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얼마나 잠이 들었던 것일까?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일어나셨나요, 비에르노?”
“아아... 넌가? 내가 얼마나 잔 거지?”
"약 일주일 정도 일까요?“
남자는 목이 마를 테니 마시라는 듯 물이 든 컵을 건넸다.
비에르노는 남자가 건넨 컵을 받아 물을 마셨다.
일주일이라면 꽤 오래 잔 것임이 분명한데 물이 매끄럽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일주일이나 잔 것치고는 몸 상태가 최상인데?”
“이곳의 기술력을 너무 무시하시네요”
“아아...돌아왔었지”
“당신이 연극에 빠져 돌아오지 않아서 저희가 개입을 하게 되었으니 반성해주세요.”
아아 삐졌구나, 이 녀석?
짜증을 내며 말하는 눈앞의 금발 머리는 마틴이라는 사내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보스에게 심취한 상태였다.
분명 자신이 보스에게 더 신임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질투하는 것이리라.
애초에 보스와 자신의 관계는 마틴이 생각하는 것처럼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였지만
“누구씨께서 기억을 잘 조작한 덕분에 그리된 걸 어찌하겠어?”
“..큭...그건”
“그러니까 서로 좋게 넘어가자고”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무는 마틴의 모습에 비에르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건 그렇고 똑같이 생겨서 헷갈렸을 텐데 용케 날 알아봤군”
“인정하기 싫지만, 기억을 조작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읽히지 않았거든요”
“아아, 기억을 조작당했어도 나는 천재니까 말이지”
그것 때문에 더 열 받았었군
기억을 조작당한 상태라 무방비해진 자신의 기억을 잃으려다 실패한 것이 분명하였다.
자신과 릭, 보스인 헤이의 관계에 대해서 예전부터 부러워했으니까
자신들을 잇는 그 연결점을 알아보려고 했겠지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 헤이에게 생각을 읽히지 않도록 배웠고, 그것을 몸에 익혀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하라는 그의 말을 명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무의식중에도 그 능력을 발휘하여 그가 기억을 읽지 못하게 한 것이리라
“내가 잠들어 있던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나?”
“릭씨가 찾아왔었습니다. 헤이씨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 같은데... 그것 외에는 딱히?”
“이곳의 나는 어떻게 되었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기억 조작을 하였습니다. 별다른 점은... 아, 당신이 차고 다니던 가죽 팔찌를 대신 끼고 다니던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정이라도 들었던 겁니까?”
“알았으니 이만 재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의심받는다”
비꼬듯 말하는 마틴을 돌려보낸 뒤, 창문을 열고 창가에 기대어 앉았다.
어둠이 녹아든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마틴이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지냄이 분명한데, 자신이 두고 온 가죽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니
가죽 팔찌를 착용하고 덥다고 짜증을 내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이 들었다인가?”
이곳에서는 연을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었건만...
하늘의 별은 그를 떠올리게 하였고 자연스레 그와의 추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틱틱 짜증을 내면서도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와 기대던, 반쯤 장난으로 시작한 유희에 휘말려 상처만 입고 이제는 그 기억조차 잊고 지낼 너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만나러 가고 싶어도, 지난번 일 때문에 더 이상의 외출은 금지된 상태라 불가능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비에르노는 이내 입가에 진한 미소를 띠운 채 창가의 문을 닫고 침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만날 수 없다면 데려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무리 기술이 좋다고 할지언정 일주일 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다.
“조만간 다시 만나길, Mi amor”