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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다무] commiato

2015. 7. 6. 22:08 | Posted by 아뮤엘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렸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붉은 비를 받았다. 모은 손안에 고이는 액체를 조심스레 볼에 가져다 대었다. 따뜻하다. 비는 이내 멎어 들었고, 바닥에는 붉은 웅덩이만이 그 흔적을 나타내었다. 물줄기를 따라 걷다 보니 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았던 눈을 뜨고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 성당 앞에 기대어 앉아있는 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네가 앉아있었다. 새하얀 눈꽃을 닮아 빛나던 너의 머리는 붉게 물들고, 푸르게 빛나던 너의 눈은 굳게 감긴 채 떠지지 않았다. 깊이 잠이 든 네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항상 따뜻하던 너의 품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너에게 둘러주고 그대로 안아 들었다.


한참을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려 최대한 그 장소에서 멀리 벗어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


다. 크고 작은 건물이 가득한 회색의 숲에서 벗어나 도착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숲이었다. 차오르는 숨을 천천히 내쉬고 근처 나무에 기대었다. 아직 쉴 수는 없었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제 다리는 고통을 호소하며 자꾸 힘이 풀려 당장에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풀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절벽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미친 사람처럼 수풀 사이를 헤쳐나갔다. 쏴아아-하는 폭포 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며 약간 넓은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다. 드디어.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심스레 품에 끌어안은 그를 내려놓고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와 시간이 날 때, 자주 오던 이 절벽은 옆에는 폭포가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자주 찾아왔었다. 떠오르는 추억을 뒤로하고 외투를 살짝 벗겨내 창백해진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네가 좋아하던 곳이다. 다이무스”

피에 젖었던 머리는 어느새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빗물에 제 색을 되찾아갔다. 빗물이 다 씻겨내지 못해 약간의 붉은 기가 남아있는 은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억눌린 감정이 비집고 나오는 것을 애써 삼키며 구슬프게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타리우스가 부활했다. 라는 정보를 가져온 그의 둘째 동생 덕분에 ‘인형실 끊기 작전’ 이후 세 조직이 손을 잡게 되었다. 동맹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합 측 능력자들이 공격을 받는 사건이 터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안타리우스쪽에서 전쟁을 선포한 것이었다. 전장은 서로의 눈치를 보듯 천천히 흘러갔다. 눈치싸움도 길어지면서 하나둘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동맹 측의 상태를 안 안타리우스는 바로 공격을 가해왔고, 동맹 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하였다. 다행히 더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처리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피로를 느끼는 자신들과 달리 개조인간들은 계속해서 치고 들어왔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부상자는 늘어만 갔고, 동맹의 사기도 꺾일 대로 꺾인 상태에다가 서로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챙기려는 수뇌부들의 머리싸움에 제대로 된 작전이 내려오지도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능력자들끼리 모여 수뇌부들의 결정을 기다리느니, 일단 들어오는 적부터 잘라내 어느 정도 버티자는 의견이 수렴되어 4~5명이서 한 팀으로 나누어 각 구역을 맡는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팀에서의 역할이 겹치는 자신과 그는 다른 팀으로 배정되었다. 그와 떨어졌다는 아쉬움보다 마음 한구석에 감도는 불안감에 그를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제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해 이미 정해진 팀을 쪼개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제 머릿속을 맴도는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였다. 제 생각을 꿰뚫었는지 어느새 다가온 그가 눈짓으로 옥상을 가리키고 저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자신에게 내일 있을 작전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를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표정이 굳었더군”

옥상에 도착하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올라왔다는 것을 알았는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걸어왔다. 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뒤에서 그를 껴안자, 그가 자연스레 기대어 왔다.

한참을 말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그의 살 내음이 불안했던 제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는 이렇게 제 곁에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제 곁에서... 따뜻한 손길이 제 손위에 놓였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 갔었나 보다. 그런 자신을 달래듯 제 품에서 벗어나 손을 잡아주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입을 맞추었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부드럽게 제 리드에 따라 혀를 섞었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그를 마주 안고 서로 작은 약속을 하였다. 살아 돌아오자고, 다쳐도 괜찮으니까, 살아서 돌아오자고. 그는 작게 미소를 띠며 알겠다고 자신의 볼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살아 돌아오겠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약속을 그는 지키지 못한 채 제 곁을 떠났다.

지키겠다고 약속했잖아. 제 품에 안겨 잠이 든 그가 괜스레 원망스러워 볼을 꾸욱 눌러봤지만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은 제가 더 잘 알았다. 임무 내내 저한테 경고하듯 울리는 불안감을 외면하며 제 감이 들어맞지 않길 바랐다. 제가 맡은 구역의 임무를 끝내고 지원 요청이 온 지역으로 지원을 가려는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저 혼자 그가 배치받은 곳을 향해 뛰어갔다. 십여 분쯤 달려 도착한 곳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그는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의 팀원들의 시체와 강화 인간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맡은 구역이었던 성당 앞에서 피로 얼룩진 비를 맞으며 그의 죽음을 깨달았지만 모르는 척 외면하였다.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이끌고 성당으로 올라가자 붉게 물든 채 차갑게 식어버린 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는... 내려놓았던 그를 다시 안아 들고 절벽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폭포가 만들어낸 안개에 밑은 보이지 않지만, 이 정도 높이라면... 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그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안녕, 내 사랑. 다음 생에는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너를 만나 사랑을 하고 싶다. 평범하게 보통의 연인들처럼. 我爱你, Deimus 

[로라드렉] insònnia

2015. 7. 5. 00:21 | Posted by 아뮤엘

- 불면증


밝게 빛나는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네가 생각났다.

“슬슬 돌아가야겠군”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맘때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너를 위해 쌓여있는 서적들을 정리하고 서재를 나섰다. 혹시나 싶어 너의 방으로 가봤지만 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옥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누워있는 너의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왔냐?”

“아아..여기 있었나?”

“뭘 몰랐다는 듯이 말해. 알고 왔잖아”

피식-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옆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구경했다.

“....괜찮나?”

“뭐가?”

“슬슬 그 시기잖나”

“아...아아..뭐...”

평소 같았으면 신랄하게 되받아쳤을 그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몸을 일으켜 머리를 쓰다듬었다.

“ㅁ...뭐냐?”

“눈 밑에 그림자가 졌네. 중국에 팬더?라는 생물의 눈 주변이 검다던데. 지금 자네의 모습이 딱 그 꼴이군”

“야 이 씨ㅂ...”

“쉿 조용히. 다른 이들이 깨잖나”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자 버둥거리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밤이 늦었네. 가서 자는 게 어떨까?”

“여기서 하늘을 보는 게 더 좋아. 잠은... 뭐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씁쓸하게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을 테니”

“야, 알!!”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잠을 다 깨울 생각인가, 자네?”

뒷말을 생략하고 조심스레 그를 안아 들자 버둥거리며 큰소리치는 렉스의 모습에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그제야 얌전해졌다. 토라진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입을 살짝 맞추었지만..(동시에 주먹으로 자신의 명치를 때려 조금 위험했다.) 


계단을 내려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그의 방이 설명해주었다. 이것저것 적힌 노트들과 널브러진 책들, 어질러진 이불과 책상 위에 놓인 수면유도제들.. 약은 차마 먹지는 못했는지 봉지가 꾸깃꾸깃해진 채 놓여만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고, 그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약까지 받아왔었나?”

“...먹지는 않았다.”

등 돌리고 누운 그의 모습에 침대에 걸터앉아 결 좋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자게나.. 내일 이야기하지”

“......”

그가 잘 때까지 곁에 앉아 토닥거려주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든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방을 정리하였다. 어차피 그가 일어날 때까지 방을 벗어날 수 없기에 시간을 보낼 겸 시작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의 방에서 벗어나는 순간 잠에서 깨는 그의 모습에 그가 푹 잘 수 있도록 그의 곁에 있는 것이었다. 그가 깰 때까지 할 일도 없고, 그의 방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낸 지도 벌써 5년째. 5년 동안 이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시기에 그가 잠이 들면, 자신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러한 증상을 가지게 된 처음 2년 동안은 그의 불면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일주일 이상 잠을 못 자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그와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 조절하고 마셨기에 둘 다 취할 일은 없었지만, 그날은 평소 즐겨 먹던 술의 내용물을 바꿔 그가 취하게끔 하였다. 술에 취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가 왜 잠을 못 잤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임무에 나갔다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향한 임무였다. 임무는 성공했지만, 자신을 제외한 전원 전멸..임무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기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임무를 보고하고 쓰러져 바로 병원에 실려 가 대수술에 들어갔다. 상처가 큰 것도 문제였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에 취한 그가 말했었다. 두려웠다고 말했다. 내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고 울먹이며 자신을 두고 가지 말아 달라고 안겨오는 그의 모습에 자신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구나, 내가 그에게 이렇게 큰 존재가 되어있었구나. 조심스레 울다 잠이 든 그를 눕히고 옆에 앉아 그에게 다짐하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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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il crìmine (9)

2015. 7. 3. 23:35 | Posted by 아뮤엘

"아찌 괜차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조심스레 볼을 쓰다듬는다.

"아아..괜찮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몇 번의 시도 끝에 일어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카페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형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잘 참았어, 이글 홀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이와 자주 들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와 자주 오다 보니 점원이 알아보고 웃는 얼굴로 반겼다. 꼬맹이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하고 서비스로 받은 음료를 마시고 있자니 아이가 뚱한 얼굴로 쳐다봤다.

"꼬맹이 무슨 일 있냐?"

"엘리도 아찌꺼 먹고 시퍼!"

"이거? 꼬맹이가 마시기에 좀 그럴 텐데"

탄산이 들어있어 고민하는 사이 아이의 볼은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아아.. 줄 테니까 볼의 바람은 빼는 게 어때, 아가씨?"

잘 정렬되어있는 물컵에 음료를 조금 따라 건네자 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음료를 마신다.

"맛없쪄!!"

음료를 뱉어내는 아이의 모습에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우유를 건네주었다. 우유를 맛있게 마시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종업원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며 세팅해주었다. 어린이 세트라 그런가? 햄버그 위에 꽂힌 깃발을 보며 자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몫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까?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았다.


입 주변에 소스를 묻힌 채 먹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제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천천히 먹어라"

냅킨으로 아이의 입 주변을 닦아주자 나름대로 교양 있게 먹는다고 허리를 펴고 뻣뻣한 자세로 먹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그건 또 누구한테 배웠어?""틀비언냐가 일케 먹어야 어른이래쪄!"

'애한테 별걸 다 가르치네'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하고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아이가 다 먹은 걸 확인하고 일어나 계산을 하고 연합으로 돌아가는 길, 과자가게에 들려 아이에게 과자를 안겨 주었다. 다행히 화난 건 풀렸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는 아이의 모습에 흐뭇하였다. 연합에 도착해 나이오비에게 아이를 맡기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커튼까지 치고 정장을 벗었다.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피곤하네"

목욕을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물을 채웠다. 욕조에 따뜻한 물이 어느 정도 찬 걸 확인한 뒤, 라벤더가 첨가된 입욕제를 풀고 욕조에 들어갔다. 은은한 라벤더 향에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수척해 보이던 형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일까? 무엇 때문에?

자신이 집을 나와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형이 수척해졌다는 것에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자신의 존재가 형에게 아직 크다는 증거였으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안돼..."

형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나온 게 아니었다. 행복하게, 형만의 삶을 살길 바라며 제 마음을 접고 나온 것이었는데... 어찌하면 좋을까? 물속에 얼굴을 반쯤 담그고 생각에 잠겼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 따뜻했던 물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욕조에서 일어나자 차가운 공기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춥다.. 따뜻한 물을 틀어 가볍게 샤워를 한 뒤, 물기를 닦고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에 있었을 때는, 자신이 이러고 있으면 형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와서 깨우곤 했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일들을 떠올랐다. 그리워해선 안 된다. 이젠 혼자 이겨가야 할 것들이니까. 형의 얼굴을 가까이서 봐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수척해진 형의 모습을 확인해서 그런 것인지 오늘따라 감정조절이 되지 않았다. 후회되었다. 그냥 내 욕심, 내 마음 다 외면하고 억누르면서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걸... 모르는 척, 집무실에서 일하다 잠든 형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형이 힘들어하는 날이면 같이 술을 마시고 그러다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그저 속으로 앓게 되겠지만, 그래도 형이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울지 않기 위해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다. 시간이...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들도 사그라질 것인데.. 왜 이리 잊는 것이 힘들까. 베개를 끌어안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마땅한 답 없는 감정들에, 혼자서 앓아봤자 상처만 입고 마니까..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어서인지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짜증이 났다. 겨우 몸을 일으켜 가운을 입고 문을 열자 다급한 표정을 한 토마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급한 임무는 사양이라구~"

"형,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꼬마 아가씨가 문제라도 일으켰어?"

"다이무스씨가 임무 중 습격을 받아 큰 부상을 당해 입원 하셨다구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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