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긴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안심되었던 것일까? 지독한 악몽은 찾아오지 않았고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가는 시각, 쓱 방을 둘러보니 메이드가 두고 간 것인지, 간단한 아침 식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배가고파오긴 했지만, 뻐근한 몸을 풀고 싶었기에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따뜻한 물에서 몸을 풀고 있자니 배가 고파 결국 아침 식사를 욕조에서 먹고 말았다. 몸도 풀고, 고픈 배도 채우니 일석이조였지만, 그 모습을 유모에게 들켜 혼이 나고 말았다. 30분가량 혼이 났을까? 그제야 본 목적이 떠올랐는지, 유모는 빨리 옷을 갈아입고 집무실로 가라는 말을 전하고 방을 나섰다. 물론 나서면서 다시는 욕실에서 음식을 먹는 일은 하지 말라 단단히 일렀다. 유모에게는 일단 알겠다고 답을 하고 방에 딸린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단순한 와이셔츠와 바지를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집무실로 가는 길, 주방에 들려 아침 식사가 놓여있던 그릇을 반납했다. 점심은 조금 늦게 먹고 싶다고 주방장에게 이르고 도착한 집무실에는 작은 형과 큰 형이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오랜만에 만나는 형들은 반가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뒤이어 들어온,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니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인물이 그 대화를 막았다.
“호오, 그 작던 아이들이 많이도 컸구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숙부님.”
“…….”
“…….”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는지 뒤룩뒤룩 찐 손을 내미는 숙부를 보며 큰형은 사무적으로 인사를 나눴지만, 작은 형은 고개를 돌려 방을 나갔고 나는 그대로 쇼파에 앉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작은 형처럼 자리를 박차 나가고 싶었지만, 이 인간이 왜 왔나 궁금해 자리에 남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와 말을 섞을 생각은 없었기에 집사가 가져온 차를 따라 마셨다. 그런 우리의 태도에 숙부는 기분이 상했는지 빠득 이를 갈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 작던 삼 형제가 많이 컸군. 무가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윗사람에 대한 예절은 더 배워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부모님이 타계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그런 것이니 ‘어른’이신 숙부님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끌끌. 그래, 어른인 내가 이해해야지.”
걸걸한 웃음소리를 내며 두꺼운 손으로 짧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숙부는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이게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나와 다른 분가들의 의견을 담은 제안이다.”
큰형은 봉투에 든 종이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접어 봉투에 다시 넣어 숙부 앞에 놓았다.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집사, 숙부님이 돌아가신다고 하는군. 배웅해드리도록.”
“네놈! 그러고도 네가 내 도움 없이, 이 가문을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으냐!!!”
“아~ 마차 떠나면 소금 좀 뿌리는 것도 잊지 말고!”
“이글, 말이 지나치다.”
얼굴을 붉힌 채, 역정을 내는 숙부를 끌고 나가는 집사에게 말을 덧붙였다. 한숨을 내쉬는 형과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숙부를 보고, 어깨를 으쓱이며 빈 잔에 차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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