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능력자가 배척되는 사회에서 그 많고 많은 능력 중 벌레를 다루는 능력을 갖춘 나와 너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려졌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물건을 훔쳐야 했고, 타인의 눈을 피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가혹한 현실에 절망했을 무렵 아이를 만났다. 상처를 담은 보랏빛 눈동자를 통해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거부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제 보금자리로 데려가 아이를 보살폈다. 빛을 잃은 눈빛은 점점 생기를 찾아갔고 아이는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가 자신에게 기대듯 자신은 아이에게 기댔으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결심했다는 듯 자신에게 말할 것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갔다. 보금자리로도 괜찮았을 텐데, 아이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숲 속이었다. 아이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손에서 나비와 잠자리를 불러내었다. 아이의 손에서 피어나는 곤충들을 보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이는 불안한지 곤충을 부르는 것을 그만두고 제 옷을 조심스레 잡았다.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이의 용기에 보답하듯 자신도 반딧불을 불렀다. 제 손짓을 따라 움직이는 반딧불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와 자신은 이런 부분까지 닮아있었다. 벌레를 다루는 능력. 자신은 반딧불만을 다루고 아이 벌레라는 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졌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도 닮아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더더욱 아이가 소중해졌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반신과도 같았다.
서로의 능력을 알게 된 날 이후, 우리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인 반딧불을 다루는 힘은 다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다는 것만이 장점인 이 능력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체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머리가 좋다는 것만이 장점인 자신과 달리 아이는 능력을 쓰지 않아도 체력과 싸우는 것이 뛰어났다. 아이를 지켜주던 자신은 어느새 아이에게 지켜지고 있었다. 아이는 싸우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 언제나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나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아이는 주로 나비를 불러 자신에게 보여주었다. 자신과 닮아 새하얗게 빛나서 좋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아이와 같이 지낸 지 2년이 지나갈 무렵, 한 남자가 자신들을 찾아왔다. 남자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에서의 삶에 지쳐있던 자신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손길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니었는지 남자를 경계하였다. 남자는 아이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는지 아이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남자의 손길을 쳐내고 자신을 뒤로 숨겼다. 남자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자신이 키워주겠다고, 소중한 사람을 지킬 힘을 주겠다고. 아이는 고민하더니 이내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아이와 자신은 카모라라는 조직에 거두어지게 되었다. 조직에 거두어지고 나서의 생활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사람을 붙여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과 반대로 아이는 남자와의 약속대로 무술을 배우게 되었다. 주로 체술을 배웠지만, 몇몇 무기를 다루기도 하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을 익혀나갔다.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아이의 몸에 상처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의사라는 직업으로 정했다. 다친 아이를 치료해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의료 쪽으로 진로를 잡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조직에서는 훌륭한 인재가 생겼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과 달리 아이는 현장에 나가 전투 요원으로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게 아이가 원한 것이었기에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하루라도 빨리 의사가 되어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런 자신의 마음이 하늘에 전해진 것일까? 어느 가을밤이었다. 자신의 부탁으로 마을에 나갔던 아이가 크게 다쳐 돌아왔다. 배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눈앞이 새하얘졌다. 아이가 부상을 입은 게 한두 번이던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쉽게 냉정해질 수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지혈을 했지만, 자신이 치료할만한 수준의 부상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죽을 네가 아니잖아? 제발..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차가워져 가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 순간 주변이 순간 밝아졌다. 반딧불...? 반딧불들은 아이의 몸에 몰려들었다.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반딧불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반딧불들은 자신의 손길을 무시하고 아이의 몸에 더 밀착하였다. 자신이 좀 더 유능했더라면, 의료에 대한 지식이 더 풍부했더라면... 눈앞이 뿌옇게 변하였다. 제 볼을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더 이상 아이에게 용건이 없는지 하나둘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흩어져가는 반딧불이 원망스러웠다. 아이의 상처를 헤집어 놓았겠지, 애초에 반딧불이 사람의 상처에 달라붙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남은 반딧불을 아이의 몸에서 치워내고 상처 부위의 지혈을 위해 거즈를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상처 부위에 식염수를 부어 굳은 피를 닦아내었다. 새하얗던 거즈가 붉게 물들고 붉게 물들었던 몸이 깨끗해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부상이 심각해 수술해야 했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다쳤던 적은 없었다는 듯이 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꿈인가 싶어서 제 볼을 꼬집자 통증이 느껴졌다. 꿈은 아니구나... 그 순간 누군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여긴.... 분명 상처가”
“리키, 분명 물건만 받는 즉시 돌아오기로 약속한 것 같은데?”
제가 부탁한 물건을 제 몸보다 중요하다는 듯 품 안에 안고 들어온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는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제 마음을 아는 건지 아이는 상처가 있던 부분을 쓰윽 보더니 자신에게 다시 기대었다. 상처는 없어졌지만, 피를 많이 흘렸다. 그건 자신도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미안.. 놈들이 매복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물건은 괜찮은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걱정하지그래?”
“그건 그렇고 상처는...”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이 뭔지 알겠지만, 자신도 확답을 주긴 힘들었다. 자신의 능력은 반딧불을 조종하는 것 외에도 치유하는 능력도 있었나? 제 품에서 잠든 아이를 토닥거리며 주변 능력자 동료들을 떠올렸다. 치유계 능력자들은 많았지만, 자신과 같이 다른 매개체를 이용하는 능력자는 없었다. 더더욱 살아있는 생명체를 매개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최초일 것이다. 능력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아이를 안아 침대 위에 눕혀놓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자리를 비우려 했으나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깼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아이는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잡은 건가? 아이가 옷을 놓아줄 것 같지는 않고 어쩔 수 없이 실험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잠이 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서로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라 단둘이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제 옷을 잡은 아이의 손길이 자신에게 하는 투정 같았다. 곁에 있어달라는. 제 옷을 잡은 아이의 손이 불편하지 않게 가디건을 벗었다. 아이의 팔을 뻗은 상태로 만들고 그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웠다. 마주 보이는 아이의 얼굴은 살짝 찡그려졌다가 이내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평소 주변 또래 친구들에게 애 취급 받는 건 싫다며 항상 미간에 힘을 주고 다녔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아니 자신밖에 없어야 했지만.
아이의 숨소리에 마음이 놓였는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는지 창밖으로 새벽하늘이 보였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키스하고 거실로 나왔다. 피로 범벅된 바닥과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피향으로 가득한 실내를 창을 열어 환기시켰다. 깔끔해진 집안을 뒤로하고 장식장에서 브랜디를 꺼내었다. 잔에 따라 한잔 마시고 나서야 아이가 받아온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포장지가 붉게 물들었지만, 물건은 괜찮은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포장지에서 꺼낸 물건은 보라색 튤립 조화 한 다발과 고급스러운 은시계였다. 아이에게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서 준비한 물건이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오려고 했지만, 급작스레 잡힌 일정에 아이에게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는데... 아이를 다치게 만들고 자신의 능력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해준 이 물건들을 보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시계는 따로 준비한 상자에 넣어 다시 포장하고 튤립은 화병에 담았다. 보라색 튤립. 너와 닮은 이 꽃을 내가 매일 집 안에 장식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을까? 사랑의 고백, 영원한 애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튤립, 그리고 네 눈동자를 닮은 보라색. 보라색 튤립 자체는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꽃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네가 하루라도 빨리 너를 닮은 이 보라색 튤립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릴 뿐. 사랑하는 리키, 오늘도 난 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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