시작한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치 실험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실험에 대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리 비에르노라도 긴 준비 기간 없이 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인데 그때의 자신은 비에르노니까 가능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넘겨짚었다. 순조롭게 진행된 실험. 그리고 이내 잊어버린 클론 실험. 솔직히 그의 흥미를 끌기 위해 한 행동들이었기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조직 내 업무로 바쁜 그와 함께 있고 싶었으니까. 그런 실험이라도 하면 자신과 같이 있을 시간이 길어지니까. 노인이 죽고 나서 조직의 수장이 된 헤이는 바빠졌다. 저도 조직 내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게 되었고 맡은 업무를 하다 보니 클론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노인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업무도 줄고 그와 함께 있을 시간이 늘어났다. 그냥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계속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집무실에 앉아 제 몫의 서류를 처리하던 도중 잊고 있었던 클론에 대한 이야기가 서류로 올라왔다. 요즘 릭이랑 비에르노랑 셋이서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바빠 그를 보지 못했다. 클론이라면 그가 관심 있어 하던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서류의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클론의 이름은 티엔 정. 마틴이 속해있는 그랑플람 재단의 스카우터라고 적혀있었다. 그와 똑같이 생긴 얼굴. 다만 다른 것이라면 한쪽 팔에 있는 검은 문신과 눈 색, 그리고 티엔이라는 클론의 얼굴에는 뱀 문신이 없었다. 다음 장으로 넘기니 싱이라는 이름을 가진 저와 똑같이 생긴 이의 사진이 있었다. 티엔이라는 클론의 반대 팔에 흰 문신과 눈 색이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체중과 키는 뭐.... 다음 장을 넘기자 이 둘에 대한 상세 설명이 적혀있었다. 티엔이라는 클론이 폭주하는 제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기운을 나눴는데 거기서 나온 것이 싱이라는 존재였다. 저와 같으면서 다른 존재. 자신은 죽어도 헤이에게는 별 영향이 없지만, 이 싱이라는 존재는 죽음은 본체인 티엔이라는 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점이 미칠 듯이 부러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괜찮다. 자신이 그를 사랑하듯이 그도 자신을 사랑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흐르는 피를 닦아내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피가 멎은 것을 확인하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돈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전할 내용을 간추려 집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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