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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벨져] guilt - 下

2015. 10. 6. 03:21 | Posted by 아뮤엘

얼마나 달렸을까? 기차를 타고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실 자신이 가려는 곳은 이 역에서도 차를 타고 한~두 시간은 더 가야 있는 장소였다. 짐을 들고 역 앞 광장에서 마차를 탔다. 멍하니 창문을 열고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항상 긴장을 놓을 새 없이 싸우고 죽이는 생활의 연속이었기에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로운 일상이 오히려 어색했다. 푸르름을 뽐내는 나무들 사이로 새파란 바다가 보였다.

아아, 벌써 도착인가? 마차가 멈추고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마부에게 고맙다고 팁까지 쥐여주고 일단 묵을 장소부터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행객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장소는 아니었는지, 마을에 여관이 있었다. 여관에 들어가 방을 얻어 짐을 내려놓은 뒤, 바닷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의 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쏴아아- 소리를 내며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도시를 떠나 바다로 왔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평소 입던 정장 대신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반소매에 반바지, 거기다 바닷가에 나간다고 하니 여관 주인이 신으라고 건네준 슬리퍼까지. 완전 피서객의 모습이었다. 모래사장을 걸을 때마다 신발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의 촉감이 좋아 결국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찬 바닷바람과 달리 따뜻한 모래. 마음이 차분해졌다. 길게 늘어진 해변가를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절벽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꽤 많이 걸어온 것 같았다. 해가 저물기까지 그리 머지않아 슬슬 되돌아가야 하지만, 절벽까지 멀어 보이지 않아 절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에서의 짧은 휴식이 끝나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곳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천천히 생각을 되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을 거리라는 걸 잘 알기에 더더욱 지금 이 시간이 소중했다.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하아...”
냄샌가... 또 분쟁이... 지긋지긋하군.
“또 어느 조직ㅇ....”
자연스럽게
뒤돌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뜨니 매우 평화로운 석양이 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자신이 휴가를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피 냄새는 어디서…? 희미한 냄새를 따라간 곳은 절벽 아래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한 곳이었다. 파도와 바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제각각의 모양을 지닌 바위 사이로 새하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꽤 검은색의 고급 진 재질의 옷, 그리고 붉은 피가 새어 나오는 몸을 뒤집었다. 새하얗게 질려서 그렇지 꽤나 미형이었기에 여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 남자가 쥐고 있던 검을 손에서 빼내었다. 이도류인가? 검을 남자의 허리에 달린 검집에 넣고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맞닿은 피부로 느껴지는 상대방의 체온은 상당히 내려간 상태였고 복부에 입은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상태였다. 상처가 그리 깊은 편은 아니었으나, 상태를 보아하니 상처를 입고 방치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쳐갔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서둘러야겠군
입고 있던 셔츠를 찢어 상처 부위를 감아 조심스레 안아 들고 마을을 향해 달렸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마을에 있는 의원으로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를 치료한 의사는 출혈량이 많고, 체온이 낮아진 상태라 쇼크 현상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수혈도 잘되었고, 상처도 잘 봉합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에게 감사하다고 작게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평소라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왜일까? 조금씩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파랗게 질려있던 입술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새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 여인네들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바르는 붉은 립스틱이 그려내는 것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아름답다. 이 감은 눈 속에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남자가 그려내는 음은 어떠할까?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왜 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손길을 느낀 것인지 작게 뒤척이는 남자의 행동에 살짝 손을 떼어내었다.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 이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남자가 쥐고 있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손이 모자라 검을 그냥 검집에 넣었지만, 그리 내버려두면 검이 상할 게 뻔하였다. 남자가 일어날 때까지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의사에게 부탁하여 천을 얻어왔다. 얼핏 봤었지만, 전투한 모양인지 검에는 바닷물에 어느 정도 닦이긴 했지만, 피가 묻어 있었다. 두 검을 닦아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러있었다. 검을 검집에 넣어 탁자 위에 다시 올려놓으려는데 빛에 반사된 검집에 새겨진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Belzer Holden

“벨..져..인가?”

“...ㅇ.....”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이 잠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인지 작게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줄곧 감겨있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자신을 올곧게 쳐다보는 아이스 블루색의 눈동자. 아아, 빨라지는 심박수를 느끼며 언젠가 피에르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것이 저리 호들갑 떨 정도로 좋은 건가?’

‘리키, 너도 언젠가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알게 되겠지. 누군가를 바라만 봐도 설레고,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나는 감정을’

아아,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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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contrattacco

2015. 10. 4. 00:17 | Posted by 아뮤엘

보기 좋게 잘 정돈된 결 좋은 고동색 머리카락. 푸른 하늘을 닮은 듯 맑고 깨끗한 푸른 눈. 굳게 닫힌 붉은 입술. 지나치게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너. 스스로의 욕망을 억누른 채, 모범적인 기사의 모습을 삶을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따금 장난을 치게 된다. 성인 잡지를 실수인 척 너의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거나, 오늘처럼 맛없는 기숙사 내 식당의 밥 대신 숙소에서 밥을 만들어 먹을 때, 마주 앉은 너의 중심을 발로 슬쩍 누른다던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는 너의 모습에 다리가 저려서 그랬는데, 혹시 내가 실수했냐고 물어보면 너는 입술을 꾸욱 다문 채 괜찮다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식사를 마저 하였다. 귀까지 붉게 물든 걸 보아 하니, 식사 후 먼저 샤워를 하겠다며 넌 욕실로 들어가겠지. 천천히 토스트를 입에 넣었다. 바삭거리는 식감이 좋았지만, 딱딱한 식감에 목이 아팠. 어쩔 수 없나?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았지만, 따로 차를 타오려니 막 일어난 탓에 나른해 움직이기가 싫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 마시진 않았을 것이 뻔했다. 팔을 뻗어 로라스의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로라스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내뻗다 이내 작게 한숨을 쉬고 제 몫의 토스트를 마저 먹더니 먼저 씻겠다며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그렇지. 제 예상대로 행동 하 그를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왔다. 그와 함께 지낸 지도 벌써 5년. 고된 임무로 인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이들을 보면 그와 알고 지낸 지도 오래 되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자신의 성격을 알고도 같이 지내는 걸 보면 그도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쏴아아-하는 소리. 남은 토스트를 입에 털어 넣고 식기를 싱크대에 놓은 뒤 욕실 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살짝 문에 귀를 대고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밖을 의식하듯 작게 억눌린 신음이 끊겨 들리다 이내 작게 숨을 내쉬는 소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럼 그렇지. 문에서 귀를 떼고 조심스레 문에 기대었다. 이 짓도 벌써 몇 번짼지. 다른 사람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금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너의 모습을 보자면 속이 뒤틀렸다. 그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네놈도 사람인데, 자신은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욕망을 꾹꾹 누르는 네 모습이 싫었으니까. 내 입맛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 비교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시험하고 있는 거야, 알. 기약 없는 시험을 작한 지도 벌써 3년. 솔직히 2년째 되던 날, 이제 그만할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오기로 하는 것인데....

“.....그만둘까
반응이야 재밌긴 하지만, 슬슬 질리기도 하고.
시험을 잘 치른 학생에게 주는 상은 없는 건가?”
멍하니 고민을 하고 있는데 더운 열기가 제 몸을 감싸왔다. 이크 늦었다라는 생각에 황급히 몸을 일으켜 봤지만, 뒤에서 끌어안아 도망도 치지 못한 채 그대로 잡혀버렸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ㅇ..알고..있었냐?”
으음.. 그렇게 대놓고 하는데 못 알아차리면 그게 바보가 아닐까 싶네만?”
ㅇ...언제부ㅌ...”
“뒷이야기는
나중에. 나는 상이 받고 싶거든.
생긋 웃는 얼굴로 자신을 안아 들어 침대로 향하는 로라스의 행동에 저항을 해봤지만, 귀를 깨물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압도당해 버렸다.
야..잠시만 알..야???”
“쉿.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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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너와 이어지다.

2015. 9. 3. 23:27 | Posted by 아뮤엘

지쳐있던 나에게 너라는 존재는 구원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알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내 배경을 보고 접근하였다.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던 부모님마저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나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다가와 준 네가 얼마나 고맙던지. 너는 모르겠지. 내 잘못에 대해 꾸짖으면서도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주는 너의 모습에 내가 바라던 사람이 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 너에게 집착을 하게 되었다. 네가 내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이,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피했다. 보기 싫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널 가둘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 15살의 나는 20살의 성인이 되었다. 가문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제명하였다. 머물 곳이 없어져 안 되었다며 비웃음에 가득 찬 위로를 날리는 이들을 무시하고 제 방으로 들어왔다. 가문? 가문은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기사단에서 생활했고 그가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으니까. 그저 그만 자신의 곁에 있었으면 좋았으니까. 자신이 가문에서 제명되었다는 소문에 여기저기서 자신을 괴롭혔다. 밖으로 나가면 자신에게 몰려드는 인파에 지쳐 방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지 않아, 연구 노트를 꺼내 아이디어를 정리해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였다. 소문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밖으로 나가지 않은지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밥이야 연구를 할 때는 간단하게 먹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차와 빵, 과자 따위로 배를 채웠으니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새로 만든 발명품의 완성이 막바지에 이르었을 무렵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어느 미친놈이 방까지 찾아왔나 싶어 무시하려 했지만, 뒤이어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렉스, 안에 있는가?"

"....알?"

잠금 장치를 풀고 문을 여니 자신을 껴안는 알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자신을 꽉 껴안은 채 놓지 않는 녀석의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내가 임무를 수행하러 다녀온 사이 가문에서 제명되었다고 들었네. 괜찮나?"

"아? 뭐.. 딱히 가문에 대해 그리 애착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괜찮으니까 걱정 마. 그건 그렇고 너야말로 임무는 잘 다녀왔냐?"

"아아.그리 위험한 임무는 아니었으니까"

소파에 앉는 녀석에게 차를 내어주고 맞은편에 앉는 데 불편한 듯, 한쪽 다리를 뻗는 알의 모습이 수상하여 실수인 척 발로 지그시 눌렀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알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새꺄 다쳤냐?"

"크음.. ㅋ..큰 부상은 아니니 걱정 말게"

"이번 임무는 안 위험하다며, 상처까지 입고. 거짓말 한 거냐?"

감추듯 다리를 살짝 빼는 녀석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몸을 일으켜 녀석의 다친 쪽의 다리를 잡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걷어 올린 바지 안에는 피가 배어 나왔는지 군데군데 붉게 물든 붕대가 보였다.

"야... 이거 뭔데?"

"...임무와는 관계없는 상처이니 걱정 말게"

"하아... 기다려봐. 보아하니 붕대만 감고 온 거 같은데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냐"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낸 뒤, 욕실에 들려 젖은 수건을 들고 앉았다. 조심스레 붕대를 풀자 어디에 쓸린 듯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바닥에 넘어져 쓸린 듯한.....

"...야.. 알"

"........"

"너 넘어졌냐?"

"......."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알의 모습에 제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천하의 알베르토가 바닥에 자빠져 상처를 입다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상처를 치료하자 알은 부끄러운지 크음하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회피하였다. 상처를 치료하고 붉게 물든 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야"

"......."

"누가 발 걸었냐?"

"그럴 리가! 오는 길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 그랬던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알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신에게 숨기는 거지? 혹시 마음에 든 여인을 구하다 넘어진 건가? 최근 선물에 대해서 묻더니... 정말 마음에 든 여인이라도 생긴 건가?

"야.. 치료 다 끝났으니까 슬슬 나가봐라"

"...렉스, 화났나?"

"내가 왜?"

자신이 생각해도 싸늘한 말투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좋아하는 여인이 생긴 알은 언젠간 자신을 떠날 게 분명했으니까. 자신은 그 모습을 지켜볼 만큼 착한 성격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참고 책상에 앉았다. 들어오지 않는 내용의 연구 자료를 끄적이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렉스"

"..왜..."

"렉스, 왜 화가 났는지 말해주지 않겠나?"

"화 안 났으니까, 빨리 가라"

"거짓말은 좋지 않네. 응?"

".........."

"하아... 좀 더 분위기를 잡고 주려고 했건만"

"....엉?"

제 등 뒤로 느껴지던 따뜻한 감촉이 사라지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로라스는 작은 상자를 들고 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내 상자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내더니 제 왼손 약지에 끼웠다. 설마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확인하니 푸른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가 제 존재를 뽐내듯 빛나고 있었다.

"..야...알 이거..."

"자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엉? 오늘이..."

책상 위 달력을 들어 오늘의 날짜를 확인하였다. 분명...

"9월...3일이라.. 아.. 내 생일?"

"...역시 몰랐던 건가"

"새꺄.. 생일 선물이라도 그렇지 이게 뭐냐?"

작게 한숨을 쉬는 알의 모습에 괜스레 부끄러워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생일에 반지라니. 단순하다고 해도 끼고 다니기에는 좀.. 그래도 준 녀석의 성의가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고 서랍에 넣기 위해 반지를 빼내려는데 따뜻한 손이 그것을 저지하였다.

"주자마자 빼는 게 어딨나. 그리고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아니 끼고 다니기에는 좀..."

"사랑하네, 드렉슬러. 내 감정을 허락해 주겠나?"

조심스럽게 제 손에 입을 맞추며 자신에게 제 사랑의 허락을 구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뭐..? 알베르토가 누굴 사랑해? 날?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잡히지 않은 손으로 제 볼을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정말, 그가 날 사랑한다고?

"야... 장난 아니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진심이네"

"...새꺄... 그런 건 눈치를 주고 말해야지.. 시발. 새꺄 너 비겁해"

붉게 물든 얼굴이 그에게 들킬까 봐 겁이나 책상 위에 있던 공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자신의 행동이 우스운 듯 작게 킥킥거리며 자신을 껴안았다.

"그럼 대답은 긍정으로 알아듣겠네. Mi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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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벨져] guilt - 上

2015. 8. 31. 02:00 | Posted by 아뮤엘

해변 립스틱 바레벨져

내게 주어진 환경들은 나를 지치게 하였다.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곳에서 살기 위해,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자신이 강해질수록 제 손에 묻는 피의 양도 늘어났다. 제 몸을 떠나지 않는 이 역겨운 냄새가 싫었다. 살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타인을 죽이는 제 모습도 역겨웠다.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보스에게 가 처음으로 휴가를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이 놀라웠는지 보스는 제 예상보다 넉넉한 기간의 휴가와 휴가비를 챙겨주었다.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보스는 계속 거절하는 것도 실례라며 제 손에 돈 봉투를 쥐여주고 집무실에서 쫓아 내었다. 어딜 갈까? 휴가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막살 갈 곳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휴가 요청이 거절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딱히 생각하지 않은 탓이 컸다. 일단 집으로 가볼까. 여행을 떠나려면 짐도 챙겨야 했으니, 집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오는 길,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집 근처 마켓에 들렸다. 당장 내일 떠난다고 해도 오늘 저녁과 아침은 먹어야 했기에 빵과 햄, 약간의 과일을 샀다.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최소한의 가구만 놓인 방이 눈에 들어왔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집에 있는 일이 드물어 집에 오더라도 잠만 자고 나가는 일이 많았다. 새삼 집 안의 풍경이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꾸밀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리 불편하지도 않았기에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 물을 틀고 가만히 서서 흐르는 물을 맞고 서 있었다. 한참을 그리 서 있다 눈을 떴다. 투명한 물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제 몸을 적시고 있었다. 구역질이 나는 것을 억지로 삼키고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투명한 물이 제 몸을 적시고 있었다. 어질 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욕실에서 나왔다. 뚝뚝 떨어지는 물을 수건으로 대충 닦아내고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일까? 눈을 뜨니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벌써 아침인가? 어기적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어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서 그런지 출출했다. 햄과 과일을 썰어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샤워까지 하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 되었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어딜 갈까 고민하였다.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집에서 휴가 내내 쉴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딱 여기다 싶은 곳이 없었다. 아, 머리 아프다. 뭐라도 보면 괜찮은 생각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TV를 켰다. 새하얗게 분을 칠하고 립스틱으로 붉게 입술을 칠한 여인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다. 아름답다고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에 도대체 어디가 아름답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채널을 돌려도 나오는 것은 엇비슷했다. 싸구려 코미디, 여인들의 로망을 담은 드라마. 몇 번을 돌렸을까? 지친다. TV를 끌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돌려보고 꺼야 한다는 마음으로 돌린 채널에는 한적한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해변이라 사람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해변이 있던가? 계절이 계절인 만큼 사람이 많을 텐데. 고민하다 내가 선택한 곳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 곳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사람들은 가지 않게 되니까. 근처에 작은 마을이 있는 해변으로 여행지를 정하고 짐을 챙겼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기에 적은 수의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을 챙겨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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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pentimento

2015. 8. 30. 00:44 | Posted by 아뮤엘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코 위를 가리는 검은색 반가면을 쓰고 집을 나섰다. 싸울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전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고, 무거운 갑옷 대신에 정장을 입는 일이 많아졌다. 제 얼굴을 가려주던 투구를 정장 위에 쓰기에는 너무 언밸런스하다며, 드렉슬러가 늦었지만, 생일 선물 겸 주는 거라며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투구와 달리 가벼운 감촉에 혹시 벗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직접 벗지 않는 이상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 투구가 아닌 가면을 쓰고 회사에 나간 날, 모두가 자신의 가면을 극찬하였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마치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에 어디서 샀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어찌 답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살짝 그가 있는 장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짝 가렸다 다시 서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지인에게 선물을 받았기에 어디서 구해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며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딱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양심에 찔리진 않았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그와 연인관계로 지내면서 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었던 것 같다. 서로 바쁜 것도 있고, 기념일을 챙기는 성격도 아니다 보니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먹는 정도로 끝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답례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바쁜 업무에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최근 자신과의 만남을 꺼리듯 자신을 피해 다니는 드렉슬러의 행동도 한몫을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당장 오늘이라도 회사에 양해를 구해 일찍 업무를 끝내고, 그에게 줄 선물을 찾으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로 가는 길,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이내 굵어졌다. 거세게 내리는 비에 잠시 근처 상점에 들렸다. 금방 그칠 거라 생각한 비는 제 예상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고 내렸다. 검은색 우산을 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내리는 빗소리가 구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겨우 도착한 회사는 입구에서부터 소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속 울음이 섞인 목소리도 드문드문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니 울고 있는 아이들과 조노비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홀든이 제 손을 잡고 따라와 달라며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끌려 자신이 향한 곳은 이사실이었다.여기는 왜? 그에게 의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조용히 문을 열어주며 눈짓으로 안을 가리켰다. 그가 자신을 속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작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사실로 들어가니 수척해 보이는 크루그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자 그제서야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자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왔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회사 분위기가 이러냐고 묻자 그는 말없이 작은 상자를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조심스레 상자를 여니 상자 안에는 팔이 들어있었다. 그래 자신이 잘 아는 팔이 상자 안에 붉게 물든 채 들어있었다. 새파랗던 제복은 피에 젖어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있었고, 그가 자랑하던 창은 무엇인가에 절단된 듯 일부만이 남겨져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만을 빌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크루그먼에게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금고로 다가가 열더니 쪽지와 작은 열쇠를 꺼내 자신에게 전해주었다. 멍하니 제 손에 놓인 것들을 보고 있자니, 다리오가 죽었을 때 자신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한 것이라며 자신은 분명 전해줬다고 말하며 등을 돌렸다. 유품...인가? 그에게 더 묻고 싶었지만, 잘게 떨리는 그의 뒷모습에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쪽지에 적힌 곳을 향해 달렸다.


쪽지에 적힌 곳은 자신도 잘 아는 곳이었다. 자신도 자주 가는 곳이었으니까. 세찬 비를 뚫고 도착한 곳은 제가 사랑하는 이의 보금자리였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피 냄새가 제 후각을 자극하였다. 피비린내를 따라 자신이 도착한 곳은 안방이었다. 새하얗던 시트는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곳곳에 튀긴 피와 부서진 물건들만으로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쪽지에 적힌 곳은 이 안방 침대 바닥이었다. 침대를 옆으로 미니 작은 문이 보였다. 핏자국으로 범벅된 문고리를 보아하니 그가 이곳으로 도망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급한 마음 때문일까 자꾸 엇나가는 열쇠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열쇠로 문을 열었다. 문을 여니 사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사다리에 다리를 걸치고 아래를 향해 내려갔다. 다 내려가니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어두웠던 시야가 갑작스레 밝아졌다. 급격한 변화에 눈을 감고 적응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조심스레 눈을 뜨니 제 눈에 들어온 것은 평온한 듯 눈을 감고 잠이 든 제 연인의 모습과 각종 가면과 창이 나열되어있는 방이었다. 정갈하게 입고 다니던 제복은 칼에 베인 듯 다 헤져 있었다.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생채기가 생긴 얼굴을 만졌다. 차갑게 식은 그의 얼굴은 그가 더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입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고 자신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덮어주었다. 그를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안아 드는데 무엇인가가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몸을 낮춰 떨어진 것을 주웠다. 유일하게 붉게 물들지 않은 종이를 펼치니 종이에는 참으로 그다운 글이 적혀있었다.


[되도록 직접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잘 지내라.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네가 살아 있는 것이 더 큰 선물이었을 텐데 그에게 받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이렇게 떠나 보내야 하는 현실에 참고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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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28. 02:13 | Posted by 아뮤엘

방을 나서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너무 방에만 있었나? 추욱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뭐라도 걸쳐야겠다는 생각에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붉은색 가디건을 꺼내 걸치고 방을 나섰다. 저택을 나서는 길에 집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되도록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난감한 미소를 짓자 비밀로 할 테니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어딜 가는지 말해달라는 집사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집사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리는 없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잠시 마을에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작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나온 저택 밖의 풍경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제 기억 속 마지막으로 나왔을 때, 얇은 옷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긴소매의 약간 두툼한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푸르던 나무들도 화려한 옷으로 하나둘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마을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대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표정을 보아하니 웃으며 무언가를 호응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사람들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자 광대가 보였다. 아아, 그런 거였나?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다시 사람들을 헤집고 나와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강가에 도착하게 되었다. 따뜻하게 입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강가라 그런가. 약간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적한 강가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강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택을 나설 때만 해도 저 높게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저물어 어느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 이들이 떠올라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저택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사가 자신을 맞이해주었다. 집사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괜찮다며 저녁은 어찌하겠냐고 물었다. 보아하니 형들은 아직 제가 나갔다 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요즘 큰형과 작은형이 바빠 아침 식사만 같이하는 것이 컸겠지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집사에게 돌아오는 길, 외출할 때 자주 들리는 베이커리에서 사온 빵을 보여주었다. 많이도 사 왔다며 혼자 먹을 수 있겠냐고 넉살 웃음을 짓는 집사에게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고 집사가 좋아하는 빵을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히 집사는 괜찮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뒤에서 허허하고 웃는 소리만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아 사온 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맛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더 맛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제 몸은 벌써 지쳤는지 피로했다. 방에서 제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저택에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외출해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악몽을 핑계로 몸까지 나태해지는 것은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연무장에 나가야지.”

점심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빵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물며 훈련할 것들을 생각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에 외출을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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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bifurcación

2015. 8. 23. 01:24 | Posted by 아뮤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나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오늘은 무엇을 할지.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 선택한다. 무엇이 나를 이리 만들었나 생각해보니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네가 있었다. 그래 너와 만나고 나서부터 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드렉슬러 아저씨!” 
아앙? 무슨 일이냐” 
고된 서류 업무로 혹사당한 허리를 스트레칭으로 풀며 저에게 말을 건 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소녀가 제 앞에 서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요즘 피곤하신 것 같아서 마를렌 언니와 함께 만들어봤어요” 
“엥?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다. 고로 내 마음에 쏙 드니 걱정 마라, 샬럿” 
기특한 마음이 들어 제 앞에 서 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언제 왔는지 샬럿은 이제 저랑 놀러 갈 거라고요! 라고 외치며 샬럿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서는 흑발의 양 갈래 소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제 모습이 신기했는지 어느새 다가온 알베르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뭐라 답하면 좋을까 순간 고민하다 이내 떠올린 답을 말하였다. 
“아아, 우리 작은 아가씨에게 선물을 받았거든” 
“....아가씨라... 아아
, 샬럿 양인가?” 
별일 아니니 네 자리로 가서 일이나 해라. 저어기 어떤 분께서 노려보고 계신다” 
“...그게
 좋겠군.” 
저 멀리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타라의 모습에 알베르토를 돌려보내고 놓았던 서류를 다시 들었다. 최근 밀려오는 업무에 연이어 야근한 상태였기에, 오늘만은 야근을 피하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서류를 처리하고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 십여 분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야근은 피한 건가? 샬럿에게 받은 선물을 조심스레 가방에 챙기고 정리된 서류들을 들고 보고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다며 가서 쉬라는 윌라드의 말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해서 그런지, 회사 밖의 풍경이 어색했다. 일찍 끝난 김에 장이라도 볼까 하는 마음에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이은 야근에 장을 볼 시간이 없어,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채소와 과일, 육류 등식재료를 사고 나니 양손 가득 짐이 들려 있었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짐을 내리고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 
“아아
, 왔나?” 
“네가 왜 여깄냐?” 
“일이 끝났으니까. 당연한 게 아니겠나? 
“아니. 그러니까 왜 네 집에 안 가고 내 집에 있냐고 묻고 있잖냐. 짜샤 
양손에 들린 제 짐의 존재를 알았는지 자연스레 받아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멍하니 서 있다 따라가며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오는 알베르토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뭐..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지자 다리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와 간단히 채소를 곁들여 먹으려고 했지만, 그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았다. 고기를즐겨 먹는 자신과 달리 알베르토 녀석은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사온 재료들을 천천히 떠올리며 알베르토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생각하고 있자니 뒤에서 알베르토가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뭐냐
?” 
“뭘 그리 생각하고 있나, 렉스” 
“네 녀석을 내쫓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왜” 
으음.. 오늘은 가스파초와 빠에야가 좋겠어.” 
“시발, 진짜 귀찮은 것만 시키지?” 
“날 내쫓을 생각을 한다며, 거짓말이었군?” 
아......” 
피식
 웃음소리를 내며 제 볼에 입을 맞추고 거실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괜스레 짜증이 났다. 토마토 하나를 꺼내 던지니 알베르토 녀석은 에피타이전가? 맛있게 먹겠네라며 던진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며 제 방향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오!! 진짜!“ 
“맛있는 저녁 기대하고 있겠네,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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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canción de cuna

2015. 8. 16. 00:24 | Posted by 아뮤엘

알고 있었다. 네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만난 것이었는데. 금방 떠날 거라던 너는 하루, 이틀 조금씩 돌아가는 날짜를 미루었다. 처음에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지상의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구나.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너와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잊고 말았다. 네가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오랜만에 같이 산책을 제 손을 이끄는 너의 손을 귀찮다며 쳐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녀올게. 라고 약간은 씁쓸한 말투를 하며 집을 나서는 너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평소에도 같은 일이 몇 번 있었기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들고 있던 설계도를 마저 작성하였다. 열매가 달게 잘 익었다며 바구니 한가득 열매를 따온 녀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거의 마무리된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미 완벽한 설계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더 확인해보고 나서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이나 앉아서 작업했기 때문일까?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부엌으로 가니, 요리를 하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짙은 고동색의 머리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에서 꼭 껴안았다. 놀랐는지 흠칫 떨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녀석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하던 일 하라고 하자 긴장으로 경직된 손놀림으로 야채를 씻었다. 녀석의 반응이 우스워 그대로 안겨있는데 이내 익숙해졌는지 노련한 손놀림으로 야채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안아주고 싶었다. 그날따라 그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알은 육류를 먹지 않았다. 야채와 과일도 적은 양만 먹었다. 저도 고기는 그리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해주는 채식요리가 좋았다. 그가 요리한 음식들을 식탁 위에 옮기고 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그가 앉았다. 평소보다 화려한 식탁. 특별한 날에나 할 법한 요리들이 식탁 가득 올라와 있었다.

“야 오늘 무슨 일 있냐?”

“......아... 그냥 오늘은 이렇게 차려 먹고 싶어서 그랬다네”

뜸 들이다 말하는 그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많은 놈이라 평소에도 이렇게 뜸 들이는 일이 잦았으니까.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그는 자신과 외출하기를 원했다. 이 녀석이 왜 이러지.. 거절할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서는 그의 모습을 그냥 넘기지 말걸. 계속 거절하기에 미안해 딱 한 번 그와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와 자신이 처음 만난 호숫가로 도시락을 싸들고. 평소 외출을 한다고 하면 들떠야 정상 일 텐데, 오늘따라 어두운, 억지로 웃는 듯한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힘들면 그냥 집에 가서 쉴까? 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숫가에 도착해 같이 과일도 따고 물놀이를 실컷 즐겼다. 그러다 지쳐 풀밭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느덧 해는 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렉스.. 오늘 즐거웠나?”

“아? 넌 아닌 것처럼 말한다?”

“나도 즐거웠다네”

제 눈을 덮는 따뜻한 손길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즐겼다.

“렉스... 자네는 내가.. 없어도 괜찮겠나?”

“엉? 그게 무슨...”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가볍게 제압하였다. 그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 눈을 덮은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하였다.

“..무슨..일인데?”

말없이 저의 몸을 반쯤 일으켜 껴안는 그의 행동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감겨있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날개였다. 주변에 새라도 있나 싶었지만, 이렇게 큰 날개를 가질만한 생명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야.. 알.. 이상해. 너 날개가 달려 있어...”

“......”

“야.... 보라니까? 너 날개가...???”

새하얀 빛을 자랑하던 날개는 조금씩 검게 물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저를 안은 알베르토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그의 날개에 손을 뻗었다. 검게 물든 날개는 제 손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그의 팔에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 없이 저의 품에 기대어있는 그를 살짝 밀어내 제 어깨에 기대어 있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창백해진 얼굴. 다문 입가 사이로 피를 흘리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야.. 알 왜 그래.. 장난이지?”

“ㅁ...안...하,네”

그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날개가 자신의 손길에 흩날려졌던 것처럼, 그의 몸도 조금씩... 지금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평소와 같이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는데.

“야... 새꺄..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

“....우..ㄹ...지....마,ㄹ..게”

“차라리..꿈이라고... 해달라고”

“사,ㄹ....ㅎ...네”

고통스러울 텐데, 웃음을 지으며 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 시야 때문에 자꾸 보이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이제는 상체만 남은 그의 얼굴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의 제안을 거부하지 말걸. 너와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걸.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이렇게 말없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두고 떠나는 그도 미웠지만, 지난 날들이 떠오르며 제 행동들이 다 후회가 되었다. 푸르게 빛나던 눈은 감기고, 어깨에 닿던 고동색 머리도 조금씩 흩어져갔다. 그가 들을 수 있도록,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울음에 잠긴 목소리를 애써 다듬고 그가 자주 불러주던 자장가를 떠올리며 노래하였다. 제 노랫소리가 그에게 닿기만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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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occolata

2015. 8. 9. 20:23 | Posted by 아뮤엘

힘들다. 제 앞에 높게 쌓인 서류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졌다. 언제쯤이면 줄어들까? 요 며칠간, 야근하면서까지 서류를 처리한 것 같은데 처음 그대로의 높이를,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은 높이에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서류가 늘어나기만 하는지 일을 내려주는 상부에 묻고 싶었다. 최근 회사가 바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도 적당히 줘야지 하루하루 지쳐만 갔다. 차라리 뭐라도 먹으면서 하면 좋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갑작스럽게 다이어트를 시작한 어떤 분 때문에 사무실에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일을 해서 그런지 몸이 찌뿌둥했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은 몸을 풀고자 스트레칭을 하니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굳었던 몸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굳은 몸을 풀고 이대로 좀 더 쉬다 들어갈까 고민하는데 유리창 건너로 보이는 뜨거운 시선에 조용히 휴게실의 문을 열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쌓여있는 서류를 조금씩 처리해나갔다. 빨리하면 처리하는 만큼 늘어났으므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서류를 처리하였다. 너무 느리게 했다간 꾀부린다고 뒤에서 불덩이가 날아올 것이 뻔했다. 몸을 살짝 젖혀 옆을 보니 매우 수척해진 얼굴을 한 알베르토의 모습이 보였다. 작게 괜찮냐고 물으니 견딜 만 하다고 작게 대답해왔다. 멍하니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빌며 서류를 처리했다.
"어.. 이건?"
"무슨 일이라도 있나?"
서류가 잘못 분배된 것인지 윌라드의 서류가 저한테 와있었다. 알베르토에게는 별일 아니라고 대답해주고 혹시 잘못 섞인 서류가 있나 확인하였다. 다행히 잘못 온 것은 방금 자신이 발견한 것뿐이었는지 다른 서류는 다 제 몫이었다. 조금이라도 쉴 수 있는 기회다! 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서류를 들고 일어서니, 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까와 같은 뜨거운 눈초리는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윌라드가 있는 이사실에 도착하였다. 노크를 하니 안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의 말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보다 더 많은 양의 서류에 둘러싸인 윌라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있냐고 물어보니 허허..하고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짠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서류가 섞였더라고"
"아아.. 그건 제가 일부러 그런 것입니다."
"앙?"
그는 제가 건넨 서류를 받아들며, 제 손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이게 뭐냐?"
"장시간 업무를 하느라 피곤하실 것 아닙니까? 피곤할 때 당을 섭취하면 피곤이 좀 풀린다고 하니까요"
꽤 고급스러운 포장지로 감싼 초콜릿 세 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늦으면 그녀가 화내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방을 나왔다. 일단 하나를 까서 입에 넣으니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 많이 달지 않아 제 입맛에도 딱 맞았다. 남은 두 개를 어찌할까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제 자리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였다. 아아, 역시 습관이란.. 서류를 처리하면서 남은 두 개 중 하나를 꺼내 옆자리에 앉은 알베르토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물음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다. 종이에 윌라드가 줬다고 타라 몰래 먹으라고 적어 그의 책상 위에 서류에 대해 물어보는 척 보여주었다. 그는 그녀를 속이고, 그녀 몰래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이 걸리는 듯 고민을 하다가 명왕의 부름으로 타라가 자리를 비우자 그때서야 먹었다. 작게 고맙다고 말하는 그에게 작게 으쓱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무실의 마녀가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였다. 반쯤 시체가 되어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다이무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하나는 쟤한테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게 종이에 윌라드가 준 것이니 타라가 없는 지금 몰래 먹어라 라고 적어 서류를 들고 그의 자리로 가 물어보는 척 초콜릿과 종이를 건네주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다이무스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니 그제서야 감사의 인사를 하듯 작게 고개를 숙이며 초콜릿을 먹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엽긴 짜식. 작긴 해도 당이 들어가서 그런지 조금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맑아진 정신으로 서류를 처리하고 있자니 마녀가 사무실로 들어와 초콜릿 먹은 놈 누구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건너편 앉아 살짝 몸을 움찔거리며 무표정으로 서류를 처리하는 다이무스의 모습이 너무 잘 보였다. 거기다 살짝 고개를 돌리니 몰래 초콜릿 껍질을 책 안에 넣고, 그 책을 또 지 가방 속에 넣어 완벽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로라스의 모습까지 보였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타라는 거기 쓰러지지 말고 일해! 그리고 초콜릿 먹은 놈 진짜 누구야!!! 라고 고함을 쳤다. 솔직히 그녀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가끔 이러는 것도 꽤 재밌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류를 하는 로라스 라던가, 작게 움찔거리며 타라의 눈치를 보는 다이무스 라던가. 결국, 범인을 찾는 걸 포기했는지 이를 갈며 업무를 하는 타라의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져, 나중에 그녀의 다이어트가 끝나면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놓았던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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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regàlo

2015. 8. 2. 00:07 | Posted by 아뮤엘

출장으로 인해 회사에서 벗어나 일본에 와있었다. 동양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해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되었다. 키가 작은 사람들, 길가에 보이는 사람들 밤하늘처럼 검은 눈과 머리카락을 가졌다. 자신을 안내하는 회사에서 붙여준 사람을 따라 자신이 묵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숙소는 분홍빛 꽃잎을 흩날리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니 놀라웠다. 
“저기 저 분홍색 꽃잎을 가진 나무는 뭐라 부르나?” 
“아아, 저건 이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라고 합니다” 
흐응..” 
멍하니
 서서 나무를 구경하는데 옆에 서 있던 가이드가 슬슬 가봐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갑갑한 정장을 벗고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유카타..? 라고 하던가. 뭔가 헐렁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입고 있다 보니 편했다. 가져온 서류를 처리하다 보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가이드가 약속 시각이 되었다고 슬슬 준비해달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가져온 정장으로 갈아입고 방 밖으로 나왔다. 남자가 안내하는 곳을 말없이 따라가니 어떤 방 앞에 멈추어 방문을 열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자신을 이곳까지 오게 한 장본인이 앉아 있었다. 마주 앉아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 일에 대한 말을 나누었다. 긴 식사 시간을 보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챙기기 위해 식사 시간 내내 팽팽한 신경전을 펼쳐졌다. 자신도 회사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왔기 때문에 최대한 회사에 이득이 되도록 해야 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남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더더욱 자신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누워 있는데 자신의 지친 모습을 본 가이드가 온천이라도 즐기지 않겠냐며 말을 건네 왔다. 온천이라..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크으~ 시원하네” 
온천수에 몸이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된 회사 업무로 쌓인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충분히 온천을 즐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온천으로 피로가 풀려서인지 감겨오는 눈에 준비된 이불에 몸을 맡겼다. 

눈을 뜨니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가이드가 룸서비스를 시킨 것인지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 자신이 사용하던 포크와 나이프가 아닌 기다란 막대 두 개가 준비되어 있었다.이걸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뒤늦게 포크를 건네주는 숙소 직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도 먹었겠다 떠나기 전 마을이나 둘러볼까 싶어 가이드에게 안내를 부탁하고 숙소를 나섰다. 활발한 시장과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가이드가 어딘가를 들려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떤 가게였다. 향기로운 향이 가득 나는 가게에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차를 파는 가게라고 했다. 무슨 차가 있나 싶어 구경하는데 가이드가 자신에게 어떤 병을 건네주었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벚꽃 차라고 말했다. 병 안을 보니 연 분홍색을 지닌 꽃들이 제 색을 잃지 않고 담겨있었다. 아름다웠다. 놀러 온 기념으로 사 갈까 싶어 계산하기 위해 한 병을 올려놓는데, 차를 파는 상인이 뭐라 말을 하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 차가 기침이나 숙취, 식중독에 좋다고 말하고 있다고 통역해주었다. 숙취라... 매번 자신과 술을 마시면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는 고동빛 머리칼을 가진 이가 떠올랐다. 녀석도 차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리 단 차도 아니라고 하니... 벚꽃 차를 하나 더 사 들고 숙소로 향하였다. 조금은 기뻐해 주려나 선물을 받고 좋아할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작은 선물이 그의 마음에 들기만을 바라며 작게 미소를 지으며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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