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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28. 02:13 | Posted by 아뮤엘

방을 나서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너무 방에만 있었나? 추욱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드레스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뭐라도 걸쳐야겠다는 생각에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붉은색 가디건을 꺼내 걸치고 방을 나섰다. 저택을 나서는 길에 집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되도록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는데, 난감한 미소를 짓자 비밀로 할 테니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어딜 가는지 말해달라는 집사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집사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리는 없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잠시 마을에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고맙다고 작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나온 저택 밖의 풍경은 많이 바뀌어있었다. 제 기억 속 마지막으로 나왔을 때, 얇은 옷을 입고 다니던 사람들은 이제 긴소매의 약간 두툼한 소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푸르던 나무들도 화려한 옷으로 하나둘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마을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대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표정을 보아하니 웃으며 무언가를 호응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사람들 틈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자 광대가 보였다. 아아, 그런 거였나?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에 다시 사람들을 헤집고 나와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강가에 도착하게 되었다. 따뜻하게 입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강가라 그런가. 약간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적한 강가의 풍경이 마음에 들어 강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택을 나설 때만 해도 저 높게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저물어 어느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 이들이 떠올라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저택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사가 자신을 맞이해주었다. 집사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괜찮다며 저녁은 어찌하겠냐고 물었다. 보아하니 형들은 아직 제가 나갔다 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요즘 큰형과 작은형이 바빠 아침 식사만 같이하는 것이 컸겠지만.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집사에게 돌아오는 길, 외출할 때 자주 들리는 베이커리에서 사온 빵을 보여주었다. 많이도 사 왔다며 혼자 먹을 수 있겠냐고 넉살 웃음을 짓는 집사에게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고 집사가 좋아하는 빵을 손에 쥐여주고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히 집사는 괜찮다고 거절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그 장소를 벗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뒤에서 허허하고 웃는 소리만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앉아 사온 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맛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더 맛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제 몸은 벌써 지쳤는지 피로했다. 방에서 제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저택에만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외출해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악몽을 핑계로 몸까지 나태해지는 것은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연무장에 나가야지.”

점심을 먹지 않아서 그런가, 빵을 하나 더 집어 입에 물며 훈련할 것들을 생각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에 외출을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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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9. 02:36 | Posted by 아뮤엘

눈을 뜨니, 눈앞에 꿈속의 사내가 보였다. 연약한 사람. 겨울을 닮아 새하얀 머리와 탐스럽게 익은 사과가 떠오르는 붉은 눈을 가진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 이렇게 아름다운데, 다르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배척당하고 버림받았다. 그의 몸에 난 상처를 조심스레 쓰다듬자 이젠 내가 있어 괜찮다고 웃는 그의 모습에 남을 원망하지 않는 그가 바보 같아서 꼭 안았다.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자니, 밖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문으로 향하는데 그가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미안하다고 다가와 살짝 입을 맞추었다 떨어졌다. 나는 괜찮다고 그를 껴안아주고 집을 나섰다. 산으로 가 열매와 나물을 캐고 제 몫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하게 지내던 여인이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한 마리 건네줘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왔다. 꽤 풍족한 먹거리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레 문을 여니 잠이 든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햇빛에 약한 피부 때문에 낮보다는 밤에 활동하는 그이기에 자신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무렵에는 항상 잠든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깊게 잠이 든 그가 깨지 않게 조용히 저녁 준비를 하는데 언제 깼는지 뒤에서 끌어안고 다녀왔어? 라고 속삭이는 그의 행동에 나는 또다시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춘다. 오늘은 밥상이 풍족할 거 같아.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고 그도 마주 웃는다.


누군가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흐릿했던 시야가 또렷해지며 큰형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형 왔어?”

“아아.. 내가 깨운 건가?”“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어깨에 기대었다.

“또 꿈을 꿨나?”

“...아아..”

조심스레 걱정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묻는 형의 모습에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빌어먹을 꿈. 형들에게 걱정 끼치는 것은 싫었지만, 자신이 꿈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바로 지금만 해도, 정말 거지같이 자신이 그 여인네가 되어 그 남자에게 설렜던 감정이 아직도 제 안에 남아있었다. 한낱 꿈에 휘둘리고 있는 제 모습이 정말 싫었다. 걱정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형을 보니 고민이 되었다. 숨기기만 해서는 해결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도 그 꿈의 내용을 말하기에는 꺼려졌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이글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동안 꾸었던 꿈의 내용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형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괜히 말했나 싶어 다 말하고 나서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야겠다 싶어 입을 떼려는데,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힘들었겠군.”

“어.....아니.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 것 같나?”

“그게 모르겠다구~ 솔직히 둘이 부족하지만, 화목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못 느끼겠어”

도저히 그 여자와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만을 말하기가 꺼려져 말하지 않았다. 형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고민하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가려고?”“아아, 아직 업무가 덜 끝났으니까”

괜히 걱정만 끼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형을 보니 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 이마에 입을 맞췄다.

“괜찮으니 걱정마라. 무리하지 말고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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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9. 22:00 | Posted by 아뮤엘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토닥이며 쌓인 일들을 처리하였다. 그렇게 바쁜 나날이 지났다. 주변에서는 냉혈안이다. 사람이 아니다. 따위의 말을 지껄였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둘째동생은 부모님의 부재가 힘들었는지 잠시 별장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 보낼 순 없기에 호위와 몇몇 메이드를 붙여 가까운 별장으로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떠나는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둘째 동생을 보내고 난 뒤, 막내동생을 유모에게 맡기고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조사하였다. 부모님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영지까지 시찰하다 보니 며칠 정도 저택이 아닌 외지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막내동생이 걱정되었지만, 유모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비운 것이었는데... 저택을 비운 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막내동생이 몽유병 증세를 보인다고. 밤마다 부모님의 방을 헤매다 제 방에서 잠이 든다고.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리 빨리 나을 리 없는데. 재빨리 짐을 챙겨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서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저택에 도착하니 해가 진 늦은 저녁이 되었다. 자신을 마중 나온 집사와 유모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들었다. 동생을 만나기 전, 몸에 달라붙은 먼지들을 씻어내기 위해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 구석구석을 닦고 나오니 제 방에 작은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새근새근 잠이 든 제 동생을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유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막내동생이 사라졌다고 울먹이는 유모에게 여기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니 마음이 놓인 듯, 웃으며 좋은 꿈 꾸라고 방을 나서는 그녀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였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울먹이는 동생을 껴안고 토닥거리자 훌쩍거리다 이내 안정되었는지 새근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동생이 걱정되어 집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처리하며, 조사 업무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제가 저택에 있으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정신적인 문제다 보니 밤이면 제 방을 찾는 동생의 모습에 잠은 제 방에서 같이 자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어린애도 아니고 왜 같이 자냐고 툴툴거리던 동생도 몇 번 같이 자더니 괜찮았는지 이제는 제가 알아서 잘 시간이 되면 자신의 방을 찾아왔다. 평소와 같이 서류업무를 마치고 동생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생의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집사가 한 무리의 메이드들을 어딘가로 데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오는 곳을 보아하니 동생이 무언갈 시킨 것 같은데... 의문을 잠시 접고 도착한 동생의 방문을 열자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자신을 반기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셔!”

“책을 읽고 있었나?”

제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기대어 앉은 부드러운 은발 머리를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부빗 거렸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간지러워 볼을 꼬집자, 베시시 웃는 모습이 또 귀여워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건 그렇고 집사가 메이드들을 끌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나?”

“으음~ 별거 아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느라”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동생의 모습에 무언가 미심쩍었지만,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기분이 좋았는지 부비적거렸다.


품에 안겨 뒹굴던 동생은 졸렸는지 꾸벅거리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든 동생을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동생의 책장으로 다가갔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동화가 아닌 꽤 어려운 책들도 많이 꽂혀있었다. 괜찮은 책 두어 권 정도 골라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 읽다 보니 꽤 늦은 시각이 되었다. 슬슬 자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는 데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한구석에 놓인 잘 관리된 낡은 액자. 보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조심스레 들어 올린 액자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눈가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낡은 액자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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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8. 21:38 | Posted by 아뮤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별일 없을 거라며 저택을 나섰던 부모님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셨다. 울고 싶지만, 꾹 참았다. 부모님이 잠들어 있는 관 앞에서 울고 있는 동생들을 끌어안고 토닥거렸다. 집사에게 부모님을 부탁하고 울음을 멈추지 않는 동생들을 껴안고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식이 퍼졌으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 분명했다. 발견자의 증언으로는 부모님의 죽음은 사고에 의한 것이라고 했지만, 따로 조사해야겠다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동생들을 침대에 눕히고 울음이 멈출 때까지 그 작은 등을 쓰다듬었다. 울다 지쳤는지 잠이 든 동생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벗어났다. 방에서 나오자 집사가 다가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고맙다고 말을 전한 뒤 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제 머리색과 반대되는 칠흑 같은 검은 정장을 꺼내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였다. 방 밖으로 나오니 친척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장례는 내일 아침에 치르기로 했지만, 전날 미리 와 하루 머물고 장례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저를 찾는 친척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집무실에 틀어박혀 서류를 처리하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서류를 정리하다 보니 꽤나 늦은 시간이 되었다. 처리된 서류들을 정리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집사에게 괜찮다고 말하였다. 그것보다 부모님의 부고에 놀랐을 동생들이 걱정돼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방문을 열자 잠이 든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게 물든 눈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렸다. 부모님을 찾는지 허공에 손짓하는 동생들을 끌어안고 작게 토닥거려 주었다.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뜨니 창문으로 막 동이 트기 시작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잠에서 깬 것인지 동생들이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동생들을 달래고 있으니 집사가 유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유모가 제 품에 안겨 우는 동생들을 안아 달랬다. 유모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고 집사가 건네는 옷을 받아들고 옆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정리를 하고 있으니 집사가 오늘의 일정에 대해 말했다. 일정이라고 해봤자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이 다였지만. 하나둘 도착하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다 보니 부모님을 묘에 안치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동생들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방으로 가니 막내동생은 괜찮았지만, 제 둘째동생은 충격이 컸는지 이불에서 나오질 않았다. 둘째 동생을 달래는 유모에게 괜찮다고, 그냥 혼자 있게 해주자고 말하며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방 밖으로 나왔다. 일어나자마자 울어서 그런지 좀 가라앉았던 눈가는 다시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몰려오기 시작하는 조문객들을 하나둘 맞이하였다.

“저기 장남은 역시...”

“...니까요.”

“역시 ...라는 걸까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외면하였다. 자신을 대신해 속으로 화를 내는 동생을 봐서라도 참자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볼을 부풀린 채, 저를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힐끔힐끔 째려보는 동생의 모습을 보니 화가 가라앉았으니까. 시간은 흘러 부모님을 묘에 안치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작은 도련님을 모셔올까요? 라고 묻는 집사의 말에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명을 내리고 막내동생의 손을 잡고 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든 과정을 묵묵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지만, 제 떨리는 손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조문객들이 돌아갔다. 그들로 인해 떠들썩했던 집안도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제 친척들로 인해 다시 시끄러워졌다.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 묻는 친척들의 말에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지만, 제 말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자신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다며 서로 앞다투어 말하는 모습을 보자니 역겹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렸고, 제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쉽게 내칠 수도 없었다. 결국, 한명 한명 이야기를 듣고 상대해주다 보니, 끝도 없이 매달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제 명에 알았다며 웃으며 나갔지만 속으로 뭐라 말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린놈이 건방지다 따위의 말들을 지껄이겠지. 애써 괜찮은 척 자세를 유지하며 서류를 읽었다. 사실 서류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집사의 친척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집사에게 수고했다고 쉬라고 내보낸 뒤,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힘들다. 아버지는 홀로 이들을 상대했겠지. 혼자서 이 외로운 자리에 앉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셨을 것을 생각하니 감긴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가문을 잘 다스리며 지킬 수 있을까? 제 동생들을 저 악마들의 손에서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은 아직 어렸다. 정치에 대해서도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서투른 것이 많은 배울 것이 더 많은 아이였다. 갑자기 짊어지게 된 것들이 너무 무거웠다. 힘들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한 손으로 가리고 혹여나 누가 들을까 숨죽여 울었다. 오늘만.. 오늘 하루만 울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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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7. 22:33 | Posted by 아뮤엘

“저기 장남은 역시...”

“...니까요.”

“역시 ...라는 걸까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것만 잘하는 이들의 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큰형과 같이 조문객을 맞이하였다. 눈 밑이 붉게 물든 자신과 달리 평소 다름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위로의 인사를 전하는 이들을 상대하였다. 시간은 흘러 부모님을 묘에 안치시키기로한 시간이 되었다. 작은 형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은 도련님을 모셔올까요? 라고 묻는 집사의 말에 큰형은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명을 내리고 내 손을 잡고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형은 묵묵하게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감정이 메마른, 냉혈안으로 보였겠지만 자신은 느낄 수 있었다. 맞잡은 손에 느껴지는 떨림을.


조문객들로 떠들썩했던 집안이 조용해졌다. 친척들과 부모님의 부재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형의 모습을 집무실 밖에서 몰래 지켜보았다. 개떼같이 몰려드는 친척들의 모습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형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이용해 제 가문의 힘과 재산을 조금이라도 맛보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해대는 이들을 상대하는 형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결국, 하나하나 상대해주다 지친 형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라고 일축하였다. 친척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집사의 말을 전해 듣고 나서야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집무실로 들어갈까 조금 열린 문 사이로 손을 뻗는데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소리를 죽이고 우는 큰 형의 모습에 조용히 자리를 벗어나 제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형의 모습에 다들 혀를 둘렀다. 역시 홀든가 장남은 제 부모의 죽음도 슬퍼하지 않는 냉혈한이라고 떠드는 메이드들의 말소리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당 메이드들을 잡아다가 죽일까? 고민하는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울며 달라붙는 모습에 질려 입단속 시키고 내쫓으라고 집사에게 명령했다. 죽이려던 걸 살려준다니까 겁을 상실했는지 이제는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자기는 부양할 가족이 있다며 동정을 호소했다. 살려준다고 할 때 곱게 돌아갈 것이지. 시계를 슬쩍 쳐다보고 집사에게 눈짓하자 집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제가 내린 명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메이드들은 감사하다고 절을 하며 나갔다. 뭐, 남은 가족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고 돈이나 쥐여줘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자 큰형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셔!”

“책을 읽고 있었나?”

제 머리를 쓰다듬는 형에게 안겨 책을 읽었다. 업무를 하다 와서 그런지 잉크와 종이 냄새가 밴 손을 만지작거리자 간지럽다는 듯 볼을 꼬집는 형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집사가 메이드들을 끌고 가던데 무슨 일 있었나?”

“으음~ 별거 아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느라”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자,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형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 부비적거렸다.


형의 품에 안겨있다 잠이 든 것인지, 눈을 뜨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비척이며 몸을 일으키니 낯익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무엇인가를 끌어안은 채 잘게 떨리는 몸을 보고 형이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껴안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기대면 좋을 텐데, 항상 형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기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려서, 형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저 가녀린 어깨를 끌어안아 달래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르는 척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자신이 우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을 테니까. 바보 같은 자신의 형은. 조심스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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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글] Karma -1-

2015. 7. 7. 23:02 | Posted by 아뮤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작은 여인네였다.

조용히, 어느 날은 조금은 소란스럽게 흐르는 맑은 강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도착하는 곳.

뒤로는 숲과 산이 보이는 이 작은 동네가 꿈속의 내가 사는 곳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소박하고 정이 가득한 곳이라 이곳의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마을에서 조금 들어가 강가 쪽으로 걷다 보면 보이는 작은 집이 제가 살던 집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하는 님이 잘 다녀왔냐고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나는 그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오늘도인가?”식은 땀 때문에 축축하게 젖은 침대 시트에서 몸을 일으켜 시계를 보니 오전 7시였다. 아아..늦었네 작게 욕설을 지껄이며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선다. 식당에 도착하니 형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군. 또 그 꿈 때문인가?”

딱딱하지만 말투지만,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는 작은 형에게 괜찮다고 대답하고 자리에 앉으니 침묵을 지키던 큰형이 말을 건네왔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던데”

“아앙? 그럴 리가. 충분히 쉬고 있다구~”

“그런 것치고는 안색이 안 좋다만?”

무리하지 말라며 머리를 쓰다듬는 큰형의 손길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셋이서 같이하는 아침 식사가 끝난 후, 큰 형은 일을 업무처리를 위해 회사로 출근하였고, 작은 형은 따로 일이 있다며 외출을 하였다. 원래 자신도 연무장으로 가 가문 소속 기사들과 훈련에 해야 했지만, 요 며칠간 의미 모를 꿈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걸 안 형들이 배려를 해주어, 방에서 몸이 굳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쉬고 있었다.

“도대체 내게 뭘 보여주고 싶은 거지?”

차라리 누군가 죽고, 자신을 위협하는 그런 류의 꿈이라면 아, 악몽을 꾸었구나 하고 넘겼겠지만, 악몽이라고 보기에는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라, 마치 자신이 그 꿈속의 여인네가 된 느낌....

“....에이 설마”

꿈 내용은 별것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자신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았다. 피곤한 건 둘째 치고, 자신이 그 여인네가 되어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공유...아니 동화되어가는 느낌이 무척이나 싫었다. 자신은 꿈속의 여인네가 아닌 이글 홀든이라는 홀든 가의 삼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꿈에 휘둘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트를 갈았지만, 찝찝한 느낌에 소파에 기대듯 누워 작은 형이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을 읽었다. 전쟁과 그 속에서 절망과 슬픔을 느끼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린 책이었다. 참으로 어리석다. 제 욕심을 위해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왕과 귀족들, 그런 그들에게 힘없이 저항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휘둘리다 죽어가는 그들의 삶이.누군가가 정해준 운명에 휘둘려 산다는 것이..

“...아아...시시하네 진짜”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씁쓸함이었다. 저항하면 할수록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덮었던 책을 펼쳐 가장 앞에 있는 머리말을 다시 읽어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책임인가?”

책임이라는 단어는 자신에게 무거운 짐과 같았다. 자신을 얽매는 족쇄이기도 했고.

“아아...귀찮아. 그냥 잠이나 잘까?”

다 읽은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소파에 편히 누웠다. 그대로 눈을 감자 졸음이 몰려왔다. 피곤했다. 그냥 푹 자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빨리 말하고 꺼지라고...이렇게 애꿎은 사람을 불러다 괴롭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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