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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il crìmine (8)

2015. 7. 1. 19:25 | Posted by 아뮤엘

꼬맹이와 케이크를 먹으러 다녀온 뒤, 책상에 앉아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어 내려갔다.

어떤 대답이 제일 홀든가 막내다운가...

꽤 여러 대답이 나왔으나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홀든 가의 막내는 어떤 인물이었지?

가볍고, 자유분방하며, 망나니스러운...

“나.. 어떻게 여태까지 버텨왔냐...”

연필을 굴려 이것저것 다른 답들을 나열해 놓는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최대한 자신에게 어울리는 답안을 적어놓은 질문지를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꿈을 꾸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죄책감에 저택에서 나와 방황하던 시절의 꿈을..

어두워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어느새 굵어져 세찬 소나기가 되어 내렸다.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다 도착한 곳은 부모님의 묘였다.

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죄를 털어놓았다.

죄송하다고, 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눈을 떴을 때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있었다.

익숙한 향과 뒷모습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형이 왜...이곳에?

“깨어있다는 거 다 안다, 이글”

“......”

“네 잘못이 아니다.”

무뚝뚝하지만, 그 속에 담긴 다정함을 알기에..

형의 등에 업힌 채 소리 없이 흐느꼈다.

자신의 눈물이 비에 섞여 형이 깨닫지 못하길 바라면서


꿈에서 깨고 한동안 이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다른 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기 위해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자, 저 멀리 회사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보고 싶다...”


그렇게 수 십분 정도를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이렇게 바라보기만 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기에 잠들기 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질문지를 꺼내 각 질문에 대한 답을 외웠다.

완벽하게 외워야 했기에 수십 번도 더 읽고 이상한 것은 고치다 보니 벌써 저녁 무렵이 되어있었다.

내일 오전에 인터뷰가 있었기에 이르지만,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간단하게 씻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으니, 저택에서 나온 지도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처음에는 한 달? 버티면 용하다고 생각했는데, 형을 잊기 위해 이곳에서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저택에서 나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물었었다.

자신의 삶에 형이라는 존재가 없이 자신이 살 수 있는가?

처음에는 형 없이도 혼자 버틸 수 있다고, 그리 생각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의 이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일원이 되어 자리를 잡을수록 형이 그리워졌다.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면서 저택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꼬맹이와 놀러 간다는 핑계로 회사 근처의 카페에 들려 형의 얼굴을 몰래 보았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보면 형에게 들킬까 봐, 강 건너 카페에서 형의 모습을 보는 게 다인지라..

멀리서 보이는 형을 바라보며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내가 없어도 형은 잘 지내고 있구나..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꼬맹이의 손을 잡고 연합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멍하니 앉아있다, 잠을 잤다.

울고 싶었지만, 차마 울 수는 없었다.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가지고,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선을 넘은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변명도, 사과도 하지 않고 도망쳐 나온 것은..

그러니 자신은 울 자격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이 되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임무를 나가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을 반복하였다.

“바보 같네, 나”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려 눈을 감았다.

지금 당장은 내일의 일이 더 중요하니까...


이른 아침, 눈을 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얼마 전, 새로 산 정장을 입고 방 밖으로 나서자 문 옆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금발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뭐하냐 꼬맹이?”

“아찌 어제 엘리랑 안 놀아쪄”

“아.....”

어제 아이랑 공원에 놀러간다고 약속한 것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공원에 간다고 행복해하던 얼굴이 떠올라 더 죄책감이 들었다.

“ㅁ..미안하다 꼬맹아”

“흥! 엘리 몰라”

시계를 보니 슬슬 나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이렇게 두고 가기에는...

“미안한데, 꼬맹아. 오빠가 지금 일이 있어서 그런데 기다려 줄래?”

“....”

볼을 빵빵하게 불리고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그럼 꼬맹아, 오빠랑 같이 일하러 갔다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쫑긋거리는 귀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도도한 척 팔을 벌리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공주님 가실 준비는 되셨습니까?”

“훙, 엘리는 맛있눈 거 아니면 안 먹오!”

“네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인터뷰를 하기로 한 장소는 형이 있는 회사 근처의 카페였다.

창가 쪽에 아이를 앉게 하고 그 옆에 앉자, 맞은편에 기자가 앉았다.

아이를 알아보았는지

“엘리양이랑 같이 놀러 다니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이었나 봐요”

“뭐, 우리 공주님이 워낙 활기차야지”

음료수를 홀짝이는 꼬맹이의 쓰다듬어주고 바로 본론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이곳에 조금이라도 오래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질문지에 적혀있던 질문의 양은 그리 많더니, 정작 질문하는 것은 몇 안 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꼬마 공주님을 품에 안은 채, 카페 밖으로 나오는데 회사 밖으로 나오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놀란 마음에 카페에 다시 들어가 주저앉아 버렸다.

“아찌?”

“꼬맹아.. 잠시만....잠시만 가만히 있어 줄래?”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긴 했는지 얌전히 품 안에 안겨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꼬맹이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형의 모습을 조심스레 보았다.

건강할 거라고,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수척해진 얼굴로 임무를 나가는 형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당장 형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러니 형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다가갈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고 한들, 형은 나를 용서해줄까?

내 마음을 모르는 척 외면하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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