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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viaje

2015. 7. 27. 03:31 | Posted by 아뮤엘

변덕이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간다는. 회사에서는 우리 사이를 친한 친구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둘이 같이 취미생활이나 즐기면서 쉬려고? 라고 웃으며 질문해왔다.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될 것을 이 고지식한 새끼는 바닷가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설명을 하였다. 오오~ 가을 바단가? 좋네~ 근데 사내자식 둘이서 놀러 가기에는 좀 그렇지 않냐? 에이 저 녀석들도 남잔데 거기서 여자를 꼬시겠지. 그런가? 이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놈들을 뒤로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섰다. 회사에서 돌아와 간단하게 몸을 씻고 갑갑한 정장에서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로 떠나기로 했기에 서둘러서 짐을 챙겼다. 별장에 웬만한 건 준비되어있으니 간단하게 챙기라는 그의 말을 떠올리고 간단히 옷과 지갑 따위를 여행 가방에 챙겼다.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저녁에는 쌀쌀했기에 즐겨 입는 가디건을 꺼내 입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언제 온 건지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는 알베르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은 다 쌌냐?”

“뭐, 별장에 대충 준비되어 있으니 간단한 것만 챙겼네”

“그래? 그럼 뭐.”

트렁크를 열어 여행용 가방을 넣고 뒷좌석에 앉았다.

“왜 거기에 앉나?”“이 자리가 편하니까.”

“내 옆에 앉게”

“싫다.”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이거 싫거든? 말도 아니고 탈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고”

“멀미인가. 약이라도 챙겨올걸. 괜찮겠나?”

“그냥 자면 되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넓은 뒷좌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저를 배려하는 것인지 잔잔한 노래를 틀고 운전을 하였다. 전날 늦게까지 연구를 해서 그런지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몇 시간쯤 잤을까? 잘 달리던 차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뜨니 앞좌석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알?”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비비고 불을 켜 차 안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도로인가? 으스스한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나무만 가득할 뿐 알베르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야, 알!”

“불렀나, 렉스?”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에 놀라 뒤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새꺄 놀랐잖아”

“아아, 깊이 잠들었길래. 깼을 거라곤 생각 못 했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냐? 길이라도 잃은 거냐?”

제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반항하듯 살짝 쳐내자 키득거리며 웃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들릴 곳이 있어 잠시 멈춘 거라네. 흐음.. 그건 그렇고”

“뭐, 뭔데. 저리 가 새꺄”

저를 훑어보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밀쳐내고 차에 올라타 차 문을 잠갔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열어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뒷좌석에 길게 누워 창가로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늘 가득히 박힌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생각해보니 춥던데 괜스레 미안해져 문을 열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잠겼던 문이 열리며 알베르토가 안으로 들어왔다.

“..ㄴ....어떻게?”“아무리 놀랐어도 그렇지. 밖에다 사람을 버리다니 내가 차 열쇠를 두고 갔으면 어쩌려고 했나?”

“아니.. 지금 열ㄹ...”

“늦었네, 렉스.”

제 몸 위로 올라타는 알베르토를 손으로 밀어냈지만, 위에서 누르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끈으로 제 손목을 묶는 그의 행동에 저항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만, 해. 새꺄. 도로 한가운데서 뭐하는 짓이야.”

“아무도 오지 않으니 걱정 말게, 렉스”

“새꺄. 그 말이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불을 끄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는 미소를 띄우며 켜놓았던 불을 끄고 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맞추었던 입술을 떼고 제 상의에 손을 넣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나쁜 어린이는 벌을 받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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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lluvia

2015. 7. 26. 00:10 | Posted by 아뮤엘

창가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자처럼 아름다운 음을 연주하였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들고 있던 노트를 내려놓았다. 어쩐지 춥더라니. 작게 투덜거리며 낡은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춥다고 느끼기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연구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한기가 몰려왔다. 일어난 김에 따뜻한 차라도 끓여 마실까 싶어 연구실에서 나와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을 동안 찬장에서 찻잔을 꺼냈다. 최근 즐겨 마시는 찻잎을 꺼내 세팅을 마치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던 드렉슬러는 티푸드가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티푸드를 같이 즐기는 것보다 차 자체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이었지만, 오늘따라 티푸드를 같이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가자니 창가로 보이는 세찬 비가 내리는 바깥 풍경에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티푸드를 안 먹기에는... 이럴 때마다 저택에서 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적어도 저택에 있을 때는 편했으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 어떡하지”

물은 끓기 시작했는지 작은 소음을 내며 수증기를 내뿜었다. 불을 끄고 의자에 앉아 이대로 차를 마실까, 아니면 저 밖으로 내리는 세찬 비를 뚫고 티푸드를 사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궂은 날씨에 저를 찾아올 이는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잘못 들었겠지. 라고 생각하며 팔팔 끓는 물로 찻잔을 데웠다. 다시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현관으로 가 살짝 문을 여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베르토?”

“아아.. 잘 지냈나?”들고 온 우산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듯 반쯤 꺾여있었다. 손님을 밖에 세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 욕실에서 수건을 꺼내 왔다. 수건을 건네주자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리며 꺼내보라며 가방을 건네주었다. 뭐지? 라는 생각을 하며 연 가방 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게의 쿠키와 컵케이크가 잘 포장되어 있었다. 세찬 비에 젖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물기 하나 없는 모습에 놀라 알베르토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온몸으로 지켰냐?”

“젖으면 저 비를 뚫고 가지고 온 의미가 없으니까”

“미련한 놈”

툴툴거리며 그가 입을 만한 옷을 건네주자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젖은 그의 옷을 빨래바구니에 넣고 물로 흥건한 바닥을 치우자 샤워를 마쳤는지, 그가 거실로 나왔다. 도와주겠다는 그의 말에 다 끝났으니 가서 앉아있으라고 말하고 청소를 마무리하였다.

“그건 그렇고 티푸드라니. 너 이거 싫어하지 않냐?”

평소 단것을 즐기지 않는 알베르토를 떠올리며 말하자 그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늘 이 시기가 되면 자네가 찾지 않나”

“엉?”

“매해 장마철이 되면 비는 내리는데 차와 같이 먹을 티푸드가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

“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을 그가 기억할 거라고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뒤따라 온 건지 뒤에서 끌어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놔라. 새꺄”

“말하다 말고 어딜 가나. 렉스”

“너 추울까 봐 차 끓여 주려고 한다. 왜 싫어?”

품에서 저를 놓지 않는 그를 팔꿈치로 치니 제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웃으며 떨어졌다.

“맛있는 차 기대하겠네.”

“걷다가 넘어졌으면 좋겠네. 진짜”

키득키득 웃으며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말게라고 말하며 소파에 앉는 그의 뒤통수를 향해 빈 가방을 던지고 다시 불을 켜 물을 끓였다. 허전했던 빈자리에 채워줄 티푸드를 세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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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incubo (Side.A)

2015. 7. 21. 02:44 | Posted by 아뮤엘

눈을 뜨니 익숙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뒤로하고 욕실로 나섰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구운 식빵과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시각까지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아침을 먹으며 어제 회사에서 들고 온 잔업을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각까지 한 시간가량 남아있었다. 평소 잠에서 잘 깨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식기와 서류를 정리하였다. 평소 입는 정장 대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갑과 열쇠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한 십분 쯤 걸었을까? 저 멀리 그의 집이 보였다.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어느새 도착한 그의 집은 정적만이 흘렀다. 자신의 예상대로 푹 잠을 자는 모양이라, 굳게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을 반기는 것은 어질러진 집안의 풍경이었다.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에 서툰 그였기에 가끔 자신이 놀러 와 정리해주었다. 널브러진 물건들을 집어 정리하며 집의 주인이 있을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이불 속에 파묻힌 그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이불을 걷어냈다. 푹 잠이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악몽이라고 꾸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낮은 신음을 내는 그의 모습에 놀라 조심스레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게, 렉스”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인지 감겼던 눈이 떠졌다. 잠에서 막 깨서 초점이 맞지 않는지 흐릿하던 눈이 곧 초점을 찾았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안겨오는 그의 모습에 조심스레 껴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에 이상이 생겼다. 평소라면 장난치며 먼저 다가올 그인데, 선을 긋고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 다가가 묻기도 하고, 그의 집에 찾아가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의 심장에 상처를 내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심장만이 제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그가 자신을 멀리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매달리는 것도 지쳐갔다.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적절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그가 먼저 지쳐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가 나를 대하듯 나도 그에게 냉담하게 대하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같이 웃고 떠들며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행동하였다.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가오지 않는 그의 모습에 내가 먼저 지쳐갔다.

“날 미치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대 성공이야, 렉스.”

정신을 차리니 물건이 깨지고 부서진 어질러진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자신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이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 봐 렉스. 내가 미쳐가고 있어. 너 때문에.”


어두워진 하늘에 비가 내렸다. 평소와 같이 야근을 마치고 서류를 정리하는데 크루그먼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작게 미소를 띠며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괜히 짜증이 났다. 그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정리하고 인사를 한 뒤, 회사에서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크루그먼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서랍 깊숙이 숨겨 놓았던 그의 집 열쇠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섰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불이 꺼진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질러진 물건들이 자신을 반겼다. 물건들을 피해 그의 집을 대충 둘러보았다. 밥은 제대로 먹는 건지 냉장고 안에는 식재료대신 음료들이 가득했다. 부엌에서 나와 그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체향이 가득 배어 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언제쯤 돌아오는 것인지. 크루그먼이 그에게 가진 감정은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가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길래 이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 숨을 죽이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나더니 이내 거실에서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몸을 일으켜 문에 귀를 대고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음료를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별일 아닌가 싶어 나가려고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에라도 나가 우는 그를 끌어안아 주고 싶었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 그 마음을 잠시 접었다.

“....보고 싶어. 알베르토”


울음소리가 멎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문 앞에 서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울음소리 대신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지 않게 문고리를 돌려 나가니 무릎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들린 맥주 캔을 치우고 그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렇게 혼자 아파할 거면 날 피하지나 말던가. 이래서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잠이 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제 쪽으로 몸을 돌려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입가에 작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원망할 때는 언제고 결국 그의 작은 행동에도 풀어지는 제 모습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데, 정작 그는 항상 그 작은 어깨에 모든 걸 짊어졌다. 항상 제 속내는 숨기는 그의 행동이, 혼자 끌어안고 상처받는 그의 모습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인가, 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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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incubo (Side.D)

2015. 7. 20. 23:36 | Posted by 아뮤엘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네가 죽는 꿈을. 구하려고 애썼지만, 계속해서 죽는 너를 구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을. 깨어나고 싶어도 깨지지 않는 꿈에 정신이 조금씩 무너졌다. 죽지 마. 제발 살아줘. 또다시 너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나는 차가워진 너의 몸을 끌어안고 울었다. 제발 이 지독한 악몽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ㄹ...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낯익은, 자신이 좋아하는 저음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감긴 눈을 뜨자 흐릿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더 눈을 깜박이자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해지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너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손을 뻗어 너를 껴안았다. 아아, 따뜻하다. 품 안에 퍼지는 온기에 악몽이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네가 죽다니, 그럴 리 없잖아. 그렇지?


악몽의 영향일까? 네가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평소라면 개꿈이라며 웃어넘겼겠지만, 너와 관련된 꿈이었으니까. 악몽 속 네가 죽는 원인은 늘 한결같았기에. 나는 자연스레 너와 멀어졌다.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서 느낀 것일까? 저로서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하듯 똑같은 태도로 널 대한 것이었으니까. 제가 잘못한 것이 있냐며 안절부절못해 하는 너의 모습을 외면하였다. 이편이 서로를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이었으니까. 그와 자신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이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멀어진 자신과 그의 관계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일상이었다. 밀린 업무에 짜증을 내는 타라라던가, 연이은 야근에 눈 밑이 거뭇해진 다이무스. 평소와 같은 일상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은 흘러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루 듯, 냉담하게 저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자신이 원한 것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이었는데. 다른 이들에게는 웃는 모습으로 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웃음없이 사무적으로 대하는 너의 태도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심장에 크고 작은 스크래치가 생겨났지만, 다 널 위한 거라며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끌어안았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윌라드가 오랜만에 술 한잔 어떠냐고 제안해왔다. 어차피 다음 날은 휴일이었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주 가는 펍에 들려 한잔 두잔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 술병이 쌓여있었다. 그만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윌라드에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펍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흐릿한 시야 속으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집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깜박거리는 가로등을 지나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에 나간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뒤로하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니 술기운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마시는 김에 한 잔 더 마시고 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맥주 한 캔을 꺼내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실에 놓인 소파에 기대어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집 안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제 모습이 우스웠다. 이런 모습을 네가 본다면 잔소리를 하겠지. 술에 취해서일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너와의 추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왔다.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프다.

“....보고 싶어.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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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드렉] bugia

2015. 7. 13. 22:58 | Posted by 아뮤엘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네가 날 버리고 멀리 떠나버리는 그런 꿈을. 예전이라면 네가 날 버릴 리 없는데, 그렇지? 하며 웃어넘겼을 일인데... 매몰차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난 너의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더러워졌다. 잘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를 많이 사랑했던 모양이다. 감은 눈 사이로 비집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문질러 닦지만 쉽게 멎지 않았다. 간신히 눈물을 추스르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오랜만에 쉬는 날이라 푹 잠이라도 잘까 싶었는데, 침대 옆 서랍을 뒤적거려 두통약을 꺼내 먹고 몸을 일으켰다. 세찬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커튼을 걷으니 회색빛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비가 내려서 그런가? 눅눅한 공기, 온몸이 끈적거리는 느낌에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전날 장을 봤기에 각종 식재료로 가득 차있었다. 아침은 잘 안 챙기는 편이기에 간단하게 맥주와 구운 빵 한 쪽을 들고 창가에 걸터앉았다. 비가 연주하는 노래는 그 어떤 노래보다도 구슬펐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아프게 만들었을까? 아니, 이 노래는 나를 위한 노래인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던가? 스스로의 모습이 우스웠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접시와 맥주 캔을 정리하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근 업무에 치여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이렇게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서재는 기분 좋은 책 냄새를 풍기며 자신을 맞이하였다. 저번에 서점에 갔을 때 새로 산 책을 꺼내어 읽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일에 치여 결국 읽지 못했던 책이었다. 책의 중반부쯤 읽었을까 무엇인가가 책 사이에서 떨어졌다. 책에 껴있던 책갈핀가? 조심스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책갈피를 집어 들었다. 책갈피 뒷면에는 dear. Dario 라고 익숙한 필체로 적혀있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뒤집으니 나와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보였다.

“...이게 뭐야...”

겨우 다잡았는데. 책 사이에 조심스레 책갈피를 꽂고 책장에 다시 꽂았다. 그리고 서재에서 나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황들이 야속해서 그냥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였다.


자고 깨고 다시 잠이 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눈만 감으면 네가 떠올라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시고 싱크대에 놓으려는데, 컵이 미끄러지듯 손에서 빠져나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늘 온종일 네 생각이 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구슬프게 우는 비. 깨진 유리컵. 이상했다. 뭔가 이상해. 아닐 거라고 믿으며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어 너의 집에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순간 본가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 일도 없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상대가 받기만을 기다렸다.

“알베르토가 입니다.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습니까?”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로라스를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다리오라고 말하면 그가 알 겁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사용인이 말하기를 꺼리는 것이 느껴졌다. 거부당했나..? 이런 것에 끝맺음이 확실한 그이기에 예상했던 바이지만.. 다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이것에만 답해주세요. 그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닌 울음이었다. 그제야 무엇인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상대를 다그쳤다.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냐고. 괜찮냐고. 그녀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더듬거리며 어느 장소를 말했다. 전화를 끊고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그녀가 말한 주소로 다급하게 향하였다. 그녀가 말한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국립 병원이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에게 그의 병실을 물어보았다. 7층에 있는 1인실. 병실 앞에 도착해 조심스레 문을 여니 잠든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건강하던 너의 피부는 창백하게 물들고, 많이 아팠는지 살도 많이 빠져있었다. 날 버리고 떠났으면 잘 살아야지... 왜... 병실로 올라오는 길 간호사에게 들었다. 불치병이라고. 치료법도 없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던 거냐?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이 든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에게 기도했다. 그가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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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렉로라] attaccamento -完-

2015. 7. 10. 23:14 | Posted by 아뮤엘

“ㅁ..뭐냐 일어나 있었냐?”

“...대답...”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는지, 인상을 쓰며 손에 힘을 주어 잡힌 손목이 아려왔다. 이 새끼가 잠에서 덜 깨더니 미쳤나 싶어 억지로 잡힌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빼려고 할수록 잡힌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만 늘어날 뿐이었다.

“ㅅ...수련장에 간다..좀 놔라!”

“아아...”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잡은 손에 힘을 빼고 제 침대에 도로 눕는 그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게 잠꼬대인가? 조심스레 방에서 빠져나오니 정적만이 가득한 복도가 자신을 반겼다.

“윽...”

아릿한 통증에 잡혔던 손목을 보니 붉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끈거리는 통증에 오늘 훈련은 글렀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바로 치료를 해야 빨리 낫고 증상이 악화되지 않을 텐데, 약을 꺼내기 위해선 방에 다시 들어가야 했다.

“그냥...아프고 말지”

훈련을 하려던 것도 못하게 되었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도중 창가에 비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어둑한 새벽하늘에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뽐내는 별들의 모습에 오랜만에 별이나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옥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옥상의 문은 잠가두지 않는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상쾌한 새벽 공기가 자신을 맞이하였다. 털썩-바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어두웠던 하늘 한구석에 작은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에 붉은빛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져,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ㄹ...스”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비척거리며 일어나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알베르토?”

“일어났는가, 드렉슬러?”

“지금이 몇 시지?”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평소와 같이 손을 딛고 일어서려는데 찌릿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지만, 알베르토가 재빨리 허리에 팔을 둘러 자신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놓아라”

“괜찮나?”

“됐고 몇 시인지만 말해”

“11시 반 정도 되었군. 그건 그렇고 손목은 누가 그랬나?”

꽤나 창피한 모습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을 여성을 하듯 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나 쏘듯 그에게 시간을 물었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손목을 걱정하였다. 잠에 취한 녀석에게 손목을 붙잡혀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해봤자 기억을 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보아하니 이미 훈련은 끝난 것 같고, 애초에 훈련에는 잘 나가지 않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욱신거리는 손목을 들어 확인하니 그냥 응급처치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 봤자 뭐 하겠는가? 드렉슬러는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얼음 팩을 만들어 찜질하였다. 언제 들어온 건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네놈이 그런 거다 짜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녀석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자신의 팔목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고, 어찌 되었던 그와 앞으로 최소 1년 이상은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서로 불편해야 하는 점은 없어야 하니까라는 생각이었다. 같이 지내면서 지켜야 할 점이라던가, 피했으면 좋겠는 점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그것뿐.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은 불편한 저이기에 먼저 선을 그어놓은 것이었는데...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일 년쯤 지나면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그와 더 가까워졌다. 그는 내 생활을 최대한 배려하며, 내가 연구하는 것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와 충고를 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새벽에 따로 훈련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같이 수련을 하며 서로의 훈련을 돕기도 하였다. 새벽 훈련으로 오전 훈련을 대신하고 그 시간에 연구하는 자신과 달리 오전 훈련까지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그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수련을 하면 힘들지 않냐고. 그는 답하였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자신이 강해지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이가 더 늘어나지 않겠냐며 웃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보 같은 놈.. 그 날 이후로 그가 훈련을 끝마치고 오면 음료를 건네주는 것으로 더는 묻지 않았다. 사서 고생하는 놈에게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게 뻔하니까..


그날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연구에 대한 진전이 없어 이것저것 끄적이다가 지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누워 뒹굴거리다 깜박 잠이 들었는지,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깨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창밖을 내다보니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알베르토를 둘러싸고 조잘거리고 있었다. 알베르토 놈은 다른 기사들에게 모범이 되었기에 때문에 자신과 달리 다른 놈들에게 인기가 많아 붙잡혀 수련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보아하니 오늘은 숙소 앞에서 붙잡혀 예찬론을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가져와 그 모습을 구경하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정도를 넘어 섰달까. 한 놈은 알베르토 놈에게 달라붙질 않나, 다른 한 놈은 알베르토의 사생활까지 캐내려 하지 않나, 그 외 다른 놈들도 엇비슷했기에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없이 음료나 홀짝이며 지켜보고 있는데, 한 놈이 알베르토 놈의 팔을 꼬옥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기분이 나빠져 창가를 벗어나려는 순간 알베르토 놈과 눈이 마주쳤다. 도와주게나. 새내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 모양으로만 뻐끔이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싫은데? 제 입 모양을 읽은 것인지 작게 한숨을 쉬며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네. 라고 대답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좋아라고 대답을 한 뒤, 들고 있던 음료를 내려놓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그를 불렀다.

“야, 알베르토! 너희 가문에서 편지가 왔는데 급해 보이더라?”

 제 목소리가 들렸는지, 놈에게 붙었던 놈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였다. 알베르토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째려보는 새내기들에게 비웃어주며 창가를 벗어났다. 알베르토는 지친 기색으로 방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구해줘서 고맙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포옹를 하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는 내꺼야 애송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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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5. 00:21 | Posted by 아뮤엘

- 불면증


밝게 빛나는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네가 생각났다.

“슬슬 돌아가야겠군”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맘때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너를 위해 쌓여있는 서적들을 정리하고 서재를 나섰다. 혹시나 싶어 너의 방으로 가봤지만 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쉬며 옥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누워있는 너의 옆에 조심스레 앉았다.

“왔냐?”

“아아..여기 있었나?”

“뭘 몰랐다는 듯이 말해. 알고 왔잖아”

피식-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옆에 나란히 누워 밤하늘을 구경했다.

“....괜찮나?”

“뭐가?”

“슬슬 그 시기잖나”

“아...아아..뭐...”

평소 같았으면 신랄하게 되받아쳤을 그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몸을 일으켜 머리를 쓰다듬었다.

“ㅁ...뭐냐?”

“눈 밑에 그림자가 졌네. 중국에 팬더?라는 생물의 눈 주변이 검다던데. 지금 자네의 모습이 딱 그 꼴이군”

“야 이 씨ㅂ...”

“쉿 조용히. 다른 이들이 깨잖나”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자 버둥거리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밤이 늦었네. 가서 자는 게 어떨까?”

“여기서 하늘을 보는 게 더 좋아. 잠은... 뭐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씁쓸하게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내가 잠들 때까지 곁에 있을 테니”

“야, 알!!”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잠을 다 깨울 생각인가, 자네?”

뒷말을 생략하고 조심스레 그를 안아 들자 버둥거리며 큰소리치는 렉스의 모습에 협박 아닌 협박을 하자 그제야 얌전해졌다. 토라진 듯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입을 살짝 맞추었지만..(동시에 주먹으로 자신의 명치를 때려 조금 위험했다.) 


계단을 내려가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을 그의 방이 설명해주었다. 이것저것 적힌 노트들과 널브러진 책들, 어질러진 이불과 책상 위에 놓인 수면유도제들.. 약은 차마 먹지는 못했는지 봉지가 꾸깃꾸깃해진 채 놓여만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고, 그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약까지 받아왔었나?”

“...먹지는 않았다.”

등 돌리고 누운 그의 모습에 침대에 걸터앉아 결 좋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자게나.. 내일 이야기하지”

“......”

그가 잘 때까지 곁에 앉아 토닥거려주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든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방을 정리하였다. 어차피 그가 일어날 때까지 방을 벗어날 수 없기에 시간을 보낼 겸 시작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의 방에서 벗어나는 순간 잠에서 깨는 그의 모습에 그가 푹 잘 수 있도록 그의 곁에 있는 것이었다. 그가 깰 때까지 할 일도 없고, 그의 방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은 책을 읽으며 보낸 지도 벌써 5년째. 5년 동안 이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시기에 그가 잠이 들면, 자신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이러한 증상을 가지게 된 처음 2년 동안은 그의 불면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일주일 이상 잠을 못 자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그와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 조절하고 마셨기에 둘 다 취할 일은 없었지만, 그날은 평소 즐겨 먹던 술의 내용물을 바꿔 그가 취하게끔 하였다. 술에 취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가 왜 잠을 못 잤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임무에 나갔다가 큰 상처를 입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향한 임무였다. 임무는 성공했지만, 자신을 제외한 전원 전멸..임무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려야 했기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임무를 보고하고 쓰러져 바로 병원에 실려 가 대수술에 들어갔다. 상처가 큰 것도 문제였지만, 이미 피를 많이 흘려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술에 취한 그가 말했었다. 두려웠다고 말했다. 내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고 울먹이며 자신을 두고 가지 말아 달라고 안겨오는 그의 모습에 자신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구나, 내가 그에게 이렇게 큰 존재가 되어있었구나. 조심스레 울다 잠이 든 그를 눕히고 옆에 앉아 그에게 다짐하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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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9. 01:32 | Posted by 아뮤엘

얼마 전, 새로 습득한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 훈련장에 남아 수련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있었다.

공용 샤워실에서 대충 몸을 씻어내고, 근처 샌드위치 집에 들러 배를 채운 뒤 숙소로 들어오니 어느 덧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가문에서 나와 이곳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주변에서는 자신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음식이야 사 먹으면 되는 일이었고, 그 외에는 딱히 달라진 점이 없어 별문제 없이 이곳에서의 삶에 적응해나갔다.


어느 새 도착한 자신의 방문 앞에 서니, 자신의 이름 밑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다리오 드렉슬러’

아마 용기사를 배출해온 명문가의 자제라고 주변의 시샘을 받았지만, 그의 기이한 행동에 모두가 꺼렸다.

용기사로서의 훈련보다는 연구하는 것이 좋다며 훈련을 피하는 그를 보며 모두가 낙하산, 또는 돌연변이라며 뒤에서 욕했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그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훈련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 오기까지 2~3시간이나 남았었기에, 간단히 체력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었다.

훈련장과 가까워질수록 아무도 없어야 정상인 훈련장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굴까? 궁금한 마음이 앞섰지만, 그의 훈련을 방해하기는 싫어 조심스레 나무 뒤에 숨어 지켜보았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흘렀을까, 땀에 범벅된 몸을 이끌고 샤워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몰래 따라갔다.

자신의 철칙과는 어긋되는 행동들이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몰래 따라간 샤워실에서 열려있는 락커를 보고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다리오 드렉슬러’


그 뒤로 그와 만날 기회가 없어 친해지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그와 친해질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기 위해 키를 넣고 돌리자,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인지 그냥 열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어있던 침대 쪽에 곤히 잠든 다리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짐을 풀다 잠이 든 것인지 무방비한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대충 방안을 정리한 뒤, 잠자리에 들었다.

누군가가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몰려오는 수마를 맞이하였다.


다음 날, 잠에서 깬 드렉슬러는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에 푹 자서 그런지, 한 번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평소와는 다른 풍경에 자신이 집을 나왔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몇 시쯤 되었을까 하고, 시계를 보니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저택에서 기사단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이래서 버릇이 무섭다니까”

작게 투덜거리고 씻기 위해 욕실로 향하는데 비어있던 침대에 누군가가 잠들어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이 녀석이었나?”

짙은 고동색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기사의 본보기라며 유명한 녀석이었다.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아, 그런 녀석이 있구나 정도로 넘겼는데, 자신과 룸메이트였다니..

자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귀찮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욕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씻었다.

씻고 나와 훈련을 하기 위해,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문밖으로 나서려는데 누군가 자신의 팔목을 잡았다.

“....어디가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자신의 뒤에서 들려와 돌아보니 잠에서 덜 깬 듯한 얼굴을 한 그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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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렉로라] attaccamento -1-

2015. 6. 27. 10:24 | Posted by 아뮤엘

그저 순수하게 존경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던 널

내가 널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아니, 넌 몰랐겠지.

천천히 알아가는 것도 좋을 거야.



어린 시절부터 기사로서의 명예와 귀족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가문에 질려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건 그러한 것들이 아닌데...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을 버리지 않고, 번번이 가문과 충돌하다 보니 가문과 황실에서는 자신을 이단아 취급하였다.

그러한 자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가문에서는 제명되었지만(오히려 고마웠다.), 자신의 능력을 놓치기에는 아까웠는지 황실에서는 자신을 내치지 않았다.

가문에서 제명당하기 전에는 가문에서 통근하는 형식으로 기사단에 출근하였지만, 현재로써는 머물 곳이 없기도 하고 연구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싫었기에 숙소에서 살기로 결정하였다.


1인 1실 일 거라 생각했던 숙소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2인 1실이었다.

누군가와 같이 방을 쓴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답지 않은 이유로 규율을 바꿀 수 없다는 단장의 확고한 의지에 배정받은 방이 있는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신이 배정받은 방도 3층에 있었다.

“...젠장”

그래도 밤하늘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 삼으며 자신의 방을 찾았다.

다행히 방은 계단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있었다.

“적어도 소음 때문에 깨는 일은 없겠군”

아무리 방음이 잘 되어있다고 할지라도, 층계참 오르내리는 소리는 거슬리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방문에 걸린 룸메이트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310호 - [Alberto Loras]

           [                   ]


“알베르토라....”

평소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이름만으로는 누구인지 떠올리기 힘들었다.

다행히 자신과 마찰이 잦았던 이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지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빈 부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310호 - [Alberto Loras]

           [Dario Drexler]


“오호라?”

막상 이름을 적어놓고 보니 글자 수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별난 일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알베르토라는 룸메이트가 외출 중인지 잠겨 있었다.

숙소로 넘어오기 전 단장에게 받은 예비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자 가지런히 정리된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은 욕실과 베란다가 딸려있는 원룸 형식이었지만, 나누지 않아서 그렇지 두 방을 합쳐놓은 크기였다.

차라리 나눠서 한 사람당 방 하나를 쓰게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투덜거리며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방을 둘러본 결과 알베르토라는 이의 성격을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는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지, 모든 물건이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아아.. 꽤나 피곤해지겠네”

평소 연구를 하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정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메이드들에게 청소를 맡기는 것도 아니라 필요할 때만 간단하게 정리하는 정도가 다인 자신이었다.

방의 모습으로 보이는 방주인은 그런 자신의 생활을 보면 정리하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 분명한데...

“귀찮다..”

숙소에 오기 전, 단장에게 잔소리 들은 것도 있고 챙겨온 짐도 꽤 되었기에 더이상 움직이는 것은 사양이었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 비어있는 쪽 침대로 짐을 옮겼다.

챙겨온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까지 마치고 나오자, 어제 연구하느라 잠을 못 잔 탓인지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같이 지내게 될 룸메이트는 나중에 인사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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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o

2015. 6. 20. 12:32 | Posted by 아뮤엘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하고, 그 누구보다 빛나는 나의 별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가는 실같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의 관계를 바라보며, 혹시 우리의 관계도 한순간에 끊어질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너의 곁에서 머물고 싶다는 나의 욕심에 내 마음을 억눌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나의 별아

부디 울지마

나는 네가 행복한 얼굴로 웃어주면 그걸로 만족하니까

그러니까 살아남아 웃는 얼굴을 나에게 보여줘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도록 해"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잖냐, 봐 상처도 그리 크지 않아"

"그렇다고 동료를 버리고 갈 순 없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로라스와 같이 미리 잠입했던 동료가 전해준 물건만 받아왔으면 되는 간단한 임무였다.

로라스는 따분한 임무라며 차라리 그 시간에 연구를 하는 거라는 자신의 말에 웃으며, 그래도 왕이 내린 임무니 다녀오자고 자신을 이끌고 접선장소로 향하였다.

분명 물건만 받고 돌아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나는 괜찮으니까, 먼저 가. 곧 뒤따라 갈 테니까"

"그런 거라면 내가 남겠..."

"형님 못 믿냐? 금방 따라간다니까?"

걱정되는지 자꾸 뒤돌아보는 너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가서 껴안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괜찮은 척 웃어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네가 시야에서 사라짐을 확인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아아, 검은 옷을 입어서 다행이다.

지쳐서일까, 피를 너무 흘려서일까

시야가 흐려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그래 조금만 쉬자


벽에 기대어 애창을 끌어안고 눈을 감고 있는데, 이쪽을 향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추격대인가"

멀리 도망가지 못했겠지

어차피 이 몸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막아야겠지

네가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칠 수 있도록

심한 상처는 대충 응급처치를 한 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창에 기댔다.

만약... 아주 만약에 살아 돌아가게 된다면 깨끗하게 손질해줄게, 그러니 조금만 더 함께해줘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한 발걸음이 점점 커지더니 멈추었다.

"버려진 건가?"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말을 건네왔다.

"그럴 리가 자진해서 남았지"

씨익 웃으며 대답하자 남자는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훔쳐간 물건은 어디 있지?"

"......"

"보아하니 상처도 깊어 보이는데 살려주지, 너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잖나?"

자비를 베풀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창을 들었다.

"하...하핫,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존재가 없어서 말이야"

"그런 몸으로 맞서겠다는 건가? 미쳤군"

"이 천재님에게 불가능은 없어"

남자의 눈짓에 뒤에 있던 이들도 무기를 들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혼자서 이 많은 인원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 수 있다면야..


"하...하하..."

겨우 멎었던 피는 상처가 터져 피가 흘러내렸고, 몸에는 상처가 가득하였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전투는 자신의 승리로 끝났다.

자신이 치명상을 입었다고 생각한 상대가 방심한 것이 컸다.

곳곳에 생긴 피 웅덩이와 시체들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애창을 지팡이 삼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얼마쯤 걸었을까

흐릿한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멀리 도망쳤을까?

자신을 두고 떠나면서 걱정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의 웃는 얼굴이 아닌 걱정에 가득 찬 얼굴이라 아쉬워졌다.

이렇게 헤어지게 될 것을 알았으면, 그와 좀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건데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아, 네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약속... 못 지키게 되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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