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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Karma -3-

2015. 8. 28. 02:13 | Posted by 아뮤엘

방을 나서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너무 방에만 있었나? 추욱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뭐라도 걸쳐야겠다는 생각에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붉은색 가디건을 꺼내 걸치고 방을 나섰다. 저택을 나서는 길에 집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되도록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난감한 미소를 짓자 비밀로 할 테니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어딜 가는지 말해달라는 집사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집사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리는 없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잠시 마을에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작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나온 저택 밖의 풍경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제 기억 속 마지막으로 나왔을 때, 얇은 옷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긴소매의 약간 두툼한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푸르던 나무들도 화려한 옷으로 하나둘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마을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대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표정을 보아하니 웃으며 무언가를 호응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사람들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자 광대가 보였다. 아아, 그런 거였나?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다시 사람들을 헤집고 나와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강가에 도착하게 되었다. 따뜻하게 입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강가라 그런가. 약간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적한 강가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강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택을 나설 때만 해도 저 높게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저물어 어느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 이들이 떠올라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저택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사가 자신을 맞이해주었다. 집사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괜찮다며 저녁은 어찌하겠냐고 물었다. 보아하니 형들은 아직 제가 나갔다 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요즘 큰형과 작은형이 바빠 아침 식사만 같이하는 것이 컸겠지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집사에게 돌아오는 길, 외출할 때 자주 들리는 베이커리에서 사온 빵을 보여주었다. 많이도 사 왔다며 혼자 먹을 수 있겠냐고 넉살 웃음을 짓는 집사에게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고 집사가 좋아하는 빵을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히 집사는 괜찮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뒤에서 허허하고 웃는 소리만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아 사온 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맛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더 맛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제 몸은 벌써 지쳤는지 피로했다. 방에서 제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저택에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외출해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악몽을 핑계로 몸까지 나태해지는 것은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연무장에 나가야지.”

점심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빵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물며 훈련할 것들을 생각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에 외출을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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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bifurcación

2015. 8. 23. 01:24 | Posted by 아뮤엘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나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오늘은 무엇을 할지. 평소라면 생각하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 선택한다. 무엇이 나를 이리 만들었나 생각해보니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네가 있었다. 그래 너와 만나고 나서부터 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드렉슬러 아저씨!” 
아앙? 무슨 일이냐” 
고된 서류 업무로 혹사당한 허리를 스트레칭으로 풀며 저에게 말을 건 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노란 우비를 입은 작은 소녀가 제 앞에 서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요즘 피곤하신 것 같아서 마를렌 언니와 함께 만들어봤어요” 
“엥?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다. 고로 내 마음에 쏙 드니 걱정 마라, 샬럿” 
기특한 마음이 들어 제 앞에 서 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니, 언제 왔는지 샬럿은 이제 저랑 놀러 갈 거라고요! 라고 외치며 샬럿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서는 흑발의 양 갈래 소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제 모습이 신기했는지 어느새 다가온 알베르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뭐라 답하면 좋을까 순간 고민하다 이내 떠올린 답을 말하였다. 
“아아, 우리 작은 아가씨에게 선물을 받았거든” 
“....아가씨라... 아아
, 샬럿 양인가?” 
별일 아니니 네 자리로 가서 일이나 해라. 저어기 어떤 분께서 노려보고 계신다” 
“...그게
 좋겠군.” 
저 멀리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타라의 모습에 알베르토를 돌려보내고 놓았던 서류를 다시 들었다. 최근 밀려오는 업무에 연이어 야근한 상태였기에, 오늘만은 야근을 피하고 싶었다. 마지막 남은서류를 처리하고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 십여 분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야근은 피한 건가? 샬럿에게 받은 선물을 조심스레 가방에 챙기고 정리된 서류들을 들고 보고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고했다며 가서 쉬라는 윌라드의 말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해서 그런지, 회사 밖의 풍경이 어색했다. 일찍 끝난 김에 장이라도 볼까 하는 마음에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이은 야근에 장을 볼 시간이 없어, 냉장고가 텅 비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채소와 과일, 육류 등식재료를 사고 나니 양손 가득 짐이 들려 있었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짐을 내리고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 
“아아
, 왔나?” 
“네가 왜 여깄냐?” 
“일이 끝났으니까. 당연한 게 아니겠나? 
“아니. 그러니까 왜 네 집에 안 가고 내 집에 있냐고 묻고 있잖냐. 짜샤 
양손에 들린 제 짐의 존재를 알았는지 자연스레 받아들고 부엌으로 향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멍하니 서 있다 따라가며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오는 알베르토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뭐.. 한 두 번 겪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지자 다리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와 간단히 채소를 곁들여 먹으려고 했지만, 그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았다. 고기를즐겨 먹는 자신과 달리 알베르토 녀석은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사온 재료들을 천천히 떠올리며 알베르토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생각하고 있자니 뒤에서 알베르토가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뭐냐
?” 
“뭘 그리 생각하고 있나, 렉스” 
“네 녀석을 내쫓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왜” 
으음.. 오늘은 가스파초와 빠에야가 좋겠어.” 
“시발, 진짜 귀찮은 것만 시키지?” 
“날 내쫓을 생각을 한다며, 거짓말이었군?” 
아......” 
피식
 웃음소리를 내며 제 볼에 입을 맞추고 거실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는 알베르토의 모습에 괜스레 짜증이 났다. 토마토 하나를 꺼내 던지니 알베르토 녀석은 에피타이전가? 맛있게 먹겠네라며 던진 토마토를 한입 베어 물며 제 방향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오!! 진짜!“ 
“맛있는 저녁 기대하고 있겠네,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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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canción de cuna

2015. 8. 16. 00:24 | Posted by 아뮤엘

알고 있었다. 네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만난 것이었는데. 금방 떠날 거라던 너는 하루, 이틀 조금씩 돌아가는 날짜를 미루었다. 처음에는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지상의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구나.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너와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잊고 말았다. 네가 이곳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오랜만에 같이 산책을 제 손을 이끄는 너의 손을 귀찮다며 쳐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녀올게. 라고 약간은 씁쓸한 말투를 하며 집을 나서는 너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평소에도 같은 일이 몇 번 있었기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들고 있던 설계도를 마저 작성하였다. 열매가 달게 잘 익었다며 바구니 한가득 열매를 따온 녀석에게 잘했다고 칭찬하고 거의 마무리된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미 완벽한 설계도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더 확인해보고 나서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몇 시간이나 앉아서 작업했기 때문일까?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부엌으로 가니, 요리를 하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짙은 고동색의 머리와 남자인 자신이 봐도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에서 꼭 껴안았다. 놀랐는지 흠칫 떨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녀석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하던 일 하라고 하자 긴장으로 경직된 손놀림으로 야채를 씻었다. 녀석의 반응이 우스워 그대로 안겨있는데 이내 익숙해졌는지 노련한 손놀림으로 야채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안아주고 싶었다. 그날따라 그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으니까. 알은 육류를 먹지 않았다. 야채와 과일도 적은 양만 먹었다. 저도 고기는 그리 즐겨 먹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해주는 채식요리가 좋았다. 그가 요리한 음식들을 식탁 위에 옮기고 자리에 앉자 맞은 편에 그가 앉았다. 평소보다 화려한 식탁. 특별한 날에나 할 법한 요리들이 식탁 가득 올라와 있었다.

“야 오늘 무슨 일 있냐?”

“......아... 그냥 오늘은 이렇게 차려 먹고 싶어서 그랬다네”

뜸 들이다 말하는 그의 태도가 신경 쓰였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많은 놈이라 평소에도 이렇게 뜸 들이는 일이 잦았으니까. 그 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그는 자신과 외출하기를 원했다. 이 녀석이 왜 이러지.. 거절할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서는 그의 모습을 그냥 넘기지 말걸. 계속 거절하기에 미안해 딱 한 번 그와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와 자신이 처음 만난 호숫가로 도시락을 싸들고. 평소 외출을 한다고 하면 들떠야 정상 일 텐데, 오늘따라 어두운, 억지로 웃는 듯한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힘들면 그냥 집에 가서 쉴까? 라고 물으니 괜찮다고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숫가에 도착해 같이 과일도 따고 물놀이를 실컷 즐겼다. 그러다 지쳐 풀밭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느덧 해는 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렉스.. 오늘 즐거웠나?”

“아? 넌 아닌 것처럼 말한다?”

“나도 즐거웠다네”

제 눈을 덮는 따뜻한 손길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즐겼다.

“렉스... 자네는 내가.. 없어도 괜찮겠나?”

“엉? 그게 무슨...”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가볍게 제압하였다. 그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 눈을 덮은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하였다.

“..무슨..일인데?”

말없이 저의 몸을 반쯤 일으켜 껴안는 그의 행동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감겨있던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새하얀 날개였다. 주변에 새라도 있나 싶었지만, 이렇게 큰 날개를 가질만한 생명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야.. 알.. 이상해. 너 날개가 달려 있어...”

“......”

“야.... 보라니까? 너 날개가...???”

새하얀 빛을 자랑하던 날개는 조금씩 검게 물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저를 안은 알베르토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그의 날개에 손을 뻗었다. 검게 물든 날개는 제 손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그의 팔에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 없이 저의 품에 기대어있는 그를 살짝 밀어내 제 어깨에 기대어 있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창백해진 얼굴. 다문 입가 사이로 피를 흘리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야.. 알 왜 그래.. 장난이지?”

“ㅁ...안...하,네”

그의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날개가 자신의 손길에 흩날려졌던 것처럼, 그의 몸도 조금씩... 지금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평소와 같이 그와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는데.

“야... 새꺄..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

“....우..ㄹ...지....마,ㄹ..게”

“차라리..꿈이라고... 해달라고”

“사,ㄹ....ㅎ...네”

고통스러울 텐데, 웃음을 지으며 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진 시야 때문에 자꾸 보이지 않았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이제는 상체만 남은 그의 얼굴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너의 제안을 거부하지 말걸. 너와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걸. 모든 것이 후회되었다. 이렇게 말없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두고 떠나는 그도 미웠지만, 지난 날들이 떠오르며 제 행동들이 다 후회가 되었다. 푸르게 빛나던 눈은 감기고, 어깨에 닿던 고동색 머리도 조금씩 흩어져갔다. 그가 들을 수 있도록,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울음에 잠긴 목소리를 애써 다듬고 그가 자주 불러주던 자장가를 떠올리며 노래하였다. 제 노랫소리가 그에게 닿기만을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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