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기둥이었던 두 분이 없다. 그 사실만으로 모두가 힘들어했다. 큰형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업무와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이른 나이에 즉위하게 된 부담감 때문일까?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 많다며 최소한의 식사, 수면 시간 등을 제외하고서는 집무실과 서재를 오가는 생활을 하였다. 작은 형은 방문을 잠그고 자신을 가뒀다. 방 앞에 음식과 형이 원한 물품들이 담긴 트레이를 놓으면 빈 접시와 필요 물품이 적힌 종이를 놓는 것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거부하였다. 형들이 걱정되어 찾아가 봤다. 한눈에 봐도 수척해진 큰형은 자신에게 괜찮냐고 물어왔고 작은 형은 문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칼들이 연주하는 레퀴엠에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막내 도련님은 괜찮으십니까? 집사장이 물었다. 나는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괜찮지 않을 리가 없지.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 번은 생각한다.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부모님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신다는 걸 막는 것이 좋았을까? 아니, 가족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간 일들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후회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잠시 눈을 붙이면 악몽이 찾아왔다. 꿈은 항상 똑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숲을 뛰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살기 위해 뛰고 또 뛴다. 하지만 길의 끝은 보이지 않고 결국 지쳐 어둠에 먹히는 것으로 끝났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불쾌하기보단 그저 두려웠다. 형들도 부모님처럼 사라져서 혼자 남게 되는 건 아닐까? 라는 불안감에 몸을 끌어안았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축축해진 시트와 옷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니 테이블 위에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 토스트를 입에 물고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앉아 남은 음식을 먹으며 머리를 말렸다. 짧은 머리라 그런지 식사를 끝마쳤을 무렵에는 거의 다 말라 있었다.
“다 먹었으니 움직여볼까?”
식기들을 트레이에 옮겨 그대로 끌고 나갔다. 1층 식당에 도착하니, 도련님~하고 부르며 집사장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트레이를 근처에 있던 메이드에게 부탁하고 집사장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걷고, 또 걸어서 저택에서 살았던 자신이 처음보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어둡고 좁은 복도를 따라 간 곳에는 커다란 문이 놓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간 곳에는 역대 조상들의 얼굴이 맞이하고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초상화뿐만이 아니라 유품으로 보이는 물건들도 놓여 있었다. 보아하니 그 사람을 나타냈던 물건들을 같이 전시한 것 같았다. 호기심이 발동해 방 안을 둘러보는데 집사가 헛기침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제야 이곳에 온 목적이 궁금해졌다. 아니, 알 것도 같았다. 왜냐면 이곳이 만약 역대 가주와 그의 부인의 초상화와 물품이 있는 곳이라면 이곳에 없는 것이 있었으니까. 자기 생각이 적중했는지 집사는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신이 왜 나를 찾아왔는지. 보통이라면 큰형이, 큰형이 바쁘다면 작은형이 하는 것이 옳았겠지만, 지금은 두 형이 모두 힘든 상태였다. 큰형은 일 때문에 바쁘고 작은 형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나마 괜찮은 내가 부모님의 물품을 정리하여 이곳에 초상화와 함께 보관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다행히 초상화는 생전에 그려놓은 것이 있어 그것을 놓기로 하였지만, 문제는 부모님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괜찮다고는 말했지만, 정말 괜찮은 걸까? 스스로 되물어 봤지만, 답은 없었다. 그래 이렇게 끙끙 앓으며 피하느니 차라리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나을테지란 생각에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 일손이 비는 집사와 메이드를 불렀다. 해야 할 일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부모님의 방과 집무실 등으로 나눠 정리를 시작했다. 나는 일단 부모님의 방을 들려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형들과 찾아온 방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검을 배우면서 발걸음을 멈춘 곳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방보다는 어머니가 아끼시던 정원이나, 서재에서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며칠 사이 뽀얗게 먼지가 내린 방안을 보며 가슴이 저려왔다. 가만히 서 있으면,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어머니가 아끼던 보석함, 아버지가 아끼시던 술들, 그리고 어머니의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 주류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시던 술만 전시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큰형에게 보냈다. 보석함은 통째로 보관하기로 하였고 일기장은 내가 따로 챙겼다.
하나, 둘 저택 곳곳에 남겨진 부모님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숨죽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추려낸 물건에 대해 지시를 내리고 방을 나섰다. 뒤따라오던 집사장이 말했다. 무리할 필요 없다고. 그 속에 품은 뜻을 잘 알기에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미소로 답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나오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소리를 내 웃어 보이고 싶어도 미소를 짓는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괜찮지 않구나, 나. 풀리는 다리, 자꾸만 힘이 빠지는 신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흘리듯 뒤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방을 향해 달렸다. 다른 이들 앞에서 무너지고 싶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