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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rinfiànco (Side.E)

2015. 7. 17. 22:33 | Posted by 아뮤엘

“저기 장남은 역시...”

“...니까요.”

“역시 ...라는 걸까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것만 잘하는 이들의 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큰형과 같이 조문객을 맞이하였다. 눈 밑이 붉게 물든 자신과 달리 평소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위로의 인사를 전하는 이들을 상대하였다. 시간은 흘러 부모님을 묘에 안치시키기로한 시간이 되었다. 작은 형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은 도련님을 모셔올까요? 라고 묻는 집사의 말에 큰형은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명을 내리고 내 손을 잡고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형은 묵묵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감정이 메마른, 냉혈안으로 보였겠지만 자신은 느낄 수 있었다. 맞잡은 손에 느껴지는 떨림을.


조문객들로 떠들썩했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친척들과 부모님의 부재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형의 모습을 집무실 밖에서 몰래 지켜보았다. 개떼같이 몰려드는 친척들의 모습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형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이용해 제 가문의 힘과 재산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해대는 이들을 상대하는 형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결국, 하나하나 상대해주다 지친 형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라고 일축하였다. 친척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집사의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집무실로 들어갈까 조금 열린 문 사이로 손을 뻗는데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소리를 죽이고 우는 큰 형의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 제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형의 모습에 다들 혀를 둘렀다. 역시 홀든가 장남은 제 부모의 죽음도 슬퍼하지 않는 냉혈한이라고 떠드는 메이드들의 말소리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당 메이드들을 잡아다가 죽일까? 고민하는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울며 달라붙는 모습에 질려 입단속 시키고 내쫓으라고 집사에게 명령했다. 죽이려던 걸 살려준다니까 겁을 상실했는지 이제는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자기는 부양할 가족이 있다며 동정을 호소했다. 살려준다고 할 때 곱게 돌아갈 것이지. 시계를 슬쩍 쳐다보고 집사에게 눈짓하자 집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제가 내린 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메이드들은 감사하다고 절을 하며 나갔다. 뭐, 남은 가족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고 돈이나 쥐여줘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자 큰형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셔!”

“책을 읽고 있었나?”

제 머리를 쓰다듬는 형에게 안겨 책을 읽었다. 업무를 하다 와서 그런지 잉크와 종이 냄새가 밴 손을 만지작거리자 간지럽다는 듯 볼을 꼬집는 형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집사가 메이드들을 끌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나?”

“으음~ 별거 아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느라”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자,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형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 부비적거렸다.


형의 품에 안겨있다 잠이 든 것인지, 눈을 뜨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비척이며 몸을 일으키니 낯익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무엇인가를 끌어안은 채 잘게 떨리는 몸을 보고 형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껴안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기대면 좋을 텐데, 항상 형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기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려서, 형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저 가녀린 어깨를 끌어안아 달래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르는 척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을 테니까. 바보 같은 자신의 형은. 조심스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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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il crìmine (E)

2015. 7. 14. 23:21 | Posted by 아뮤엘

큰 형이... 입원할 정도의 부상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떨리는 손을 이불 속으로 숨기고 토마스에게 자신이 준비할 동안 형이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가 방을 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일어나 욕실로 가 세안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괜찮을 것이다. 제 형은. 강하니까. 제 애검을 붙잡고 토마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십 분쯤 흘렀을까? 토마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형은 어디에 있대?”

“상처가 꽤 심했는지 아직 혼수상태라고 하네요. 치료 후 바로 저택으로 옮겨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빨리 나으시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구만! 형 상태 좀 보고 올게~”

꼬맹이들 부탁한다라고 덧붙이며 괜찮은 척 평소의 자신을 떠올리며 “이글 홀든”을 연기하였다. 하여간 제 형이 다쳤다는데도 긴장감이 없다니까~, 가서 사고나 치지 말고 다녀와라! 등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해주며 연합을 벗어났다. 아직 자신을 보는 눈은 사라지지 않았다. 괜찮은 척 평소의 발걸음으로 도시 외곽을 벗어날 때까지 걸어갔다. 외곽으로 나오자마자 감시하는 눈길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바로 저택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제 탓이었다. 연락이라도 할걸. 잘 지내고 있다고, 고집부리지 않고 그 한마디만 했어도...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제 상처를 숨기는 데 급급해서,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 못했다. 형은 강하니까. 자신과 달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형이니까.


미친 사람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풍경이 바뀌고 향긋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어디서 맡아 본 적이 있는... 낯익은 향기는 계속 코끝을 맴돌며 제 존재를 알아달라고 떼쓰는 것 같았다. 무슨 향기였지? 라벤더? 로즈마리? 무슨 향일까? 고민하며 뛰는데 녹빛으로 가득했던 눈앞이 조금씩 푸른빛이 은은하게 맴도는 은백색의 무언가로 인해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둘씩 늘어나 나무로 가득하던 숲은 어느새 사라지고 은색 꽃밭이 가득 채웠다.

“아....아아...”

이건 꿈이다. 그렇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외면하고 저 멀리 보이는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꽃들은 자신에게 소원을 빌라고 유혹하듯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났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악마들은 자신을 이렇게 괴롭히는가?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이라면 냉큼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른다. 부디 형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 대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알고 있는 자신이기에 제 눈 앞에 펼쳐진 악마들을 검으로 베어내었다. 어느새 도착한 저택 앞에서 꽃가루로 물든 제 검을 손수건으로 대충 닦아낸 뒤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은 변한 것이 없었다. 입이 가벼운 하녀들도, 시끄러운 친척이라는 작자들도. 자신을 알아본 집사에게 인사를 한 뒤 형의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등과 복부에 큰 검상을 입었는데, 상처가 큰 것도 있지만, 피를 많이 흘려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형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링거이 꽂힌 잔 흉터가 가득한 팔을 내놓은 채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든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며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상체를 감싼 붕대와 창백한 얼굴.. 내가 형을 이렇게 만들었구나. 조심스레 형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형이 행복해지길 바랐는데. 이렇게 다쳐서 돌아오면 어떡해..응? 돌아오지 않는 대답이 야속해 형의 볼을 꼬집기 위해 손을 올렸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여니 집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을 맞이하였다.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시끄러워?"

“게오르그님이 오셨습니다.”

“건강하기도 하시지. 늙은 너구리”

제 친척 중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이였다. 호시탐탐 가주의 자리를 노리는 자였기에 형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달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녀들 입단속 시키고, 친척이라는 인간들은 당장 다 내쫓아. 당분간 저택에 아무도 들이지 말고, 연합에 당분간 못 간다고 말 좀 전해주겠어?”

집사에게 지시를 내리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침대 앞에 놓고 앉았다. 밖에서 돼지가 멱따며 저항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형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고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일주일이 지났다. 형의 부재로 밀리는 업무는 내가 결제할 수 있는 것들만 일단 미리 처리하였다. 가문에 속한 주치의가 하루에 두세 번 들려 형의 상태를 검사했다. 상처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형은 잠든 채 깨어나지 않았다.

“형.. 이제 일어나주면 안돼?”

감긴 눈과 굳게 다문 입을 손으로 꾸욱 눌러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잠든 형이 들을 리 없다는 사실은 이글 저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주변에서는 이제 놓아주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자신은 형을 놓을 수 없었다. 이렇게 형을 보낼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손톱이 여린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아... 형이 보면 잔소리하겠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랍에서 약을 꺼내 바르고 거즈로 덮어, 치료를 마무리하였다. 치료는 했지만 할 일이 없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료함에 잠이 든 형의 손을 가지고 장난치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형이 긴 잠에서 일어나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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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bugia

2015. 7. 13. 22:58 | Posted by 아뮤엘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네가 날 버리고 멀리 떠나버리는 그런 꿈을. 예전이라면 네가 날 버릴 리 없는데, 그렇지? 하며 웃어넘겼을 일인데... 매몰차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난 너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더러워졌다. 잘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를 많이 사랑했던 모양이다. 감은 눈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문질러 닦지만 쉽게 멎지 않았다. 간신히 눈물을 추스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푹 잠이라도 잘까 싶었는데, 침대 옆 서랍을 뒤적거려 두통약을 꺼내 먹고 몸을 일으켰다. 세찬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커튼을 걷으니 회색빛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비가 내려서 그런가? 눅눅한 공기, 온몸이 끈적거리는 느낌에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전날 장을 봤기에 각종 식재료로 가득 차있었다. 아침은 잘 안 챙기는 편이기에 간단하게 맥주와 구운 빵 한 쪽을 들고 창가에 걸터앉았다. 비가 연주하는 노래는 그 어떤 노래보다도 구슬펐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아프게 만들었을까? 아니, 이 노래는 나를 위한 노래인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던가? 스스로의 모습이 우스웠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접시와 맥주 캔을 정리하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 업무에 치여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이렇게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서재는 기분 좋은 책 냄새를 풍기며 자신을 맞이하였다. 저번에 서점에 갔을 때 새로 산 책을 꺼내어 읽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일에 치여 결국 읽지 못했던 책이었다. 책의 중반부쯤 읽었을까 무엇인가가 책 사이에서 떨어졌다. 책에 껴있던 책갈핀가? 조심스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책갈피 뒷면에는 dear. Dario 라고 익숙한 필체로 적혀있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뒤집으니 나와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보였다.

“...이게 뭐야...”

겨우 다잡았는데. 책 사이에 조심스레 책갈피를 꽂고 책장에 다시 꽂았다. 그리고 서재에서 나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들이 야속해서 그냥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자고 깨고 다시 잠이 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눈만 감으면 네가 떠올라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싱크대에 놓으려는데, 컵이 미끄러지듯 손에서 빠져나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늘 온종일 네 생각이 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구슬프게 우는 비. 깨진 유리컵. 이상했다. 뭔가 이상해. 아닐 거라고 믿으며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어 너의 집에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순간 본가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 일도 없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상대가 받기만을 기다렸다.

“알베르토가 입니다.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습니까?”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로라스를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다리오라고 말하면 그가 알 겁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사용인이 말하기를 꺼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부당했나..? 이런 것에 끝맺음이 확실한 그이기에 예상했던 바이지만.. 다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것에만 답해주세요. 그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울음이었다. 그제야 무엇인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상대를 다그쳤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고. 괜찮냐고. 그녀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리며 어느 장소를 말했다. 전화를 끊고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그녀가 말한 주소로 다급하게 향하였다. 그녀가 말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국립 병원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에게 그의 병실을 물어보았다. 7층에 있는 1인실. 병실 앞에 도착해 조심스레 문을 여니 잠든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강하던 너의 피부는 창백하게 물들고, 많이 아팠는지 살도 많이 빠져있었다. 날 버리고 떠났으면 잘 살아야지... 왜... 병실로 올라오는 길 간호사에게 들었다. 불치병이라고. 치료법도 없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던 거냐?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이 든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에게 기도했다. 그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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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렉로라] attaccamento -完-

2015. 7. 10. 23:14 | Posted by 아뮤엘

“ㅁ..뭐냐 일어나 있었냐?”

“...대답...”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인상을 쓰며 손에 힘을 주어 잡힌 손목이 아려왔다. 이 새끼가 잠에서 덜 깨더니 미쳤나 싶어 억지로 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빼려고 할수록 잡힌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만 늘어날 뿐이었다.

“ㅅ...수련장에 간다..좀 놔라!”

“아아...”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제 침대에 도로 눕는 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게 잠꼬대인가? 조심스레 방에서 빠져나오니 정적만이 가득한 복도가 자신을 반겼다.

“윽...”

아릿한 통증에 잡혔던 손목을 보니 붉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오늘 훈련은 글렀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바로 치료를 해야 빨리 낫고 증상이 악화되지 않을 텐데, 약을 꺼내기 위해선 방에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냥...아프고 말지”

훈련을 하려던 것도 못하게 되었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도중 창가에 비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어둑한 새벽하늘에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별들의 모습에 오랜만에 별이나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옥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옥상의 문은 잠가두지 않는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상쾌한 새벽 공기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털썩-바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어두웠던 하늘 한구석에 작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 붉은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져,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ㄹ...스”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비척거리며 일어나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베르토?”

“일어났는가, 드렉슬러?”

“지금이 몇 시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평소와 같이 손을 딛고 일어서려는데 찌릿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지만, 알베르토가 재빨리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놓아라”

“괜찮나?”

“됐고 몇 시인지만 말해”

“11시 반 정도 되었군. 그건 그렇고 손목은 누가 그랬나?”

꽤나 창피한 모습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을 여성을 하듯 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나 쏘듯 그에게 시간을 물었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걱정하였다. 잠에 취한 녀석에게 손목을 붙잡혀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해봤자 기억을 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아하니 이미 훈련은 끝난 것 같고, 애초에 훈련에는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욱신거리는 손목을 들어 확인하니 그냥 응급처치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뭐 하겠는가? 드렉슬러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얼음 팩을 만들어 찜질하였다. 언제 들어온 건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네놈이 그런 거다 짜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녀석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자신의 팔목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어찌 되었던 그와 앞으로 최소 1년 이상은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서로 불편해야 하는 점은 없어야 하니까라는 생각이었다. 같이 지내면서 지켜야 할 점이라던가, 피했으면 좋겠는 점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그것뿐.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은 불편한 저이기에 먼저 선을 그어놓은 것이었는데...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일 년쯤 지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그와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내 생활을 최대한 배려하며, 내가 연구하는 것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와 충고를 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새벽에 따로 훈련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같이 수련을 하며 서로의 훈련을 돕기도 하였다. 새벽 훈련으로 오전 훈련을 대신하고 그 시간에 연구하는 자신과 달리 오전 훈련까지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그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련을 하면 힘들지 않냐고. 그는 답하였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자신이 강해지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이가 더 늘어나지 않겠냐며 웃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보 같은 놈.. 그 날 이후로 그가 훈련을 끝마치고 오면 음료를 건네주는 것으로 더는 묻지 않았다. 사서 고생하는 놈에게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게 뻔하니까..


그날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연구에 대한 진전이 없어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지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 뒹굴거리다 깜박 잠이 들었는지,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알베르토를 둘러싸고 조잘거리고 있었다. 알베르토 놈은 다른 기사들에게 모범이 되었기에 때문에 자신과 달리 다른 놈들에게 인기가 많아 붙잡혀 수련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보아하니 오늘은 숙소 앞에서 붙잡혀 예찬론을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가져와 그 모습을 구경하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정도를 넘어 섰달까. 한 놈은 알베르토 놈에게 달라붙질 않나, 다른 한 놈은 알베르토의 사생활까지 캐내려 하지 않나, 그 외 다른 놈들도 엇비슷했기에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없이 음료나 홀짝이며 지켜보고 있는데, 한 놈이 알베르토 놈의 팔을 꼬옥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기분이 나빠져 창가를 벗어나려는 순간 알베르토 놈과 눈이 마주쳤다. 도와주게나. 새내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 모양으로만 뻐끔이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싫은데? 제 입 모양을 읽은 것인지 작게 한숨을 쉬며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네. 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아라고 대답을 한 뒤, 들고 있던 음료를 내려놓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그를 불렀다.

“야, 알베르토! 너희 가문에서 편지가 왔는데 급해 보이더라?”

 제 목소리가 들렸는지, 놈에게 붙었던 놈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였다. 알베르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째려보는 새내기들에게 비웃어주며 창가를 벗어났다. 알베르토는 지친 기색으로 방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포옹를 하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는 내꺼야 애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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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벨져] curiosità

2015. 7. 9. 23:52 | Posted by 아뮤엘

주변 사람들은 자신을 미쳤다고 말했다. 미치다: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라고 사전에 정의되어있다. 나는 내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툴렀을 뿐이다.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었다. 평일에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꿀 같은지.. 주말에도 쉬긴 쉬지만, 보통 불려 나가 일을 할 때가 더 많아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이 날이 좋았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다 일어나 식재료를 사기 위해 간단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마트에 들려 식재료를 산 다음, 마지막으로 베이커리에 들리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 자주 가던 베이커리로 향하는 길, 내 사랑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가방을 메고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결 좋은 은빛 머리카락이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리고, 맑은 바다를 빼닮은 눈동자가 제 쪽을 향하였다.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벗어나 원래 목적이었던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 먹을 토스트용 식빵을 사고, 도넛과 다른 빵도 몇 개 더 담은 뒤 계산을 하였다. 빵을 사서 그런지 늘어난 짐을 나누어 담아 두 손에 들고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기라면 아무도 보지 않겠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집으로 이동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골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내 능력이 들키기 전에. 제 몸이 흐릿해지더니 곧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다행히 들키진 않은 것 같군”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만은 피하고 있었기에 목격자가 누구인지 신경이 쓰였다. 들켰으려나? 자신이 능력자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진 않겠지... 애초에 제가 누군지 모를 텐데 어찌 신고하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사온 식재료를 정리하였다.


지긋지긋한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미 배운 것들은 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다시 들어야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라 법에 따라 일정 연령대의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오늘따라 잔소리가 많았던 담임이라는 작자를 속으로 욕하며 집을 향하여 걷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짙은 갈색 머리의 남자가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외출하거나 하교를 할 때 먼 곳에서 저를 관찰하듯 바라보던 남자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몰랐을 테지만, 자신은 달랐다. 누군가가 자신을 뜨겁게 쳐다보는 시선쯤은 느낄 수 있었다. 제 평범한 회사원 같아 보이던데..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는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호오?”

여태까지 모르는 척 넘어갔지만 궁금했다. 그가 자신을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남자는 어떤 목적을 가진 것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몰래 남자의 뒤를 쫓았다. 식재료를 사러 나온 모양이었는지 두 손 가득 식재료를 들고 그대로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자신이 미행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빵을 고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그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들킬 위험이 있기에 좀 떨어진 장소로 가 그가 베이커리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나왔다. 양손 가득 짐을 든 남자는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나? 것보다 저 골목은... 막다른 골목 일 텐데.. 실수로 들어갔겠지 하는 마음에 남자가 골목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골목 근처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골목에 들어가니 바닥에는 이상한 진이 그려져 있고, 남자는 그 위에 서서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조금씩 투명해지는 남자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껴 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남자는 사라지고 바닥에 생겼던 진도 동시에 사라졌다.

“흐음.. 이거 놀랍군.”

공간 능력자..인가? 언젠가 들었던 현재 밝혀진 능력들을 생각했을 때, 그의 능력은 공간이동능력 같았다. 공간이동능력을 가진 이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이거 흥미롭군.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한동안은 지루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벨져는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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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Karma -1-

2015. 7. 7. 23:02 | Posted by 아뮤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작은 여인네였다.

조용히, 어느 날은 조금은 소란스럽게 흐르는 맑은 강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도착하는 곳.

뒤로는 숲과 산이 보이는 이 작은 동네가 꿈속의 내가 사는 곳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소박하고 정이 가득한 곳이라 이곳의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마을에서 조금 들어가 강가 쪽으로 걷다 보면 보이는 작은 집이 제가 살던 집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하는 님이 잘 다녀왔냐고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나는 그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도인가?”식은 땀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침대 시트에서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니 오전 7시였다. 아아..늦었네 작게 욕설을 지껄이며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선다. 식당에 도착하니 형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또 그 꿈 때문인가?”

딱딱하지만 말투지만,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는 작은 형에게 괜찮다고 대답하고 자리에 앉으니 침묵을 지키던 큰형이 말을 건네왔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던데”

“아앙? 그럴 리가. 충분히 쉬고 있다구~”

“그런 것치고는 안색이 안 좋다만?”

무리하지 말라며 머리를 쓰다듬는 큰형의 손길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셋이서 같이하는 아침 식사가 끝난 후, 큰 형은 일을 업무처리를 위해 회사로 출근하였고, 작은 형은 따로 일이 있다며 외출을 하였다. 원래 자신도 연무장으로 가 가문 소속 기사들과 훈련에 해야 했지만, 요 며칠간 의미 모를 꿈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걸 안 형들이 배려를 해주어, 방에서 몸이 굳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쉬고 있었다.

“도대체 내게 뭘 보여주고 싶은 거지?”

차라리 누군가 죽고, 자신을 위협하는 그런 류의 꿈이라면 아, 악몽을 꾸었구나 하고 넘겼겠지만, 악몽이라고 보기에는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라, 마치 자신이 그 꿈속의 여인네가 된 느낌....

“....에이 설마”

꿈 내용은 별것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자신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다. 피곤한 건 둘째 치고, 자신이 그 여인네가 되어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공유...아니 동화되어가는 느낌이 무척이나 싫었다. 자신은 꿈속의 여인네가 아닌 이글 홀든이라는 홀든 가의 삼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꿈에 휘둘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트를 갈았지만, 찝찝한 느낌에 소파에 기대듯 누워 작은 형이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을 읽었다. 전쟁과 그 속에서 절망과 슬픔을 느끼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린 책이었다. 참으로 어리석다. 제 욕심을 위해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왕과 귀족들, 그런 그들에게 힘없이 저항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휘둘리다 죽어가는 그들의 삶이.누군가가 정해준 운명에 휘둘려 산다는 것이..

“...아아...시시하네 진짜”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씁쓸함이었다. 저항하면 할수록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덮었던 책을 펼쳐 가장 앞에 있는 머리말을 다시 읽어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책임인가?”

책임이라는 단어는 자신에게 무거운 짐과 같았다. 자신을 얽매는 족쇄이기도 했고.

“아아...귀찮아. 그냥 잠이나 잘까?”

다 읽은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편히 누웠다. 그대로 눈을 감자 졸음이 몰려왔다. 피곤했다. 그냥 푹 자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빨리 말하고 꺼지라고...이렇게 애꿎은 사람을 불러다 괴롭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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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insònnia

2015. 7. 5. 00:21 | Posted by 아뮤엘

- 불면증


밝게 빛나는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네가 생각났다.

“슬슬 돌아가야겠군”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맘때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너를 위해 쌓여있는 서적들을 정리하고 서재를 나섰다. 혹시나 싶어 너의 방으로 가봤지만 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옥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누워있는 너의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왔냐?”

“아아..여기 있었나?”

“뭘 몰랐다는 듯이 말해. 알고 왔잖아”

피식-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옆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구경했다.

“....괜찮나?”

“뭐가?”

“슬슬 그 시기잖나”

“아...아아..뭐...”

평소 같았으면 신랄하게 되받아쳤을 그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몸을 일으켜 머리를 쓰다듬었다.

“ㅁ...뭐냐?”

“눈 밑에 그림자가 졌네. 중국에 팬더?라는 생물의 눈 주변이 검다던데. 지금 자네의 모습이 딱 그 꼴이군”

“야 이 씨ㅂ...”

“쉿 조용히. 다른 이들이 깨잖나”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자 버둥거리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밤이 늦었네. 가서 자는 게 어떨까?”

“여기서 하늘을 보는 게 더 좋아. 잠은... 뭐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씁쓸하게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을 테니”

“야, 알!!”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잠을 다 깨울 생각인가, 자네?”

뒷말을 생략하고 조심스레 그를 안아 들자 버둥거리며 큰소리치는 렉스의 모습에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그제야 얌전해졌다. 토라진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입을 살짝 맞추었지만..(동시에 주먹으로 자신의 명치를 때려 조금 위험했다.) 


계단을 내려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그의 방이 설명해주었다. 이것저것 적힌 노트들과 널브러진 책들, 어질러진 이불과 책상 위에 놓인 수면유도제들.. 약은 차마 먹지는 못했는지 봉지가 꾸깃꾸깃해진 채 놓여만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고, 그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약까지 받아왔었나?”

“...먹지는 않았다.”

등 돌리고 누운 그의 모습에 침대에 걸터앉아 결 좋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자게나.. 내일 이야기하지”

“......”

그가 잘 때까지 곁에 앉아 토닥거려주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든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방을 정리하였다. 어차피 그가 일어날 때까지 방을 벗어날 수 없기에 시간을 보낼 겸 시작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의 방에서 벗어나는 순간 잠에서 깨는 그의 모습에 그가 푹 잘 수 있도록 그의 곁에 있는 것이었다. 그가 깰 때까지 할 일도 없고, 그의 방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낸 지도 벌써 5년째. 5년 동안 이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시기에 그가 잠이 들면, 자신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러한 증상을 가지게 된 처음 2년 동안은 그의 불면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일주일 이상 잠을 못 자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그와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 조절하고 마셨기에 둘 다 취할 일은 없었지만, 그날은 평소 즐겨 먹던 술의 내용물을 바꿔 그가 취하게끔 하였다. 술에 취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가 왜 잠을 못 잤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임무에 나갔다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향한 임무였다. 임무는 성공했지만, 자신을 제외한 전원 전멸..임무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기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임무를 보고하고 쓰러져 바로 병원에 실려 가 대수술에 들어갔다. 상처가 큰 것도 문제였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에 취한 그가 말했었다. 두려웠다고 말했다. 내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고 울먹이며 자신을 두고 가지 말아 달라고 안겨오는 그의 모습에 자신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구나, 내가 그에게 이렇게 큰 존재가 되어있었구나. 조심스레 울다 잠이 든 그를 눕히고 옆에 앉아 그에게 다짐하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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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il crìmine (9)

2015. 7. 3. 23:35 | Posted by 아뮤엘

"아찌 괜차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조심스레 볼을 쓰다듬는다.

"아아..괜찮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번의 시도 끝에 일어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카페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형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잘 참았어, 이글 홀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이와 자주 들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와 자주 오다 보니 점원이 알아보고 웃는 얼굴로 반겼다. 꼬맹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하고 서비스로 받은 음료를 마시고 있자니 아이가 뚱한 얼굴로 쳐다봤다.

"꼬맹이 무슨 일 있냐?"

"엘리도 아찌꺼 먹고 시퍼!"

"이거? 꼬맹이가 마시기에 좀 그럴 텐데"

탄산이 들어있어 고민하는 사이 아이의 볼은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아아.. 줄 테니까 볼의 바람은 빼는 게 어때, 아가씨?"

잘 정렬되어있는 물컵에 음료를 조금 따라 건네자 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음료를 마신다.

"맛없쪄!!"

음료를 뱉어내는 아이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우유를 건네주었다. 우유를 맛있게 마시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며 세팅해주었다. 어린이 세트라 그런가? 햄버그 위에 꽂힌 깃발을 보며 자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몫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까?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았다.


입 주변에 소스를 묻힌 채 먹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제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먹어라"

냅킨으로 아이의 입 주변을 닦아주자 나름대로 교양 있게 먹는다고 허리를 펴고 뻣뻣한 자세로 먹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그건 또 누구한테 배웠어?""틀비언냐가 일케 먹어야 어른이래쪄!"

'애한테 별걸 다 가르치네'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아이가 다 먹은 걸 확인하고 일어나 계산을 하고 연합으로 돌아가는 길, 과자가게에 들려 아이에게 과자를 안겨 주었다. 다행히 화난 건 풀렸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는 아이의 모습에 흐뭇하였다. 연합에 도착해 나이오비에게 아이를 맡기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커튼까지 치고 정장을 벗었다.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피곤하네"

목욕을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물을 채웠다. 욕조에 따뜻한 물이 어느 정도 찬 걸 확인한 뒤, 라벤더가 첨가된 입욕제를 풀고 욕조에 들어갔다. 은은한 라벤더 향에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수척해 보이던 형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일까? 무엇 때문에?

자신이 집을 나와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형이 수척해졌다는 것에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자신의 존재가 형에게 아직 크다는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안돼..."

형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온 게 아니었다. 행복하게, 형만의 삶을 살길 바라며 제 마음을 접고 나온 것이었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물속에 얼굴을 반쯤 담그고 생각에 잠겼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 따뜻했던 물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욕조에서 일어나자 차가운 공기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춥다.. 따뜻한 물을 틀어 가볍게 샤워를 한 뒤, 물기를 닦고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에 있었을 때는, 자신이 이러고 있으면 형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와서 깨우곤 했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일들을 떠올랐다. 그리워해선 안 된다. 이젠 혼자 이겨가야 할 것들이니까. 형의 얼굴을 가까이서 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수척해진 형의 모습을 확인해서 그런 것인지 오늘따라 감정조절이 되지 않았다. 후회되었다. 그냥 내 욕심, 내 마음 다 외면하고 억누르면서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걸... 모르는 척, 집무실에서 일하다 잠든 형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형이 힘들어하는 날이면 같이 술을 마시고 그러다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그저 속으로 앓게 되겠지만, 그래도 형이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울지 않기 위해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다. 시간이...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들도 사그라질 것인데.. 왜 이리 잊는 것이 힘들까. 베개를 끌어안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마땅한 답 없는 감정들에, 혼자서 앓아봤자 상처만 입고 마니까..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어서인지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짜증이 났다. 겨우 몸을 일으켜 가운을 입고 문을 열자 다급한 표정을 한 토마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급한 임무는 사양이라구~"

"형,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꼬마 아가씨가 문제라도 일으켰어?"

"다이무스씨가 임무 중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당해 입원 하셨다구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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