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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벨져] guilt - 下

2015. 10. 6. 03:21 | Posted by 아뮤엘

얼마나 달렸을까? 기차를 타고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실 자신이 가려는 곳은 이 역에서도 차를 타고 한~두 시간은 더 가야 있는 장소였다. 짐을 들고 역 앞 광장에서 마차를 탔다. 멍하니 창문을 열고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항상 긴장을 놓을 새 없이 싸우고 죽이는 생활의 연속이었기에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로운 일상이 오히려 어색했다. 푸르름을 뽐내는 나무들 사이로 새파란 바다가 보였다.

아아, 벌써 도착인가? 마차가 멈추고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마부에게 고맙다고 팁까지 쥐여주고 일단 묵을 장소부터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여행객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장소는 아니었는지, 마을에 여관이 있었다. 여관에 들어가 방을 얻어 짐을 내려놓은 뒤, 바닷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의 짠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쏴아아- 소리를 내며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도시를 떠나 바다로 왔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평소 입던 정장 대신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반소매에 반바지, 거기다 바닷가에 나간다고 하니 여관 주인이 신으라고 건네준 슬리퍼까지. 완전 피서객의 모습이었다. 모래사장을 걸을 때마다 신발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의 촉감이 좋아 결국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찬 바닷바람과 달리 따뜻한 모래. 마음이 차분해졌다. 길게 늘어진 해변가를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절벽이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꽤 많이 걸어온 것 같았다. 해가 저물기까지 그리 머지않아 슬슬 되돌아가야 하지만, 절벽까지 멀어 보이지 않아 절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에서의 짧은 휴식이 끝나면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곳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천천히 생각을 되돌아볼 시간도, 여유도 없을 거리라는 걸 잘 알기에 더더욱 지금 이 시간이 소중했다. 지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하아...”
냄샌가... 또 분쟁이... 지긋지긋하군.
“또 어느 조직ㅇ....”
자연스럽게
뒤돌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감았던 눈을 뜨니 매우 평화로운 석양이 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자신이 휴가를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피 냄새는 어디서…? 희미한 냄새를 따라간 곳은 절벽 아래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한 곳이었다. 파도와 바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제각각의 모양을 지닌 바위 사이로 새하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꽤 검은색의 고급 진 재질의 옷, 그리고 붉은 피가 새어 나오는 몸을 뒤집었다. 새하얗게 질려서 그렇지 꽤나 미형이었기에 여성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 남자가 쥐고 있던 검을 손에서 빼내었다. 이도류인가? 검을 남자의 허리에 달린 검집에 넣고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맞닿은 피부로 느껴지는 상대방의 체온은 상당히 내려간 상태였고 복부에 입은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상태였다. 상처가 그리 깊은 편은 아니었으나, 상태를 보아하니 상처를 입고 방치된 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쳐갔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서둘러야겠군
입고 있던 셔츠를 찢어 상처 부위를 감아 조심스레 안아 들고 마을을 향해 달렸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마을에 있는 의원으로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를 치료한 의사는 출혈량이 많고, 체온이 낮아진 상태라 쇼크 현상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수혈도 잘되었고, 상처도 잘 봉합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에게 감사하다고 작게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평소라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왜일까? 조금씩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파랗게 질려있던 입술이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새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 여인네들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바르는 붉은 립스틱이 그려내는 것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아름답다. 이 감은 눈 속에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 남자가 그려내는 음은 어떠할까? 조심스레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왜 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손길을 느낀 것인지 작게 뒤척이는 남자의 행동에 살짝 손을 떼어내었다.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 이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남자가 쥐고 있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손이 모자라 검을 그냥 검집에 넣었지만, 그리 내버려두면 검이 상할 게 뻔하였다. 남자가 일어날 때까지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의사에게 부탁하여 천을 얻어왔다. 얼핏 봤었지만, 전투한 모양인지 검에는 바닷물에 어느 정도 닦이긴 했지만, 피가 묻어 있었다. 두 검을 닦아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러있었다. 검을 검집에 넣어 탁자 위에 다시 올려놓으려는데 빛에 반사된 검집에 새겨진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Belzer Holden

“벨..져..인가?”

“...ㅇ.....”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이 잠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인지 작게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줄곧 감겨있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자신을 올곧게 쳐다보는 아이스 블루색의 눈동자. 아아, 빨라지는 심박수를 느끼며 언젠가 피에르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것이 저리 호들갑 떨 정도로 좋은 건가?’

‘리키, 너도 언젠가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알게 되겠지. 누군가를 바라만 봐도 설레고, 그 사람이 계속 생각나는 감정을’

아아,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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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contrattacco

2015. 10. 4. 00:17 | Posted by 아뮤엘

보기 좋게 잘 정돈된 결 좋은 고동색 머리카락. 푸른 하늘을 닮은 듯 맑고 깨끗한 푸른 눈. 굳게 닫힌 붉은 입술. 지나치게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너. 스스로의 욕망을 억누른 채, 모범적인 기사의 모습을 삶을 살아가는 너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따금 장난을 치게 된다. 성인 잡지를 실수인 척 너의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거나, 오늘처럼 맛없는 기숙사 내 식당의 밥 대신 숙소에서 밥을 만들어 먹을 때, 마주 앉은 너의 중심을 발로 슬쩍 누른다던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는 너의 모습에 다리가 저려서 그랬는데, 혹시 내가 실수했냐고 물어보면 너는 입술을 꾸욱 다문 채 괜찮다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식사를 마저 하였다. 귀까지 붉게 물든 걸 보아 하니, 식사 후 먼저 샤워를 하겠다며 넌 욕실로 들어가겠지. 천천히 토스트를 입에 넣었다. 바삭거리는 식감이 좋았지만, 딱딱한 식감에 목이 아팠. 어쩔 수 없나?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았지만, 따로 차를 타오려니 막 일어난 탓에 나른해 움직이기가 싫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 마시진 않았을 것이 뻔했다. 팔을 뻗어 로라스의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로라스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내뻗다 이내 작게 한숨을 쉬고 제 몫의 토스트를 마저 먹더니 먼저 씻겠다며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그렇지. 제 예상대로 행동 하 그를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왔다. 그와 함께 지낸 지도 벌써 5년. 고된 임무로 인해 1년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이들을 보면 그와 알고 지낸 지도 오래 되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자신의 성격을 알고도 같이 지내는 걸 보면 그도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쏴아아-하는 소리. 남은 토스트를 입에 털어 넣고 식기를 싱크대에 놓은 뒤 욕실 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살짝 문에 귀를 대고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밖을 의식하듯 작게 억눌린 신음이 끊겨 들리다 이내 작게 숨을 내쉬는 소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럼 그렇지. 문에서 귀를 떼고 조심스레 문에 기대었다. 이 짓도 벌써 몇 번짼지. 다른 사람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금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너의 모습을 보자면 속이 뒤틀렸다. 그 가면을 벗기고 싶었다. 네놈도 사람인데, 자신은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욕망을 꾹꾹 누르는 네 모습이 싫었으니까. 내 입맛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과 비교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시험하고 있는 거야, 알. 기약 없는 시험을 작한 지도 벌써 3년. 솔직히 2년째 되던 날, 이제 그만할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오기로 하는 것인데....

“.....그만둘까
반응이야 재밌긴 하지만, 슬슬 질리기도 하고.
시험을 잘 치른 학생에게 주는 상은 없는 건가?”
멍하니 고민을 하고 있는데 더운 열기가 제 몸을 감싸왔다. 이크 늦었다라는 생각에 황급히 몸을 일으켜 봤지만, 뒤에서 끌어안아 도망도 치지 못한 채 그대로 잡혀버렸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흠칫 놀랐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ㅇ..알고..있었냐?”
으음.. 그렇게 대놓고 하는데 못 알아차리면 그게 바보가 아닐까 싶네만?”
ㅇ...언제부ㅌ...”
“뒷이야기는
나중에. 나는 상이 받고 싶거든.
생긋 웃는 얼굴로 자신을 안아 들어 침대로 향하는 로라스의 행동에 저항을 해봤지만, 귀를 깨물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압도당해 버렸다.
야..잠시만 알..야???”
“쉿.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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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너와 이어지다.

2015. 9. 3. 23:27 | Posted by 아뮤엘

지쳐있던 나에게 너라는 존재는 구원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알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내 배경을 보고 접근하였다.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던 부모님마저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나에게 아무런 편견 없이 다가와 준 네가 얼마나 고맙던지. 너는 모르겠지. 내 잘못에 대해 꾸짖으면서도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주는 너의 모습에 내가 바라던 사람이 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더욱 너에게 집착을 하게 되었다. 네가 내가 아닌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이,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피했다. 보기 싫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널 가둘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 15살의 나는 20살의 성인이 되었다. 가문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제명하였다. 머물 곳이 없어져 안 되었다며 비웃음에 가득 찬 위로를 날리는 이들을 무시하고 제 방으로 들어왔다. 가문? 가문은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기사단에서 생활했고 그가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으니까. 그저 그만 자신의 곁에 있었으면 좋았으니까. 자신이 가문에서 제명되었다는 소문에 여기저기서 자신을 괴롭혔다. 밖으로 나가면 자신에게 몰려드는 인파에 지쳐 방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지 않아, 연구 노트를 꺼내 아이디어를 정리해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였다. 소문이 가라앉길 기다리며 밖으로 나가지 않은지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밥이야 연구를 할 때는 간단하게 먹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차와 빵, 과자 따위로 배를 채웠으니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새로 만든 발명품의 완성이 막바지에 이르었을 무렵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어느 미친놈이 방까지 찾아왔나 싶어 무시하려 했지만, 뒤이어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렉스, 안에 있는가?"

"....알?"

잠금 장치를 풀고 문을 여니 자신을 껴안는 알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자신을 꽉 껴안은 채 놓지 않는 녀석의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내가 임무를 수행하러 다녀온 사이 가문에서 제명되었다고 들었네. 괜찮나?"

"아? 뭐.. 딱히 가문에 대해 그리 애착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괜찮으니까 걱정 마. 그건 그렇고 너야말로 임무는 잘 다녀왔냐?"

"아아.그리 위험한 임무는 아니었으니까"

소파에 앉는 녀석에게 차를 내어주고 맞은편에 앉는 데 불편한 듯, 한쪽 다리를 뻗는 알의 모습이 수상하여 실수인 척 발로 지그시 눌렀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알은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새꺄 다쳤냐?"

"크음.. ㅋ..큰 부상은 아니니 걱정 말게"

"이번 임무는 안 위험하다며, 상처까지 입고. 거짓말 한 거냐?"

감추듯 다리를 살짝 빼는 녀석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몸을 일으켜 녀석의 다친 쪽의 다리를 잡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걷어 올린 바지 안에는 피가 배어 나왔는지 군데군데 붉게 물든 붕대가 보였다.

"야... 이거 뭔데?"

"...임무와는 관계없는 상처이니 걱정 말게"

"하아... 기다려봐. 보아하니 붕대만 감고 온 거 같은데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냐"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낸 뒤, 욕실에 들려 젖은 수건을 들고 앉았다. 조심스레 붕대를 풀자 어디에 쓸린 듯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바닥에 넘어져 쓸린 듯한.....

"...야.. 알"

"........"

"너 넘어졌냐?"

"......."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알의 모습에 제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천하의 알베르토가 바닥에 자빠져 상처를 입다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상처를 치료하자 알은 부끄러운지 크음하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회피하였다. 상처를 치료하고 붉게 물든 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야"

"......."

"누가 발 걸었냐?"

"그럴 리가! 오는 길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 그랬던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알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신에게 숨기는 거지? 혹시 마음에 든 여인을 구하다 넘어진 건가? 최근 선물에 대해서 묻더니... 정말 마음에 든 여인이라도 생긴 건가?

"야.. 치료 다 끝났으니까 슬슬 나가봐라"

"...렉스, 화났나?"

"내가 왜?"

자신이 생각해도 싸늘한 말투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좋아하는 여인이 생긴 알은 언젠간 자신을 떠날 게 분명했으니까. 자신은 그 모습을 지켜볼 만큼 착한 성격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참고 책상에 앉았다. 들어오지 않는 내용의 연구 자료를 끄적이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렉스"

"..왜..."

"렉스, 왜 화가 났는지 말해주지 않겠나?"

"화 안 났으니까, 빨리 가라"

"거짓말은 좋지 않네. 응?"

".........."

"하아... 좀 더 분위기를 잡고 주려고 했건만"

"....엉?"

제 등 뒤로 느껴지던 따뜻한 감촉이 사라지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로라스는 작은 상자를 들고 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내 상자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내더니 제 왼손 약지에 끼웠다. 설마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확인하니 푸른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가 제 존재를 뽐내듯 빛나고 있었다.

"..야...알 이거..."

"자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엉? 오늘이..."

책상 위 달력을 들어 오늘의 날짜를 확인하였다. 분명...

"9월...3일이라.. 아.. 내 생일?"

"...역시 몰랐던 건가"

"새꺄.. 생일 선물이라도 그렇지 이게 뭐냐?"

작게 한숨을 쉬는 알의 모습에 괜스레 부끄러워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생일에 반지라니. 단순하다고 해도 끼고 다니기에는 좀.. 그래도 준 녀석의 성의가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고 서랍에 넣기 위해 반지를 빼내려는데 따뜻한 손이 그것을 저지하였다.

"주자마자 빼는 게 어딨나. 그리고 내 말 아직 안 끝났네"

"아니 끼고 다니기에는 좀..."

"사랑하네, 드렉슬러. 내 감정을 허락해 주겠나?"

조심스럽게 제 손에 입을 맞추며 자신에게 제 사랑의 허락을 구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뭐..? 알베르토가 누굴 사랑해? 날?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잡히지 않은 손으로 제 볼을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정말, 그가 날 사랑한다고?

"야... 장난 아니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진심이네"

"...새꺄... 그런 건 눈치를 주고 말해야지.. 시발. 새꺄 너 비겁해"

붉게 물든 얼굴이 그에게 들킬까 봐 겁이나 책상 위에 있던 공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자신의 행동이 우스운 듯 작게 킥킥거리며 자신을 껴안았다.

"그럼 대답은 긍정으로 알아듣겠네. Mi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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