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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샹바레] tulipani viola (데바 꽃말합작)

2015. 11. 1. 02:56 | Posted by 아뮤엘

내 곁에는 언제나 네가 있었다. 능력자가 배척되는 사회에서 그 많고 많은 능력 중 벌레를 다루는 능력을 갖춘 나와 너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려졌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살기 위해 다른 이의 물건을 훔쳐야 했고, 타인의 눈을 피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가혹한 현실에 절망했을 무렵 아이를 만났다. 상처를 담은 보랏빛 눈동자를 통해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거부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제 보금자리로 데려가 아이를 보살폈다. 빛을 잃은 눈빛은 점점 생기를 찾아갔고 아이는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가 자신에게 기대듯 자신은 아이에게 기댔으며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결심했다는 듯 자신에게 말할 것이 있다며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갔다. 보금자리로도 괜찮았을 텐데, 아이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숲 속이었다. 아이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손에서 나비와 잠자리를 불러내었다. 아이의 손에서 피어나는 곤충들을 보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이는 불안한지 곤충을 부르는 것을 그만두고 제 옷을 조심스레 잡았다.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이의 용기에 보답하듯 자신도 반딧불을 불렀다. 제 손짓을 따라 움직이는 반딧불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이와 자신은 이런 부분까지 닮아있었다. 벌레를 다루는 능력. 자신은 반딧불만을 다루고 아이 벌레라는 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졌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도 닮아있다는 점이 신기하고 더더욱 아이가 소중해졌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반신과도 같았다.


서로의 능력을 알게 된 날 이후, 우리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인 반딧불을 다루는 힘은 다룬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다는 것만이 장점인 이 능력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체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머리가 좋다는 것만이 장점인 자신과 달리 아이는 능력을 쓰지 않아도 체력과 싸우는 것이 뛰어났다. 아이를 지켜주던 자신은 어느새 아이에게 지켜지고 있었다. 아이는 싸우는 것이 익숙하다는 듯 언제나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나 둘만의 시간을 보낼 때면 아이는 주로 나비를 불러 자신에게 보여주었다. 자신과 닮아 새하얗게 빛나서 좋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아이와 같이 지낸 지 2년이 지나갈 무렵, 한 남자가 자신들을 찾아왔다. 남자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에서의 삶에 지쳐있던 자신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손길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아니었는지 남자를 경계하였다. 남자는 아이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는지 아이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남자의 손길을 쳐내고 자신을 뒤로 숨겼다. 남자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자신이 키워주겠다고, 소중한 사람을 지킬 힘을 주겠다고. 아이는 고민하더니 이내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아이와 자신은 카모라라는 조직에 거두어지게 되었다. 조직에 거두어지고 나서의 생활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머리가 좋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사람을 붙여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고, 자신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자신이 공부하는 것과 반대로 아이는 남자와의 약속대로 무술을 배우게 되었다. 주로 체술을 배웠지만, 몇몇 무기를 다루기도 하였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을 익혀나갔다.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아이의 몸에 상처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의사라는 직업으로 정했다. 다친 아이를 치료해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의료 쪽으로 진로를 잡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조직에서는 훌륭한 인재가 생겼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과 달리 아이는 현장에 나가 전투 요원으로서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게 아이가 원한 것이었기에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하루라도 빨리 의사가 되어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런 자신의 마음이 하늘에 전해진 것일까? 어느 가을밤이었다. 자신의 부탁으로 마을에 나갔던 아이가 크게 다쳐 돌아왔다. 배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눈앞이 새하얘졌다. 아이가 부상을 입은 게 한두 번이던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쉽게 냉정해질 수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지혈을 했지만, 자신이 치료할만한 수준의 부상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죽을 네가 아니잖아? 제발..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심정으로 차가워져 가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그 순간 주변이 순간 밝아졌다. 반딧불...? 반딧불들은 아이의 몸에 몰려들었다.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반딧불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반딧불들은 자신의 손길을 무시하고 아이의 몸에 더 밀착하였다. 자신이 좀 더 유능했더라면, 의료에 대한 지식이 더 풍부했더라면... 눈앞이 뿌옇게 변하였다. 제 볼을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더 이상 아이에게 용건이 없는지 하나둘 아이의 몸에서 떨어져 흩어져가는 반딧불이 원망스러웠다. 아이의 상처를 헤집어 놓았겠지, 애초에 반딧불이 사람의 상처에 달라붙다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남은 반딧불을 아이의 몸에서 치워내고 상처 부위의 지혈을 위해 거즈를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고 상처 부위에 식염수를 부어 굳은 피를 닦아내었다. 새하얗던 거즈가 붉게 물들고 붉게 물들었던 몸이 깨끗해졌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부상이 심각해 수술해야 했던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다쳤던 적은 없었다는 듯이 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꿈인가 싶어서 제 볼을 꼬집자 통증이 느껴졌다. 꿈은 아니구나... 그 순간 누군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여긴.... 분명 상처가”

“리키, 분명 물건만 받는 즉시 돌아오기로 약속한 것 같은데?”

제가 부탁한 물건을 제 몸보다 중요하다는 듯 품 안에 안고 들어온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는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제 마음을 아는 건지 아이는 상처가 있던 부분을 쓰윽 보더니 자신에게 다시 기대었다. 상처는 없어졌지만, 피를 많이 흘렸다. 그건 자신도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미안.. 놈들이 매복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물건은 괜찮은가?”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걱정하지그래?”

“그건 그렇고 상처는...”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이 뭔지 알겠지만, 자신도 확답을 주긴 힘들었다. 자신의 능력은 반딧불을 조종하는 것 외에도 치유하는 능력도 있었나? 제 품에서 잠든 아이를 토닥거리며 주변 능력자 동료들을 떠올렸다. 치유계 능력자들은 많았지만, 자신과 같이 다른 매개체를 이용하는 능력자는 없었다. 더더욱 살아있는 생명체를 매개로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최초일 것이다. 능력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아이를 안아 침대 위에 눕혀놓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자리를 비우려 했으나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깼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아이는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잡은 건가? 아이가 옷을 놓아줄 것 같지는 않고 어쩔 수 없이 실험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잠이 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직에 들어오고 나서 서로에게 주어진 일을 하느라 단둘이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제 옷을 잡은 아이의 손길이 자신에게 하는 투정 같았다. 곁에 있어달라는. 제 옷을 잡은 아이의 손이 불편하지 않게 가디건을 벗었다. 아이의 팔을 뻗은 상태로 만들고 그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웠다. 마주 보이는 아이의 얼굴은 살짝 찡그려졌다가 이내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평소 주변 또래 친구들에게 애 취급 받는 건 싫다며 항상 미간에 힘을 주고 다녔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아니 자신밖에 없어야 했지만.


아이의 숨소리에 마음이 놓였는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는지 창밖으로 새벽하늘이 보였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키스하고 거실로 나왔다. 피로 범벅된 바닥과 주변을 정리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피향으로 가득한 실내를 창을 열어 환기시켰다. 깔끔해진 집안을 뒤로하고 장식장에서 브랜디를 꺼내었다. 잔에 따라 한잔 마시고 나서야 아이가 받아온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포장지가 붉게 물들었지만, 물건은 괜찮은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포장지에서 꺼낸 물건은 보라색 튤립 조화 한 다발과 고급스러운 은시계였다. 아이에게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서 준비한 물건이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오려고 했지만, 급작스레 잡힌 일정에 아이에게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는데... 아이를 다치게 만들고 자신의 능력의 새로운 면을 알게 해준 이 물건들을 보자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시계는 따로 준비한 상자에 넣어 다시 포장하고 튤립은 화병에 담았다. 보라색 튤립. 너와 닮은 이 꽃을 내가 매일 집 안에 장식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을까? 사랑의 고백, 영원한 애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튤립, 그리고 네 눈동자를 닮은 보라색. 보라색 튤립 자체는 영원하지 않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꽃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네가 하루라도 빨리 너를 닮은 이 보라색 튤립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릴 뿐. 사랑하는 리키, 오늘도 난 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로라드렉] Happy Halloween!! 합작

2015. 10. 31. 23:25 | Posted by 아뮤엘

“Trick or Treat!”

마녀로 분장한 두 소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아, 벌써 할로윈인가?”

“그러니까 빨리 간식을 주는 건 어때요?”

“에엣.. 저는 딱히 안 주셔도....”

“으음.. 기다려봐라”

분명 업무 중 당이 떨어져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다 놓은 것이 있을 터인데... 각종 물건으로 무질서하게 채워져 있는 서랍을 뒤적거리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위해 준비하는데 가져가는 게 좋을 것이라며 챙겨준 물건이 생각났다.

“분명 여기에... 아, 찾았다”

책상 위 서류들을 한쪽으로 치우자 작은 봉투가 보였다. 봉투 안에는 아이들을 겨냥한 듯 귀엽게 포장된 쿠키가 들어있었다. 두 봉지를 꺼내 아이들의 손에 들린 바구니에 넣자 그제야 만족했는지 배시시 웃어 보였다. 마저 업무를 하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아이들이 제 옷깃을 잡아당겼다. 무슨 용건이 더 남은 것일까? 몸을 숙여 시선에 맞추자 아이들은 고맙다고 제 볼에 입을 맞추며 다음 타켓을 향해 달려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에게 비밀로 해야지, 그가 알면 분명 질투할 게 뻔하였다. 할로윈이라..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볼까?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고 윌라드에게 오늘은 일찍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전하니 알았다며 들어가 쉬라는 인사를 받고 회사에서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할로윈인데 간단하게라도 파티 음식을 준비할까 싶어 마트에 들렸다. 마트는 할로윈 관련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관련 물품들이 할인하고 있었다. 딱히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식재료를 골라 계산대로 향하는데 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라... 녀석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뭐, 할로윈이니까 분위기로 하나쯤은 괜찮겠지”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평소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일부러 일찍 퇴근했건만,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현관문의 잠금을 풀고 들어가자 어두운 집안이 자신을 맞이하였다. 신을 벗고 곧장 부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온 식재료를 냉장고 안에 넣었다. 요리하기 전 오늘 옷이 정장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방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집에 있었냐?”

“아아, 뭘 그리 사왔는지 물어봐도 될까?”

“흐음...”

“지금 이 행동에 대해서 나는 뭐라 생각하는 것이 좋을까, 렉스”

질척하게 붙어 애정행각을 하는 녀석을 팔꿈치로 살짝 밀어내고 주머니에 넣어둔 은 십자가를 꺼내 들었다. 살짝 몸을 틀어 십자가로 녀석의 입을 꾸욱 눌렀다. 사자(死者)는 은에 약하다고 하던데 역시 미신이었나? 십자가를 쥔 제 손을 마주 잡아오는 알베르토의 얼굴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알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가끔 잊고 지내는 것 같았다.

“네가 죽은지도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넌...”

창백한 피부와 차가워진 너의 품 안에서 매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까?

“후회하고 있나, 렉스?”

차가운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내가 후회할 리 없잖아. 죽은 그를, 그의 품을 잊지 못해 불렀다. 바로 2년 전 오늘, 네가 죽은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할로윈은 죽은 영혼이 돌아오는 날, 그래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너를 돌려달라고, 다시 한 번 네 품에 안길 수 있게 해달라고 텅 빈 네 방, 네 체취가 남아있는 옷들을 끌어안으며 울며 빌었다. 그러다 지쳐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으로 누군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는 물었다.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길 원하냐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 그에게 답하였다. 그를 돌려달라고.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갑지만 익숙한 손길.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겨우 뜨자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너의 얼굴이 살짝 미소 지으며 인사해왔다.

“보고 싶었네, 렉스. 매일 울고 제 몸을 돌보지 않으니, 걱정되어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잖나.”

“먼저 간 네놈이 잘못이지”

참으려고 했지만, 뿌옇게 흐려지는 눈앞에 이불을 끌어올려 제 모습을 숨겼다. 이불 위로 토닥이는 한없이 다정한 손길에 눈물이 멎지 않았다. 죽었던 네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 날. 오늘은 너와 다시 이어진 소중한 날이다.

[로라드렉] empaparse

2015. 10. 11. 03:32 | Posted by 아뮤엘

철이 들었을 무렵,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가문에 대해서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으니까. 부모님은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며 자신을 한계까지 내몰았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고 나면 잘했다, 그래야 내 아들이지.라고 말하며 다음 목표를 내밀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따뜻했으니까.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주었으니까. 주변에서는 자신을 천재라고 불렀다. 어린 나이에 창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난데, 지식을 습득하는 것 또한 뛰어나다며 자신을 칭찬하기 바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하나같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동경, 두려움, 악의, 견제 등이 섞인 시선은 자신을 지치게 하였지만, 부모님이 지어주는 그 미소에 목말라 있던 나는 더더욱 노력하였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날 바라봐 주실 거야. 날 사랑해주실 거야. 그렇게 믿고 있었다.

세 살이 되던 해였다. 자신을 가르치던 선생님들로부터 더는 배울 것이 없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더 좋은 선생님들을 데리고 올 테니, 오늘 하루는 쉬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가끔 주어지는 휴식시간이 좋았다. 아버지가 정한 일정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나는 재빨리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였다. 책꽂이에서 별에 대한 책들을 한 권, 한 권 찾아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왔다. 별은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며 배우는 걸 금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방에 있는 책이라곤 별에 관련된 동화 한 권뿐이었다. 아버지의 눈에 닿지 않게 책 사이에 잘 숨겨놓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들키지 않았다. 만약 들켰다면 바로 압수당하였을 것이다. 가져온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보니 어떻게 숨겨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분명 책장에 꽂으면 들킬 것이 분명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였다. 침대 밑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길게 늘어진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침대 밑에 가져온 책들을 넣었다. 걷어내었던 이불을 내려 잘 가려졌는지 확인하고 책장에서 창에 대한 책을 꺼내 들어 소파에 앉았다. 솔직히 지금 심정으로는 가져온 책들을 읽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상황이라 어제 읽던 책을 마저 읽기로 하였다. 창에 관련된 책도 좋았으니까. 한 장, 두 장 넘기기 시작한 책은 벌써 끝을 달리고 있었다. 창의 쓰임새와 사용방법에 대해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 좋았지만,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창을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다면...”
펜을
쥐고 고민하고 있을 무렵 방문이 열렸다. 아버지였다. 새로운 선생님을 구해왔다며 내일부터 수업이 시작되니 일찍 자라는 아버지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리고 잠을 자는 시늉을 하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침대에서 나왔다. 밑에 숨겨 놓았던 책 한 권을 꺼내 흐릿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별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위대하고 흥미로운 세계였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혼자 공부하기 시작한 별의 세계는 자신을 사로잡았다. 아버지가 새로 데려온 선생님이 앞에서 뭐라고 하던 자신의 머릿속에는 별로 가득 차 있었다. 별들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저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증은 더해갔다. 별에 빠지면 빠질수록 다른 일들에 소홀히 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의 행동은 아버지에게 보고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을 꾸짖었다. 생각이 있냐며,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는 말이 주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무엇에 홀린 듯 나는 아버지께 처음으로 내 의견을 말하였다. 천문학을 배우고 싶다고. 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말한 내 의견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아버지는 그런 쓰레기 같은 학문으로 무얼 하려고 하냐고, 가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 따위 생각도 하지 말라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기사학교에 들어가 기사가 될 준비나 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듣고 방으로 돌아왔다. 뭔가 부자연 스러운 방...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대 밑으로 들어가니 숨겨 놓았던 책들이 다 사라졌다. 책만이라도 돌려달라고 아버지께 간청하기 위해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집무실의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숨을 죽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대화의 내용은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가문의 흠이 되기 전에 빨리 학교에 보내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학교에 보내느니 자신들이 직접 감시를 하며 가르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대답하고 있었다. 아아.. 내 편은.. 없었던 거구나. 그저 가문의 명예를 중시해 자신도 가문의 명예를 위한 하나의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더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가 조용히 짐을 쌌다. 자신은 그 찰나의 미소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자신은 그저 그들의 장식품이었다는 사실이,그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외면하기에는 자신이 겪은 일들이 생생하게 와 닿았기 때문에 그저 이 저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집사를 통해 기사학교에 들어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을 전하였다. 아버지는 가서 정신 차리고, 가문에 흠이 가지 않도록 타인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하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씀하셨다. 그래, 저택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어린 자식이 저택을 벗어나 먼 길을 떠나는데도 자식에 대한 걱정보다는 가문을 더 신경 쓰는 부모님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그 작은 미련마저 사라졌다.

기사학교에 들어가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의 가문을 보고 달라붙는 이들을 보니 짜증이나 작게 성의를 표시한 것이었는데, 조금 과했던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라 수업시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나 천문학을 공부하였다. 학교의 선생이라는 작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아직 가르치지 않은 내용으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 했지만 역으로 자신이 틀린 부분을 지적했더니 그 뒤로 자신을 건드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 내에서 자신의 악명은 쌓여만 갔고, 가문에서도 편지가 날라왔지만, 편지는 좋은 땔감이 되었다. 거기다 2인 1실이 기본인 기숙사에서도 다들 자신과 같이 방을 쓰는 것을 꺼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혼자서 쓰게 된 것도 좋았다. 시간은 흘러 15살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이 맞는 선생을 만나 자신이 몰랐던 영역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수확이었다. 직접 창을 만들어보기도 하였으며 밤하늘이 맑은 날이면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별들을 관측하기도 하였다. 저택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즐기며 나만의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주변에서는 자신을 괴짜,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라며 손가락질했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사는 것은 이미 질릴 대로 질렸으며, 타인의 시선 따위는 이제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삶. 내가 원했던 것들이었을 텐데 창밖을 보면 삼삼오오 모여 노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더러워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가슴 한구석을 타고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에 창문을 닫고 침대에 몸을 던진 채 눈을 감고 그 감정을 잊고자 잠을 청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를 최소로 하며,자신이 가진 상처를 숨기고자 가슴 깊숙이 숨기고 숨겨 수많은 자물쇠로 꼭꼭 잠가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다. 숨기는 것이 익숙해져 이제는 덤덤해졌을 무렵 네가 내 앞에 나타났다. 2살 어린 올곧은 눈을 가진 알베르토 로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너. 소설 속에 나오는 기사처럼 정의를 실천하는 기사가 되고 싶다던 너는, 나의 삶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다들 기피하던 나와 같이 방을 쓰겠다고 나서는 너의 모습에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네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 다른 이들에게 했던 것보다 배는 심하게 굴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트집을 잡거나, 너의 물건을 어질러 놓는 등의 행위들. 너는 그때마다 나를 찾아와 또박또박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말로 해달라며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새로운 창을 연구하고 있자면 어느 순간 옆에 앉아 의견을 덧붙이기는 너의 모습에 놀라 저리 꺼지라며 연구노트를 숨겼지만, 너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어느 순간부터 연구할 때 네가 옆에서 조언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렇게 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가와 나의 생활 하나하나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꺼지라고, 필요 없다고 거절하고 외면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는 너의 모습에 나는 조금씩 너에게 물들어갔다.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간단하게 풀고 옆에서 잠든 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려 보인다고 놀렸더니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었는지 조금씩 기르기 시작한 수염. 살짝 흐트러진 고동색 머리카락과 감긴 두 눈. 매일 자신에게 마법이라도 걸듯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는 입. 조금씩 나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던 너는 결국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자물쇠로 꽁꽁 잠가 숨겨두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풀어나갔다. 소중하다는 듯 천천히 조심스럽게. 깨달았을 때는 하나의 자물쇠만 남아있었다. 그것도 곧 너의 손에 열렸지만.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니

굳게 감겨있던 눈이 떠지고 내가 좋아하는 푸른색 눈 안에 내 모습이 담겼다.
“사랑하네, 렉스”
“..아아
, 나도 사랑한다.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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