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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Ricardo

2016. 11. 18. 00:12 | Posted by 아뮤엘

눈이 내린다.

너를 닮은 새하얀 눈이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색색의 건물들은 새하얗게 물들어가고 크고 작게 들리던 소리도 하나둘 가려져 갔다.


11월 17일

너와 내가 만난 날.

처음으로 이름을 가지게 된 날.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생긴 날.

처음으로 친구라는 존재가 생긴 날.

너와의 긴 인연이 시작된 날.


뽀득-

걸을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왠지 정겨웠다. 생각해보니 생일에 눈이 내리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그리운 추억들…. 이제는 돌아오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그래 마피아에 거두어지기 전까지는 언제나 둘이 함께였다. 그러다 우리를 눈여겨본 그들에게 거두어지고 나서는 조직 원들이 축하해 주었다. 너는 언제나 따로 방을 찾아와 생일을 축하한다며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날은 너와 같이 잠을 자는 날이었다. 뭐 이건 네 생일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더 크고 나서는 카포로서의 일이 바빠 서로의 생일을 챙기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다른 이들의 축하는 필요 없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조금 늦은 시각이라도 서로의 집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런 날 중에서도 눈이 내리는 생일은 언제나 특별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모든 일을 미루어두고, 약속이라도 한 듯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그리고 너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서 밥을 먹고, 너의 집에서 와인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너에게 우리는 이미 끝난 연일 텐데, 나는 눈이 내린다는 이유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집을 나섰다. 큰길을 벗어나 좁고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들어가고 나서야 작은 공터가 나왔다. 버려진 옷가지와 벽돌 따위로 만들어진 작은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거리에 버려져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밖에 없던 우리가 살았던. 둘이서 살 집이니 바람이나 비에 무너지면 안 된다고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녀 재료를 주워와 공들여 만들었었다. 겨우 만든 집은 며칠 살지도 못한 채,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우리는 옛 추억을 그리듯 종종 이곳을 찾았다. 지금은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은 집이지만 예전이 그리워져 몸을 숙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두운 집 안에는 색색의 조약돌과 쓰레기만이 남겨져 있었다. 처음 보는 것들도 있는걸 보면 집을 잃은 고양이가 가끔 쉬어가는 쉼터가 된 모양이었다. 씁쓸해지는 마음을 삼키고, 커지는 하얀 눈송이에 근처 건물 아래로 들어가 눈을 피했다. 네가 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미련이 이곳을 떠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으니까, 춥지 않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볼까? 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 두 시간 새하얗던 세상이 어둠에 잠식될 때까지 너를 기다렸다. 


 드문드문 들려오던 소리와 건물의 불빛이 하나둘 사라져갈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추위에 굳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굳은 몸을 간단히 풀고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왔다. 어두워진 거리에는 흐릿하게 빛나는 가로등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정말 떠나버린 거구나. 아릿해져만 오는 가슴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나를 거부한다고 하여도 난 널 지켜야 했다. 그 어둠으로부터. 그게 날 구원해준 널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답이었기에. 다만, 이 아파지는 마음을 난 어찌하면 좋은 걸까? 떨구어진 머리가 초라해진 나의 그림자를 더 작게 만들었다. 눈 위로 툭툭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들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고요한 거리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뽀득- 뽀드득-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익숙한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길을 따라 옮긴 시선 끝에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네가 있었다.


“여전히 미련하군. 포기라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는데.”

“…. 네가 어떻게 여기에?”

“이유를 묻는건가? 그렇다면 답해주지. 생일 축하한다, 리키”


제 품에 안긴 그의 따뜻한 온기를 나는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게 꿈은 아닐까? 네가 혹시나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그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아아,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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