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내밀어진 작은 손은 무척이나 눈부셨다. 바닥으로, 아니 그보다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기만 하던 나날이 즐거워졌다. 그래, 나는 생각했다. 나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항상 쫓겨 다녔다. 이유는 모른다. 어머니조차 그를 외면했지만, 그의 자식이라는, 가족이라는 꼬리표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녔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지만, 꼬리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임지지도 못할 씨앗들을 뿌려 놓은 덕에 우리 가족은 언제나 가난했다. 남의 집 일을 하느라 얼굴조차 보기 힘든 어머니, 그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낡은 집은 더러워졌고 냄새까지 나기 시작했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다. 가끔 물을 길어 강가에 나갈 때면 돌을 던지는 아이들, 숙덕거리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아주 늦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각에 나갈 수 있었다.
지긋지긋했다. 이 모든 상황이. 나는 더럽지도,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매일 이렇게 상처가 나도록 몸을 닦고 닦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며 배척하고, 돌을 던졌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나도 보살핌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왜 나만? 그 설움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동생들 앞에서는 울 수는 없었다. 그래, 몸에 밴 습관들은 나를 끝까지 죄어왔다.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좁고 어두운 곳을 찾아 작은 몸을 숨기고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새어나가는 울음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얼굴을 무릎에 품고 최대한 소리를 죽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자꾸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가다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근처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에게 들키면 성가셔지니까, 재빨리 눈물을 닦고 도망치자는 생각에 대충 눈가를 소매로 잡고 일어섰지만, 자신을 붙잡는 손길이 더 빨랐다.
“천사님, 여기서 왜 울고 있어?”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사? 누굴 보고 하는 소리지? 설마 나인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붙잡힌 손을 빼내어 도망치려고 했지만, 제 의도를 알아차린 것인지 남자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응? 대답 좀 해주지, 그래?”
아, 얼굴도 다시 보고 싶네~ 라고 덧붙이며 말을 걸어왔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나를, 피하지 않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도망가야 된다는 생각보다 상대가 누구인지 보고 싶어졌다. 그래, 왜인지 몰라도 가슴 한구석에서 그라면 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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